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를 위한 새로운 선택
예전에는 “오늘 아침 뭐 먹었어요?”라는 질문에 ‘밥’이나 ‘국’이라는 말이 돌아왔지만, 요즘은 ‘빵’이라는 대답이 추가됐다.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지난 2023년부터 지난해 사이 한국 성인 소비자의 13%가 하루 세 끼 중 한 끼 이상을 베이커리 류로 대체하고 있다고 한다. 과거에는 ‘간식’으로만 여겨졌던 빵이 이제는 식사로 기능을 하는 것이다. 특히 직장인과 학생들 사이에서는 아침이나 점심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지로 각광 받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고급 식재료를 사용한 ‘프리미엄 베이커리’가 늘어나면서 차별화된 맛과 품질을 강조하는 빵집들이 생겼고 ‘빵덕후’라고 불릴 정도로 빵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처럼 빵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빵집의 수도 증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6년 기준 전국에는 약 1만 7,000개 이상의 빵집이 존재했으며 현재는 약 1만 8,000개를 넘어섰다고 한다. 그렇게 오늘날의 빵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운 라이프 스타일이 됐다.
이러한 빵의 유행은 지난해 대전에서 열린 ‘빵축제’를 통해 확실히 확인할 수 있다. 빵축제 기간 이틀 만에 약 14만 명이 방문했으며 입장 대기 시간은 2시간 이상이 걸릴 정도였다. 사람들은 단순히 맛있는 빵을 사 먹는 것을 넘어 그 안에서 취향을 나누고 SNS에 기록하며 빵축제를 즐겼다. 이와 같은 빵의 인기에 힘입어 빵과 관련한 신조어인 ‘빵게팅’, ‘빵픈런’ 등이 생겨났다.
갓구운 빵을 위한 맛있는 여행
빵지순례에 대해 들어봤는가. 이는 SNS 등 매체의 발달로 인해 지역 유명 빵집들이 명성을 얻으며 생겨난 신조어로, 유명한 빵집의 빵을 구매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빵지순례 현상은 서구화된 식습관과 함께 MZ세대의 ‘취향 소비’ 문화가 만난 결과물이다. 관련해 단국대학교 정연승 경영대학원장은 “빵, 커피 등 서구의 식문화가 익숙해지면서 베이커리 시장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며 “특히 빵집과 베이커리 카페 등이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인테리어, 디자인 등을 주도하면서 빵지순례가 유행으로 떠오른 것”이라고 밝혔다.
대표적인 빵지순례의 예시로 대전의 ‘성심당’이 있다. 1956년 찐빵집으로 시작한 성심당은 대전 지역에서만 운영되지만, 현재 전국적인 팬덤을 보유할 정도의 ‘빵 명소’로 손꼽힌다. 성심당의 대표 메뉴인 ‘튀김소보로’는 출시 이후 지난 2021년까지 8,000만 개가 넘게 팔렸다. 최근에는 ‘딸기시루’와 ‘망고시루’ 등 케이크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오픈 시간에 맞춰 줄을 길게 서는 ‘오픈런’ 현상까지 불러일으켰다. 덕분에 성심당은 지난해 매출 1,243억 원을 기록하며 파리바게뜨(PARIS BAGUETTE), 뚜레쥬르(Tous les Jours)와 같은 대기업 빵집을 앞질렀다. 성심당뿐만 아니라 군산의 ‘이성당’과 부산의 ‘옵스(OPS)’ 등 다른 지역에서도 지역을 대표하는 빵집이 나타나며 빵지순례의 목적지가 되고 있다.
빵 한입에 살아나는 도시 경제
이러한 동네 빵집은 2010년 이후부터 조금씩 몸집을 키워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5년 동네 빵집의 시장 점유율은 39.5%로 전년 대비 12% 상승한 수치였다. 이는 단순히 소규모 가게의 부활을 넘어서 소비자들의 선택 기준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에는 SNS의 발전으로 동네 빵집의 힘이 더욱 강해졌다. △독특한 모양의 빵 △화려한 진열대 △감각적인 인테리어는 SNS에 올리기 좋은 포토 스팟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자연스레 동네 빵집은 입소문을 타고 소비자들의 발길을 끌게 됐다. 이렇게 이른바 ‘동네 명물’이 된 빵집들은 지역 주민은 물론 외지인들까지 끌어들이며 자신만의 브랜딩을 확고히 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지역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행객들은 빵지순례를 위해 해당 지역을 방문하고, 빵집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근처 시장과 관광지까지 자연스럽게 찾는다. 이와 같은 현상이 먹거리 소비를 넘어 지역 경제와 관광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저 맛있는 빵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특색과 스토리를 담아내면서 소비자에게 ‘문화 공간’으로 인식된 것이다. 덕분에 지역 내 다양한 상권이 살아나고 전반적인 관광 수입 증대로도 이어지게 됐다.
이를 계기로 각 지방 자치 단체도 지역의 숨은 빵집을 관광 콘텐츠로 재해석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동네에 숨어 있는 빵집들을 알리기 위해 ‘빵지순례 지도’를 제작한 사례가 있다. 대전은 지난해 ‘대전 원도심 현지 빵집 지도’를 발행했다. 대구 역시 지역의 빵집을 역사와 함께 소개한 책자인 ‘빵은 대구’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렇듯 작은 빵집들이 지역의 이야기를 품고 사람들의 발걸음을 모으는 새로운 명소가 되고 있다.
이지효 수습기자 ㅣ delawsly@kyongg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