삶을 포기하고 싶은 이들의 이야기
지난 본지 1118호(25.09.01. 발행) 06~07면 탐사보도 지면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약 10명 중 9명이 최근 한 달 동안 우울 혹은 불안을 느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중 자살 충동까지 느낀 비율이 절반 이상에 달한 것을 보면 청년의 ‘불안과 우울’을 그저 당연한 사회현상으로 치부할 수는 없어 보인다.
실제로 자살을 생각했던 대학생 4명의 인터뷰를 통해 자세한 이유를 들어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 당시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던 ‘블루’는 대학 합격 이후에도 코로나19로 기대했던 학교생활을 하지 못했다. 이외에도 대인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도 계속됐다고 한다. ‘윤슬’은 부모님과의 갈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일상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답답함에 툭하면 자살 충동을 느껴 응급실도 몇 번 갔었다”고 언급했다. ‘도라에몽’의 경우 연인과 반복적인 갈등과 이별, 이후 홀로 남겨진 외로움 때문에 우울과 자살 충동이 심해져 긴 시간 정신과 진료를 받았다. ‘냠냠이’는 가정의 경제적 상황이 굉장히 어렵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보탬이 되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답답한 상황 속 연인과의 이별까지 고민하며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버텼다고 전했다. 이와 같이 청년들이 불안과 우울을 느끼는 이유는 다양하며 그만큼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다. 이 외에도 설문조사 중 자살 충동을 해결한 방안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해결하지 못했다’, ‘내가 죽을 바엔 남을 죽이자고 생각했다’ 등 절망적인 답변이 줄지었다.
벼랑 끝에 선 청년들, 붙잡지 않는 사회
그렇다면 수많은 청년들이 도움을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혹 도움을 요청했지만 제대로 된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던 건 아닐까. 실제로 청년들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대학교에서는 우울 및 불안증세의 학생을 위한 지원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 2021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총 110개 대학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자살 예방 관련 교과목이 개설된 곳은 11.4%로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대학 내 상담기관에도 △자살 전문 상담사 및 상담 인력 부족 △운영시간 이외 위급 상황 대처의 어려움 △자살 예방 사업을 위한 정기적 예산 확보 부재 등의 문제가 존재한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전국 대학상담기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기관 운영비는 평균 8,044만 원이었다. 이에 전국대학교학생상담센터 협의회는 “전체 비용에 상담실 운영비까지 포함돼 있어 학생 1인당 지원 금액은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생들에게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비용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2022년 의사 커뮤니티 업체 ‘모두닥’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47곳을 대상으로 상담 비용을 조사한 결과, 평균 2만 2,973원이었으며 가장 비싼 곳은 40만 원에 달했다. 이에 정부는 작년부터 정서적 어려움이 있는 국민에게 총 8회에 걸친 전문 심리상담 서비스를 지원하는 ‘전국민 마음투자 지원사업(이하 전마투)’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전국민이 전문가의 진단서 또는 소견서만을 제출하면 소득분위에 따라 1회당 바우처를 지급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전마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어른아이심리상담센터의 황유진 대표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기본적으로 10회는 진행해야 변화할 수 있기에 8회가 짧게 느껴진다”며 “상담 당사자에게 연장 금액까지 지원해야 진정한 바우처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수요에 비해 국가에서 지원하는 상담의 공급이 매우 적은 실정이다. 기자가 상담을 위해 직접 시청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심리상담센터에 전화해 본 결과 대기자가 많아 1~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스스로 찾은 생존의 기술
△기자가 작성한 감정일기와 유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은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우울과 불안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본지의 설문조사 결과 우울과 불안, 자살 충동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냐는 질문에 △주변인과 대화 △다른 일에 시간 투자 △운동 등 다양한 답변이 나왔다. 특히 지인과 대화하며 생각을 정리하거나 알바 혹은 학업과 같은 일에 몰두해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시간을 줄인다고 덧붙였다.
기자는 학생들이 추천한 방법이 효과적인지 알아보기 위해 아르바이트와 기사 마감으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감정 일기 작성 △Chat GPT와 대화 △유서 작성을 직접 해봤다. ‘감정 일기’란 사건 자체보다 하루 동안 느낀 감정에 초점을 맞춰 솔직하게 기록하는 것이다. 느껴지는 감정을 여과 없이 쓰다 보니 복잡하게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들이 구체화되면서 차분해졌다. 깨닫고 보니 기자는 소중한 시간을 단순노동에 허비하고 있다는 회의를 느끼고 있던 것이었다. 또한 빠르게 기사 마감을 하지 못한 것은 나태함이나 무능력이 아닌 단지 주어진 분량이 늘어난 것임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자 불안이 덜어졌다.
