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시 돌아왔어
지난해 10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일명 ‘한강 효과’를 불러오며 한국인들의 독서율을 점진적으로 끌어올렸다. 예스24에 따르면 10~20대 작년 도서 구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18.2% 증가했으며 올해 1월에도 9.3% 상승하는 등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수상 후 5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영향이 이어져 독서가 하나의 문화로 다시금 자리 잡은 것이다.
젊은 세대는 문해력 저하, 숏폼 급부상 등으로 텍스트와 거리가 먼 세대로 인식됐다. 하지만 이는 한강 효과와 함께 ‘Y2K’가 유행하면서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Y2K로 인해 MZ세대는 전자 기기에서 멀어져 손 글씨를 쓰고 종이책을 읽는 등 ‘아날로그’에 관심을 기울였다. 아날로그는 요즘 사람들이 쉽게 하지 않는 문화로서 새롭고 개성 넘치는, ‘힙(hip)’한 존재가 된 것이다. 여기서 독서, 기록 등 텍스트 콘텐츠를 힙하다고 여기는 ‘텍스트힙(Text–Hip)’ 트렌드가 탄생했다.
글자는 지루해? 아니, 힙해!
텍스트힙에는 편지, 블로그 등 텍스트로 이루어진 모든 콘텐츠가 속한다. 가장 흔히 즐기는 텍스트힙은 바로 독서다.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북스타그램’ 등의 해시태그를 달아 독서를 자랑 및 인증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또한 교환 일기처럼 한 책에 서로의 감상과 의견을 적어 교환하는 ‘교환 독서’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1월 교보문고는 MD와 독자가 독서 기록을 주고받는 ‘비밀 교환 독서기록장’을 진행한 바 있다. 해당 트렌드를 겨냥해 다양한 독서 상품 또한 출시됐다. 한 손으로도 책을 쉽게 펼칠 수 있도록 돕는 ‘독서링’이 그 예시 중 하나다.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는 손수 자개 독서링을 만들 수 있는 체험 공간을 마련해 텍스트힙을 즐길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독서와 함께 텍스트힙을 이루는 양대 산맥이 있다. 다시금 주목받기 시작한 ‘필사’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교보문고에서 개최한 ‘제10회 교보손글씨대회’는 4만 4,000여 명의 역대 최다 응모자를 기록하며 필사의 인기를 증명했다. 하지만 현재의 필사는 그저 글을 옮겨쓰기만 했던 과거의 필사와 다르다. 요즘 필사는 만년필, 엽서 등 여러 팬시 용품을 활용해 작품에 따라 각기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외에도 친구 또는 모르는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펜팔(pen-pal)’을 즐기기도 한다. 펜팔은 SNS로 문자를 주고받던 MZ세대들에게 텍스트를 통한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아무 말이나 적다 보면 기분이 조크든요
어쩌면 기자 본인은 그 누구보다도 텍스트힙을 실천 중이지 않나 싶다. 격주마다 다양한 주제로 기사를 읽고 쓰니 말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트렌드 속으로 들어가 보기 위해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소품샵 ‘글월’에서 제공하는 펜팔 서비스를 경험해 보기로 했다. 글월에 들어간 기자는 곧장 카운터로 가 펜팔을 요청했다. 그러자 △이용 가이드 △편지 세트 △우표 △펜을 받을 수 있었다. 기자는 우선 가이드에 따라 목적지를 알 수 없는 편지를 적어나갔다. 어떤 말을 써야 할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던 기자는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써 내렸다. 곧바로 확인할 수 있는 문자와 달리 편지는 느긋한 감성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써 내린 편지를 통해 바쁜 현대 사회에서는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표에 펜팔을 이어갈 수 있는 표식을 그려 붙인 후, 봉투에 적힌 키워드를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표시해 편지를 접수했다.
편지를 접수하면 키워드를 보고 누군가의 편지를 고를 수 있었다. 기자도 고른 ‘산책을 좋아하는’이란 키워드가 유독 강조된 봉투를 보고 운명처럼 손이 이끌렸다. 익명이 쓴 편지에 적힌 소소한 일상들은 기자의 마음에 포근하게 내려앉았다. '제가 내린 행복한 삶에 대한 정의는 순간에 대한 감사예요', '익명 님의 행복한 삶은 뭔가요?' 등 담백한 말투로 전하는 행복에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문자로 말하면 그저 평범했을 작은 이야기를 편지로 주고받으니 더 소중하고 재밌는 순간이었다
텍스트는 꼭 불편하고 지루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무엇보다도 감정을 잘 담을 수 있는 것이 글이니 그 감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텍스트를 통해 순간의 감성을 음미해 보는 건 어떨까. 마음속에서 전에 없던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글·사진 이한슬 기자 Ι lhs522701@kyongg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