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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여름밤 화성행궁에서 시간을 거닐다
  • 김세은 기자
  • 등록 2025-09-02 23:36:53
  • 수정 2025-09-02 23:3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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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빛’만으로는 아쉽기에
수원화성의 밤은 낮보다 더 빛난다. 밤하늘 아래에서 다정한 대화를 나누며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화성행궁 야간개장 프로그램 <달빛화담, 花談>. 본지는 도심 속 궁궐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야경과 그 현장 분위기를 담아봤다.



정조의 원대한 꿈, 화성행궁

 

 화성행궁은 1789년 조선시대 후기에 지어진 궁궐이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금의 수원으로 옮기면서, 고을의 행정 중심지인 수원부 관아의 자리를 팔달산 아래로 이전하고 그곳에 새로운 관청을 세웠다. 이때 함께 건립된 것이 바로 화성행궁이다. 이곳은 정조가 수원에 방문할 때 거처하던 공간으로 사용되곤 했다. 이후 정조는 수원을 ‘화성유수부1)’로 승격시키고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준비하며 화성행궁을 증축했다. 그렇게 1796년, 600여 칸 규모의 웅장한 화성행궁이 완공됐다.

 

 이처럼 정조의 사랑을 받았던 화성행궁은 오늘날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현재 화성행궁에서는 ‘2025 화성행궁 야간개장 <달빛화담, 花談>’이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3일부터 오는 11월 2(일)일까지 이뤄지는 해당 프로그램은 매주 금요일부터 일요일,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운영되며 성인 기준 2,000원의 입장료로 즐길 수 있다. 프로그램이 진행될 동안 화성행궁은 △달빛의 초대 △달빛 마루 △놀빛마당 등 여섯 개의 테마 공간으로 꾸며져 전통놀이와 미디어아트 이외에도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을 선보인다. 




 

그 시절 여름을 온전히 느끼기

 

 입구에 들어서자 커다란 궁과 담장을 비추는 알록달록한 조명이 기자를 반겼다. 행궁은 ‘꽃의 산책 코스’와 ‘달의 산책 코스’ 두 가지 동선으로 나뉘는데, 기자는 달의 산책 코스를 택해 행궁을 돌아봤다. 야간 개장의 입구인 ‘달빛의 초대’ 테마를 지나 ‘놀빛 마당’에 들어서자 바닥에는 사방치기와 오징어 놀이 같은 전통놀이가 LED 빛으로 구현돼 있었다. 또 △제기차기 △실뜨기 △공기놀이처럼 그 시절의 장난감을 즐길 수 있는 평상도 존재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전통놀이를 즐기기 위해 선 줄을 따라 기자 역시 차례를 기다렸다. 특히 공기놀이에 자신 있던 기자는 평상에 놓여있는 공깃돌 5개를 집어 같이 온 팀원과 대결을 펼쳤다. 나무 바닥이라 쉽지는 않았지만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마음껏 웃으며 놀이에 빠질 수 있었다.

 

 이어 기자가 향한 곳은 ‘꽃빛 화원’이었다. 화성행궁에서 공식 행사와 연회가 열리던 ‘낙남헌(洛南軒)’ 앞에 마련된 이 공간은 바닥 위로 끊임없이 꽃무늬 미디어가 비쳤다. 꽃이 활짝 핀 봄의 계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를 통해 실제 화원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테마지만, 몇 초마다 바뀌는 꽃의 패턴이 지루하지 않게 시선을 사로잡았다. 선명한 빛으로 표현된 꽃 그림 덕분에 사진을 찍을 때도 실제 꽃밭에 있는 것만 같은 연출이 가능했다.




궁궐의 아름다움에 ‘미(美)’디어를 더하다

 

 꽃빛 화원을 거닌 뒤 ‘득중정(得中亭)’ 문을 지나니 ‘정원산책’이 펼쳐졌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화성행궁을 한눈에 담아 볼 수 있는 포토존이 나왔다. 산길이라 덥고 습했지만, 언덕을 오를수록 더위는 곧 멋진 풍경을 만날 기대감으로 바뀌었다. 정원산책의 끝에는 정조가 아들 순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수원에 내려와 한가하게 노년을 즐기고자 했던 ‘미로한정(未老閒亭)’이 있었다. 그곳에서 어두운 밤 빛을 받아 더 웅장해 보이는 행궁을 바라보니 정조의 뜻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화성행궁을 고이 눈에 담은 후 다양한 문과 건물을 지나 마지막 메인 테마인 ‘달빛마루’에 도달했다. 이곳에서는 화성행궁에서 가장 위상이 높은 건물 ‘봉수당(奉壽堂)’을 배경으로 한 미디어아트를 감상할 수 있었다. 거대한 궁 전체가 아름다운 꽃과 다채로운 색깔·무늬로 환하게 빛났다. 넋 놓고 미디어아트를 감상하던 관람객 A씨는 “관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었다”며 “야간개장이라 그런지 빛과 어둠의 조화가 너무 잘 이뤄졌고 자연물조차 빛을 받아 아름다웠다”고 전했다. 

 

 정조의 깊은 뜻이 담긴 화성행궁. 고요한 달빛 아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낮에 보는 풍경과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하는 야간개장에서 무더운 여름밤을 산책해 보는 건 어떨까.

 

김세은 기자 Ι seeun2281@kyonggi.ac.kr

사진 이윤아 수습기자 Ι yunna1212@kyonggi.ac.kr



1) 조선시대 수원을 관할하던 지방 행정 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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