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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대학가] 당신의 학점, 포기하시겠습니까
  • 강준혁 기자
  • 등록 2025-05-19 12: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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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점 포기로 신뢰를 잃어가는 성적표
현재 2010년대 초반 학점 인플레이션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사라진 학점 포기를 대학가에 재도입하려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에 본지는 학점 포기제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해당 제도에 대해 상반되는 입장을 살펴봤다.

지울 수 있다면 지우고 싶은 과거


 ‘학점 포기제’란 취득한 성적에 대해 학생이 신청할 시 성적증명서 상에서 삭제할 수 있는 제도로, 본교의 경우 2013학년도 2학기까지 수강한 과목에 한해서만 신청 가능하다. 이는 재수강과는 차이를 보인다. 재수강은 취득한 성적이 일정 수준 이하인 과목에 대해 다시 수강해 학점을 취득할 수 있는 반면, 학점 포기제는 취득한 성적을 완전히 지울 수 있다. 학점 포기제는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학가에서 널리 운영되다가 2014년부터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이는 2013년 국정감사 당시 학점 세탁의 원흉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당시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대학에 ‘학생성적 관리 개선방안’을 요구하며 △학점포기제 △재수강 △취업용 성적표 발부 등에 제한을 가했다.


 하지만 최근 대학가에서 학점 포기제가 부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고려대학교의 경우 이전에는 완전히 폐강된 과목에 한해서만 학점을 포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작년 3월부터 모든 과목을 6학점까지 포기할 수 있도록 학점 포기제를 확대 개편했다. 또한 한양대학교는 2014년 학점 포기제를 폐지했지만 올해부터 다시금 부활시켰으며, 숭실대학교도 지난 2021년 학점 포기제를 도입했다. 이외에도 △건국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 △아주대학교 등에서 학점 포기제를 운영 중이다.


학점 포기제에 대한 입장 엇갈려


 학생들이 학점 포기제를 다시 요구한 이유는 취업난의 심화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년층 고용률은 지난 2023년 46.5%에서 작년 46.1%로 하락했고, 지난 3월 기준 44.5%를 기록했다. 경기 위축과 기업의 채용 축소로 인해 학생들 사이에선 학점 하나로 당락이 갈린다는 위기감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일례로 작년 하반기 취업한 직장인 A씨 는 뉴시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요즘은 모든 학년의 전 과목 성적을 요구하는 기업이 많다”며 “낙제를 지울 수 있다면 진로에 맞춘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쉬울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학점은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과 대학원 입시에서도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 올해 로스쿨 입학자격시험인 법학적성시험(LEET)은 약 1만 9,400명이 지원해 평균 10 대 1 경쟁률을 기록했다. 일반대학원 석사과정 진학자는 지난 2020년 24만 1,650명에서 지난 2023년 25만 518명으로 증가하는 등 경쟁이 치열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선 로스쿨 진학 과정의 경우 학점으로 인해 시도조차 못 하고 포기한 사람들이 다수 존재하며, 학점을 적게 주는 과나 학교는 진입장벽이 훨씬 높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편 대학의 입장은 다르다. 일부 대학은 학점 포기제 확대가 당장은 학생들에게 득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학점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공신력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은 코로나19 이후 두드러지고 있다. 국내 대학 상위 15개의 전공 A학점 이상 비율은 코로나 이전인 지난 2019년 1학기 41.7%에서 지난 2022년 1학기에는 47.5%를 기록하며 이전보다 상승했다. 수도권 대학의 한 관계자는 “우리 대학도 학점 포기제에 대한 요구가 강해지고 있다”며 “도입한 초기에 졸업한 학생들은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사회에서 우리 대학 학점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경우의 수를 두고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학생들 사이에서도 학점 포기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일각에선 코로나19 이후 성적 구조가 완화됐다고 주장하며 학점 포기제가 확대되면 학업에 대한 긴장감이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모두의 학점이 상향 평준화되는 상황에서 학점 외 활동의 평가가 더 중요해지게 된다면 공과대학은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일부 대학, 학점 포기제 도입 요구해


 현재 △연세대학교(이하 연세대) △서강대학교(이하 서강대) △이화여자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등의 총학생회는 학점 포기제의 도입을 학교 측에 공식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작년 연세대 제57대 Yours 총학생회는 폐강 및 장기간 미개설로 인한 과목의 경우 재수강에 어려움이 있기에 이에 한해서라도 학점 포기제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학교 본부 측과 여러 차례 회의를 가졌지만 최종 협상에 실패했고, 결국 작년 12월 총장과 직접 면담에 나서면서 해당 안건을 재검토해 보겠다는 답변을 얻었다. 이어 올해 연세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월 23일에 해당 내용에 대해 교무처와 교학협의회 정례회를 진행한 바 있다.


 서강대도 학점 포기제 도입을 위해 학교 본부와 학생 사이에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서강대 제52대 나루 총학생회(이하 나루 총학생회)는 지난달 14일부터 16일까지 학점 포기제 도입을 위한 오프라인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또한 지난달 28일 진행된 총장과의 대화에서 학점 포기제에 대한 의견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다음 달, 나루 총학생회는 교학위원회에서 해당 안건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강준혁 기자 Ι kjunh1092@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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