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아끼던 열쇠고리를 잃어버리거나, 소중한 친구와 관계가 끊어지는 등 우리는 살면서 다양한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상실 뒤에 찾아오는 고통을 이겨내기란 언제나 간단하지 않다. 지난 2023년 출판된 <우주를 듣는 소년>은 소중한 가족을 잃은 아들과 엄마가 상실의 고통을 이겨내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이 책은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의 찬사를 받아내며 지난 2022년 여성문학상을 최종 수상한 바 있다.
재즈 뮤지션이었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열네 살 소년 ‘베니’는 엄마 ‘애너벨’과 단둘이 세상에 남겨진다. 두 사람은 죽은 아빠, 남편에 대한 추모를 끝마칠 새도 없이 다시 일상 속으로 내던져진다. 심지어 베니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주변 사물들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엎친 데 덮친 격, 남편의 죽음으로 홀로 가정을 책임져야 했던 애너벨은 바쁜 일상과 저장강박증으로 인해 집에 온갖 사물을 쌓아둔다. 사물들은 소곤거리며 베니에게 말을 걸었고, 베니는 그 소리를 견디지 못해 하루하루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사물의 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믿어주는 사람 하나 없는 현실에 베니는 결국 유리창을 치거나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등의 이상 행동을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베니는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학교에서 도망쳐 한 도서관에 들어간다. 그곳에서 베니는 어떤 목소리와도 다른 특별한 책의 목소리를 듣는다.
“책은 인내심이 많다. 우리는 당신들의 삶이 얼마나 긴박하고 절박한지 알고, 그래서 가만히 때를 기다린다”
『우주를 듣는 소년』中
<우주를 듣는 소년>은 작가 자신을 위로하는 소설이다. 작가 ‘루스 오제키’는 혼혈아로 태어나 괴롭힘을 당하고 소아정신과에 입원했었다. 심지어 그는 베니와 같이 아버지의 사망 후 그의 목소리를 들었던 경험까지 있었다. 이렇듯 작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베니에게 투영시키며 이야기의 현실감을 끌어냈다. 또한 선불교 승려로서 여러 철학적인 메시지를 전하며 사춘기 소년의 성장과 여러 사회 문제를 흥미진진하게 적어 내렸다.
기자는 평소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필요 없는 것들을 정리하다 보면 물건과 관련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차마 물건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물건을 버린다고 기억을 잃는 것이 아닌데, 직접 상실을 택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도무지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쩌면 애너벨도 기자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바쁜 현실도 한몫했겠지만, 남편을 잃은 상실 후 또 다른 상실을 견디고 싶지 않았으리라 생각됐다. 아무리 많은 상실을 겪어도 사람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다. 중요한 건 상실을 피하는 것이 아닌, 상실을 건강하게 이겨내는 마음일 것이다. 지금 상실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마음을 피하기보단 정면 돌파해 보자. 언젠가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한슬 기자 Ι lhs522701@kyongg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