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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올진 세상] 노후화된 주택가에 드리운 재개발의 빛과 그림자
  • 박상준 기자
  • 등록 2024-12-09 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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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많은 노력 필요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뤄낸 우리나라는 도심지의 주택 공급 부족과 노후화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책으로 재개발 사업이 시행되고 있지만 여러 가지 부작용을 동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본지는 약 20년 동안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 서울특별시 용산구 보광동 일대에 찾아가 현장을 취재해 봤다. 또한 재개발 사업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본교 김진유(도시·교통공학전공)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싹 다~ 갈아엎어 주세요


 한국전쟁 이후,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은 대다수의 건물이 붕괴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이에 무너진 도시를 재건하기 위한 과정에서 많은 지역이 임시적인 형태로 개발됐다. 동시에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으며 농민들이 도시 공업단지로 이주하는, 이촌향도 현상이 극심해지며 도심으로 많은 인구가 몰리게 된다. 반면 엄청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 도심지엔 불법 판자촌이 점차 확산됐다. 이로 인해 해당 지역들을 중심으로 △양극화 심화 △주택난 △위생시설 열악 등의 문제들이 대두되기에 이른다.


 이처럼 문제가 점차 심각해지자, 1970년대 정부는 도시계획법 개정을 통해 재개발 사업의 근거를 마련한다. 이 외에도 재개발 관련 법안의 제정을 통해 기존의 노후화된 지역을 대상으로 주거 환경 개선을 추진한다. 이를 통해 주택 공급 확대와 함께 도시 재정비를 목표로 대규모 주택 단지를 개발하는 등 정비기반시설이 열악한 지역의 개선을 이뤄냈다.


 이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민 △건설업체 △정부가 공동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사업 방식인 ‘합동재개발’이 추진된다. 이는 개발 자금 조달이 어려운 지역주민들의 부담을 줄임과 동시에 정부 입장에서도 재정 부담 없이 도시를 재정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졌다. 이처럼 재개발 사업에 민간 기업들이 참여하기 시작하며 도시 재정비가 활발히 이뤄지게 된다.


 다만, 이러한 방식의 재개발은 노후화된 일부 지역만 개발하는 탓에 일대가 난개발된다는 한계를 가졌다. 이에 2000년대 들어 기존 재개발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재정비촉진지구, 이른바 ‘뉴타운’ 사업이 시행됐다. 이는 지역을 대단위로 묶어 지역 내 모든 건물을 철거한 후 공지에 새로운 계획도시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해당 사업을 통해 낙후된 공간 없이 주택가와 기반시설 모두 크게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길어도 너무 긴 재개발 사업, 좋은 면만 있지는 않아


 현재 재개발 사업은 간단히 △사업준비단계 △사업시행단계 △관리처분단계 △청산단계로 나뉘어져 진행된다. 먼저 사업준비단계에서 정비구역을 지정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구역 내 토지 소유자 1/2 이상의 동의를 얻어 주민으로 이뤄진 추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구역 신청이 완료된 후엔, 단지를 어떻게 조성할 것인지에 대한 정비 계획을 수립한다. 이후 지역에 대한 계획이 수립돼 승인될 경우, 관리처분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여기서 관리처분이란 주민의 동의와 관청의 인가를 받아 발족된 조합원이 출자한 자산의 규모와 얻게 될 주택의 가치를 산정해 조합원에게 배분되는 권리를 정하는 것을 말한다. 이후 시공이 완료되면 계획대로 시행됐는지 확인받은 뒤, 단가에 차이가 있는 경우 차액에 해당하는 청산금을 지급하거나 징수하고 조합을 해산하며 단계가 마무리된다. 이처럼 재개발 사업은 짧을 경우 10년, 늦어지면 20년 이상 걸리는 장기적 사업으로써 진행되고 있다.