Chat GPT와의 대화는 해결 방안을 명확하게 알려줘 현실적으로 도움이 됐다. 지금 시기는 돈을 버는 것보다 시간이 주는 가치가 더 크다며 알바를 정리하는 것을 추천받았다. 책임감으로 망설였던 문제도 타당한 근거들로 설득하니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어렵지 않게 결정할 수 있었다. 유서 작성의 경우 처음엔 낯설고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인생에서 남길 수 있는 마지막 글이라는 생각에 몰입하니 술술 써 내려가졌다. 기자의 삶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어머니와의 추억이 스쳐가 감정이 벅차올랐다. 감사한 마음이 더욱 커졌으며, 앞으로도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행복한 기억만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후회되는 행동 △원망 되는 사람 △열등감에 시달렸던 시기 등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아 꺼내지 못했던 기억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기자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거름이라고 생각하니 의미 있게 다가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게 됐다.
너의 마음의 소리를 들려줘
전문가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도 도움이 되지만, 그것조차 어려울 땐 상담을 권유하고 있다. 세종사이버대학교 김효순(상담심리학과) 겸임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불안이나 우울도 감기와 같은 질병이라고 여기고 전문가 진료 및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본지 설문조사 결과 전문 상담기관에 상담을 받은 적 있냐는 물음에 ‘있다’고 답한 비율은 39.2%에 그쳤으며 비용의 부담, 상담에 대한 정보 부족등이 그 이유였다. 이에 황 대표는 1회 10만 원으로 책정된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청년층이 많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박사까지 오랜 시간 공부한 만큼 이는 그에 상응하는 가치라고 언급했다. 또한 “전마투와 같이 비용이 저렴해질수록 상담 당사자가 집중하지 못하며 연락 없이 예약을 취소하는 경우도 많다”며 “가격에 따라 상담 당사자의 태도가 달라진다”고 이유를 덧붙였다.
△본교 신학생회관 4층에 위치한 학생상담센터
기자는 상담센터에서 실질적으로 어떠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직접 △교내 상담센터△비영리 사단법인 상담센터 △사설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진행해 봤다. 가장 먼저 학교 상담의 경우 본교 BARUN 시스템을 통해 신청서를 작성했더니 빠르게 상담 일정이 잡혔다. 첫 상담은 신청서에 적은 내용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다. 이후 몇 가지 검사들을 문자로 전송해 줘 편하게 상담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 뒤 전문 상담사가 배정되면 15회에 걸쳐 깊이 있는 상담이 진행된다. 이를 통해 챙김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상담이 진행돼 수업과 시간이 많이 겹쳐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비영리 사단법인 ‘(사)PIE나다운청년들’이 운영하는 ‘파이심리상담센터’에서 제공 중인 무료 상담은 ZOOM으로 진행됐다. 센터에서 연결해 주는 상담심리전문가 1급과 전문상담사 1급 등의 자격증을 가진 상담사와 일정을 맞춰 주 1회, 최대 10회까지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상담사는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상담의 제약에 어려움을 표했지만, 학기 중 시간을 내기 어려운 생의 입장에선 어디서든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또한 비대면이라 걱정했던 것과 달리 오히려 부담 없이 고민과 어려움을 전달할 수 있었다.
△수원시 어른아이 심리상담센터 1호점
마지막으로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어른아이심리상담센터는 편안한 분위기로 꾸며져 있어 온전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아야 하는 공간으로 적합하다고 느껴졌다. 상담 중 어떤 기분인지, 어떤 생각이 드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며 내면을 들여다보고 또 표현하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배우게 됐다. 황 대표는 “어려움이 있어 보이는 친구한테 먼저 다가가는 것은 스스로를 치유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며, “서로가 마음을 들어주는 상담자가 돼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끝으로 김 겸임교수는 “누군가 자살에 대해 언급했다면 그것은 아무에게나 고백하는 사실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며 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다른 선택지를 제시해야 함을 강조했다.
김선혜 기자 Ι sunhye@kyonggi.ac.kr
정예은 기자 Ι 202412382@kyonggi.ac.kr
임서현 기자 Ι imseohyeon1827@kyonggi.ac.kr
정재헌 기자 Ι qisnxjqjx193@kyonggi.ac.kr
※ 이 기사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주최하고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가 주관하는 ‘2025 대학신문 생명존중 기사공모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 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 SNS 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