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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더하기] 계절의 한 가운데에서, 제철코어를 외쳐봐
  • 이유정 기자
  • 등록 2025-09-02 23: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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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번뿐인 ‘지금 이 순간’의 가치
최근 계절을 적절한 때에 맞춰 즐기려는 흐름인 ‘제철코어’ 트렌드가 화제다. 사람들은 왜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계절을 일부러 의식하고 즐기려는 것일까. 이에 본지는 본교 이희정(경영학과)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제철코어’ 트렌드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지금 아니면 못 먹어요!


 벚꽃 없는 벚꽃 축제, 늦더위로 짧아진 가을. 뚜렷했던 계절의 경계가 흐려진 요즘, 사람들에게 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더욱 소중해졌다. 농업 기술의 발전으로 사시사철 다양한 식재료를 맛볼 수 있게 됐지만 오히려 ‘지금 아니면 즐길 수 없는’ 경험이 하나의 프리미엄으로 부상한 것이다. 이런 흐름을 설명하는 신조어가 바로 ‘제철코어’다. 제철코어는 패션이나 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 특정 유행을 뜻하는 단어인 ‘코어(core)’에 ‘제철’을 합친 말로, 한철에만 가능한 경험을 적극적으로 즐기려는 흐름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제철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 해당 계절에만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흐름은 SNS를 타고 빠르게 확산돼 소비자들의 굳건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기준 인스타그램에서 ‘제철 음식’ 과 ‘제철 과일’이 해시태그로 달린 게시글은 각각 30만 6,000개, 28만 9,000개에 달하며 그 인기를 증명했다. 조선비즈 보도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제철’이 언급된 게시글 수는 9만 5,000개로, 이에 비하면 약 3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이러니 제철을 사랑할 수밖에


 뜨거운 제철코어 열풍에는 복합적인 배경이 자리한다. 우선, 사람들이 직접 기후변화를 체감하면서 뚜렷했던 사계절을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봄이 되면 개나리가 핀다’는 익숙한 사실조차 더 이상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자, 언젠가 제철 경험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생겨났다. 이에 따라 사람들은 소중해진 계절을 더욱 적극적으로 즐기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 ‘저속노화’와 같은 건강한 삶에 대한 관심이 제철코어 열풍에 불을 지폈다. 본교 이희정(경영학과) 교수는 “저속노화는 단순히 노화를 늦춘다는 개념을 넘어, ‘현재를 건강하게 살면서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그 과정에서 제철 음식을 먹고 계절에 맞는 활동을 즐기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제철코어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제철코어를 통해 소비가 촉진되며 환경과 공동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수입 대신 국내 지역에서 제때 나는 먹거리를 소비함으로써 불필요한 운송 과정의 탄소 배출을 줄이고, 해당 지역 농가에 직접적인 소득을 안기는 등 지역 경제의 선순환을 이끈 것이다. 이 교수는 “제철코어는 단순히 계절을 즐기는 유행에 그치지 않고 지역 사회와 자연을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 일상에 스며든 ‘제철코어’


 최근 유튜브, TV 프로그램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사람들이 직접 계절을 기록하고 즐기는 모습이 늘고 있다. SNS에서는 △제철 음식 달력 △제철 버킷리스트 △제철 레시피 콘텐츠가 큰 인기를 끌며 제철을 즐기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식음료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복켓팅(복숭아 티켓팅)’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만큼 티켓팅에 준하는 노력을 들여 제철 과일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었을 정도다. 나아가 여름 한정으로 ‘햇’감자 감자칩이 출시되는가 하면, 수박 주스의 수박 함유량을 꼼꼼히 비교하며 생과일 본연의 맛을 즐기려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식품을 넘어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는 움직임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른바 ‘텍스트 힙’ 열풍과 맞물려 <토마토 컵라면>, <여름어 사전>처럼 계절을 상기시키는 책과 굿즈가 인기를 얻고 있다. 최근에는 MZ세대의 개인화된 취향을 반영해 여름에 맞는 책을 추천해 주는 온라인 사이트 ‘제철코어 시집 추천’이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작년 여름과 올해 여름은 같은 여름이지만 개개인의 맥락에서 모두 다른 의미가 있다”며 “각 계절이 지닌 고유하고 강력한 희소성이 소비자 심리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이러한 심리를 겨냥해 한정판 출시, 시즌별 프로모션 등의 마케팅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기존 시즌 한정 마케팅이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정 이벤트에 초점을 맞췄다면, 제철코어 트렌드를 겨냥한 마케팅은 계절마다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소비자의 일상에 깊이 스며든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 교수는 “제철은 꾸준히 반복되고 매년 새로운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순환적 키워드”라며, “△건강 △로컬 △자연이라는 가치와 함께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계절을 즐기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장기적인 소비 흐름으로 발전할 제철코어의 귀추가 더욱 주목된다.


 제철코어는 ‘가장 맛있을 때, 가장 좋을 때’라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 꺼내 놓았다. 기다려주지 않는 계절, 매년 새롭게 찾아오는 그 찰나의 특별함을 온전히 느껴보자. 그 유일한 순간이 단조로운 일상을 반짝일지도 모른다.


이유정 기자 Ι 202510140@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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