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심층보도] ‘바꿔주세요’ 글 하나로 도마 오른 슬로건
  • 정재헌 기자
  • 등록 2025-09-15 03:02:35
  • 수정 2025-09-15 03:41:30
기사수정
  • 본교를 대표하는 명품 슬로건, 엇갈린 의견
지난달 18일, 제38대 내일 총학생회가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을 통해 본교 슬로건 교체 청원을 게시하자 관련 논의가 촉발됐다. 이에 본지는 설문조사를 진행해 본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또한 제38대 내일 총학생회 박진형(산업경영공학·4) 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해당 사안의 진행 상황 등을 알아봤다.

한 학생이 쏘아 올린 작은 청원


 현재 본교의 슬로건은 ‘경기도를 대표하는 대한민국 명품대학’이다. 해당 슬로건은 지난 2022년 11월 7일 본교 복지관 하이엔드홀에서 개최된 개교 75주년 기념식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당시 본교 이윤규 총장은 “인문·예술 가치와 4차 산업혁명시대 뉴칼라 가치가 공존하는 ‘경기도를 대표하는 대한민국 명품대학’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포부와 함께 해당 슬로건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기존 슬로건이었던 ‘그대여 세계를 열어, 미래를 리드하는 경기인이 되리라’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지난 7월 30일, 본교 제38대 내일 총학생회(이하 총학생회) 사이트 청원 게시판에 ‘학교 슬로건에 관해 청원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익명으로 작성된 해당 글은 현재 슬로건이 △서울캠퍼스와 수원캠퍼스가 공존하는 학교의 특성 △재학생의 애교심 및 자부심 고취 △본교의 고유한 특색 등을 나타내긴 부족하다는 근거를 바탕으로 슬로건 공모전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지난달 18일 총학생회는 본교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 관련된 내용을 공지했다. 총학생회가 제시한 청원 게시판 제도에 따르면 청원 게시 30일 이내에 50개 이상의 동의를 받을 경우 충족 일로부터 30일 이내에 공식 답변이 제공되며, 동의는 에브리타임 공감 기능을 통해서 진행된다. 해당 공지는 지난 5일 기준 148개의 공감을 받으며 화두에 올랐다.


교체 여부 놓고 이어진 줄다리기


 한편 본교 에브리타임에 올라온 해당 글을 두고 열띤 토론이 진행됐다. ‘명품대학이라는 표현이 올드하다’는 평가와 ‘대외적인 경쟁력을 위해서 본교의 국립대다운 이름을 잘 이용한 슬로건’이라는 평가가 대립했다. 이에 본지는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설문조사를 진행해 본교 재학생들의 슬로건에 대한 의견을 알아봤다. 설문조사에는 총 279명이 참여했으며 설문 결과 54명(19.4%)이 본교의 슬로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답했고, 171명(61.3%)이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었다. 덧붙여 본교의 슬로건을 변경하는 것과 관련해 219명(78.5%)이 바꿔야 한다고 대답했으며 전반적으로 △본교의 건학이념인 진(眞)·성(誠)·애(愛) △방향성 △학교를 상징하는 키워드 등의 내용을 함축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 외에도 슬로건과 함께 본교 로고 역시 변경돼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이에 총학생회 박진형(산업경영공학·4) 회장은 “현재 에브리타임에서 슬로건 교체와 관련해 활발한 의견 교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며 “다양한 학우의 목소리를 균형 있게 수렴하고 제도적 절차를 통해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슬로건 교체는 비단 본교에서만 제기된 문제는 아니다. 지난 2023년 4월 12일, 아주대학교(이하 아주대)는 개교 50주년을 맞이해 ‘세상의 A+가 되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공개했다. 하지만 해당 슬로건은 학교 구성원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결국 지난 3월 31일, 아주대 제42대 We:A 총학생회의 주최로 공모전이 개최됐다. 공모전은 1차 학생회 내부 심사, 2차 학생 및 교직원 투표로 진행됐다. 공모전 결과 ‘그대는 선구자가 되어 나아가라, 그 길은 푸른 횃불이 비추리’라는 슬로건이 선정됐으나 아직 정식 슬로건으로 사용되고 있진 않다.


 바꿀 수 있을까···부닥치는 문제


 다수 학생의 바람과 달리 슬로건 교체 사안은 순조롭지 못한 실정이다. 박 회장의 말에 따르면 총학생회 측은 해당 청원 접수 이후로 관련 부처와 협의를 진행했었다. 그러나 현재 사용 중인 슬로건은 총장 임기와 직접적으로 연계된 대외 홍보 전략과 맞물려 있는 만큼 교체 시 행정적, 재정적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즉각적인 교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렇게 해당 사안을 꾸준히 검토한 결과 당장은 추진하기 어렵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따라서 박 회장은 “해당 내용을 차기 총학생회에 인계해 대외 홍보 방향이 새로이 정립되는 내년 총장 선거에 맞춰 설문조사나 토론회를 통해 추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이번 청원으로 인해 학생 사회 전반적으로 의미 있는 논의를 촉발했다는 사실만으로 큰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더불어 그는 앞으로 청원 제도가 더 활성화되고 임기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도록 청원 등록 과정 간소화, 논의 절차 공개 등의 개선 방안을 고민하고 있음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박 회장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 사회의 주인은 학우 여러분들이라는 사실”이라며 “현실적인 제약으로 당장은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지만, 과정과 기록을 이어가는 데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학생들의 목소리가 존중받는 건강한 공론장을 만들어 가겠다”는 내용과 함께 청원제도에 많은 관심을 가져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했다.


정재헌 기자 Ι qisnxjqjx193@kyonggi.ac.kr

0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