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일상에서 ‘나’ 찾기
지난달에 개관한 ‘아이아이 연희’는 서울 연희동 골목 깊숙한 저택에서 진행되는 체험형 심리 전시다. 본 전시는 혼자서 체험할 수 있으며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전시는 10분 간격으로 4명씩 입장한 뒤 약 90분간 신발과 양말을 벗고 진행된다. 입장 전, 소지품을 보관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저장할 수 있는 팔찌형 ‘스토리지’를 받는데, 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저장하는 역할이다. 각 공간에서 스토리지를 인식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스토리지를 착용한 기자는 떨리는 마음으로 다락방으로 향했고, 그곳엔 ‘나의 번지수 찾기’라는 화면이 나타났다. 기자의 정보를 입력하자 ‘2281-14’라는 번지수가 생성됐다. 곧이어 기자의 번지수 가 적힌 문으로 들어가면서 전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안녕, 나의 버디
첫 번째 공간은 ‘Part.1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테마로, 잊고 지냈던 기억을 통해 ‘나’를 마주하는 공간이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헤드셋을 쓰고 ‘나’에 관한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레 어린 시절의 기억 속 ‘버디’를 만나며 과거에 스며들게 됐다. 기자는 8가지 ‘버디’ 유형 중 소심했던 어렸을 때와 가장 비슷한 ‘안전제일’형을 고르며 더욱 깊이 어린 시절로 빠져들었다.
이어 ‘Part.2 꿈꾸던 다락방’이 등장했다. 이곳은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스크림 기차’, ‘별자리 상자’ 등 네 가지 게임이 모여있었다. 그중 기자는 ‘잔소리하는 두더지’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이는 두더지로 형상화된 기자의 어릴 적 잔소리를 때려잡는 게임이다. 게임을 통해 기자에게 상처가 됐던 잔소리를 때려잡으니 묘하게 후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게임당 4개의 딱지를 모아 다음 공간으로 나아갔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다음 공간은 ‘Part.3 나의 일상’으로, 어린 시절을 지나 다양한 상황과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 지금의 나를 돌아보는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 ‘어른 고사’를 통해 내가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인지 점검할 수 있었다. 질문을 보고 OMR을 체크하며 내려갈수록 기자는 자신이 생각보다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을 돌보지 못했단 생각에 기자의 눈에는 작게 눈물이 맺혔다. 그 후 채점 결과, 기자는 ‘프로헌신러’ 유형으로 분류됐다. 늘 남을 먼저 챙기느라 정작 ‘나’를 돌보지 못하고 있었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고사 이후에는 낯선 세상에 끌려가기만 하던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념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이 펼쳐졌다. 이 공간에서는 자신의 에너지를 충전해 가면서 ‘유연’, ‘외면’ 등 8가지 주제의 기둥에 각각 응답한다. 모든 기둥에 응답을 마치면, 이 공간의 미션은 끝난다.
마지막 공간인 ‘Part.4 내 안의 공간’에 들어서면 어두운 조명 아래 고요한 모래사장이 펼쳐졌다. 이곳에서는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모래 위에 적을 수 있었다. 기자는 어릴 적 소심했던 자신에게 “조금만 더 용기를 내면 좋을 것 같아”라고 말을 전했다. 이후 ‘Part.5 안녕, i’에서 번지수가 적힌 혼자만의 작은 방으로 들어가면, 지금까지 기자가 저장해 온 스토리를 동행자 버디와 함께 바라본 후 전시장을 떠나게 됐다. 전시를 마친 뒤에는 족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며 QR 결과 카드를 받으니, 전시를 관람하며 90분 동안 선택했던 자아들이 하나하나 기록돼 있었다. 자신이 선택한 길들을 되짚으며 기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볼 수 있었다.
세상에 치여 자신을 돌아볼 수 없는 지금. 과거와 현재의 자신은 어쩌면 많이 변했을지도,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아이아이 연희를 통해 잃어버렸던 자신의 버디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글·사진 김세은 기자 Ι seeun2281@kyongg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