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정은 내 감정이 아니야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은 피해자가 자신을 위협한 가해자에게 이상하리만큼 동조하거나 연민을 느끼는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단순히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심지어는 의지하게 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스톡홀름 증후군의 명칭은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발생한 은행 강도 사건에서 유래됐다. 당시 두 명의 범죄자는 은행원들을 인질로 잡고 동료 범죄자의 석방 및 돈을 요구하며 6일 동안 인질극을 벌였다. 그 기간 동안 인질들은 친절을 베푼 범죄자들에게 동정심을 품게 됐다. 이 사건 이후 범죄심리학자 ‘닐스 베예로트(Nils Bejerot)’는 뉴스에서 인질들의 심리에 대해 설명하며 해당 현상에 대해 스톡홀름 증후군이라 이름 붙였다.
국내에서도 스톡홀름 증후군이 발현된 사례가 있다. 바로 1988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남기며 전국을 뒤흔든 ‘지강헌 사건’이다. 당시 인질들은 호의적인 모습을 보인 지강헌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살아남은 지강헌 일당을 위해 탄원서를 제출하며 그들의 형량을 줄여주는 데 일조했다. 해당 사건은 인질이 인질범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며 국내 스톡홀름 증후군을 대표하는 사례로 남았다.
모순된 감정이 만들어낸 유대
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스톡홀름 증후군은 생존 본능과 감정적 의존이 얽힌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피해자는 고립된 상태에서 외부와의 모든 연결이 끊기며, 오직 가해자만이 유일한 접촉점이 된다. 이때 가해자의 아주 사소한 친절이나 감정적 반응은 피해자에게 살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게 형성된 관계는 공포를 넘어서 △신뢰 △애정 △존경심으로 확장된다. 논리나 객관성보다는 생존을 위한 심리적 최적화가 우선되는 것이다.
또한 인지 부조화 이론으로도 스톡홀름 증후군을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과 현실 사이에 모순이 생기면 그것을 해소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만약 가해자가 약간의 친절함을 보인다면, 가해자를 두려워하는 감정과 가해자의 친절이라는 현실 사이에 모순이 생기게 된다. 이에 피해자는 그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그 사람도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며 감정을 조정하게 된다. 이렇게 감정 조정을 해야만 괴로움과 무서움을 덜 느낄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피해자는 가해자를 향해 왜곡된 정서적 유대를 굳히게 된다.
스톡홀름 증후군에서 벗어나기
스톡홀름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은 가해자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려 한다. 이들의 이런 태도는 심리·정서적 상태를 악화시키고 외부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초래한다. 이러한 스톡홀름 증후군의 증상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이하 PTSD)와 유사하다. 이에 스톡홀름 증후군 환자들은 PTSD에 준하는 치료를 받게 된다. 치료 방법에는 △심리치료 △인지 행동 치료(이하 CBT) △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이하 EDMR) 등이 존재한다. 심리치료의 경우 상담을 통해 스톡홀름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이 그들의 경험을 처리하고 건강한 정서적 반응을 개발하도록 돕는다. CBT는 ‘가해자가 나를 보호해 줬다’는 식의 생각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됐는지를 조명하고, 그것을 다시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이는 부정적인 사고 패턴을 식별하고 변화시키는 데 도움을 주며,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형성한 긍정적인 감정과 그로 인한 혼란스러운 감정을 다루게 해준다. EDMR은 PTSD 치료 시 널리 사용되는 방법으로, 눈동자 운동을 통해 트라우마를 재처리하도록 돕는다.
스톡홀름 증후군을 치료하지 않은 채 방치한다면 추후 더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가해자를 향한 이해와 연민이 결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자. 살기 위한 본능으로 자신을 상처입힐 수 있으니 말이다.
강준혁 기자 Ι kjunh1092@kyongg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