 한편, 이처럼 재개발 사업이 장기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조합 비리, 재개발 예정 지역 슬럼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이에 본지는 재개발 사업의 명암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아보고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이자 신통기획위원을 맡고 있는 본교 김진유(도시·교통공학전공)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교수는 “재개발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기존 커뮤니티가 재편된다는 데 있다”고 전했다. 재개발 대상 지역은 대부분 중산층 이하인 서민들이 살고 있어, 재개발 사업이 시행될 경우 중산층 이상이 사는 구역으로 변모하게 된다. 이에 기존 거주민들은 별수 없이 외곽으로 밀려나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또한 현재 이뤄지고 있는 재개발 사업의 경우 구역 지정 기준이 불명확하고 거주민들의 사회경제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해 인근지역과의 연관성이 고려되지 않고 난개발되고 있는 실정이다. 불량주택이 밀집한 지역에만 구역 지정을 하고 있어 전체 도시계획과 부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해당 문제에 있어 주택을 더 많이 공급해야 한다는 입장과 노후 및 불량한 주택을 시급히 신규 주택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두 개의 입장이 부딪치고 있다고 언급했다. 동시에 주택 공급 확대와 도시의 구조가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됐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경우, 재개발을 통해 토지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두 입장이 조화롭게 융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현재는 우선순위가 항상 주택 정책 쪽으로 치우쳐 있다”며 “완전히 빈 땅에 새로운 도시를 계획하지 않는 이상 해당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 덧붙였다.



텅 비었다는 보광동,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현재 서울시는 지난해 기준 △한남 △은평 △영등포 등 31개의 지역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해 추진 중에 있다. 이중 한남뉴타운의 경우 2003년 한남뉴타운지구 지정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 지난해 10월 말부터 주민 이주가 시작되며 모두 공실인 상태다. 이에 본지는 지난달 29일, 서울 재개발 사업의 최대어로 꼽히는 용산구 보광동 일대를 찾아가 취재를 진행해 봤다.


 오후 3시경, 사람들로 붐비는 이태원역에서 10여 분 걸어 도착한 보광동은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 노후 주택이 난립한, 전형적인 구도심의 특징을 띠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의 연속이었던 도로는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곧 있을 재개발에 모두 퇴거를 마친 탓인지 휑한 골목길에 움직이는 물체란 쓰레기를 뒤지는 고양이 뿐이었다. 이처럼 한적한 분위기를 풍기는 골목길을 따라 이동하자, 주택의 입구마다 출입금지 안내 스티커와 함께 띠를 둘러놓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편 좁은 골목길마다 수풀이 우거진 것은 물론이고 빈 부지엔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 있어 쓰레기가 쌓이지 않은 본래의 모습을 유추하기도 힘든 공간들로 가득했다. 가게들이 입점한 상가 또한 간판만 걸려 있을 뿐이었고 실제로 운영하는 곳은 전무했다. 이후 마침내 영업 중인 편의점을 찾았지만, 한 달 내로 폐업한다 밝히며 20~30%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들을 내놨다. 이 외에도 재개발 예정 지역에서 20년간 포장마차를 운영했던 A씨는 이주가 시작됨에 따라 오랜 터전을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장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재개발, 해외는 어떨까


 이처럼 재개발 사업이 장기화됨에 따라 주변 환경이 열악해지며 불편을 느끼는 등의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다. 그렇다면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1990년 이후 장기적인 경제 불황으로 정체를 겪던 일본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사용하지 않는 토지가 대량으로 발생하게 된다. 이에 정부는 2001년 도시재생특별조치법을 제정해 △도시재생프로젝트 △민간 도시개발 투자 촉진 △전국 도시재생을 추진했다. 이에 모리빌딩과 같은 민간 디벨로퍼1)들이 사업에 참여하며 롯본기힐즈, 마루노우치 등 구도심의 지역특성을 살려 성공적인 도시재생을 이뤄낼 수 있었다. 이 결과 롯본기힐즈의 경우 일일 평균 방문자수가 평일 10만 명, 휴일 15만 명에 이르게 된다.


 영국 또한 산업혁명 이후 쇠퇴하기 시작해 슬럼가로 전락한 ‘킹스 크로스’의 개발 사업을 추진했다. 이는 유럽 최대의 역세권 개발 사업으로, 해당 지역을 △비지니스 △문화 △주거 등 다양한 기능이 결합된 복합적인 공간으로 변모시키게 된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이러한 경우 막대한 자본을 가진 거대 단체가 소유권을 확보해 가며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성공적인 도시재생을 이뤄낼 수 있었다”며 “해당 사업을 진행하는 민간 디벨로퍼들이 우리나라에선 아직 성장하지 못한 상태”라고 전했다.



재건축에 대한 인지 수준 높여야…


 김 교수는 “현재 재개발에 있어 상당 부분의 책임을 주민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로 인해 많은 문제가 생겨나고 있는 실정”이라 전했다. 대다수의 문제들이 재개발 구역 지정 이후에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조합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어 “구청 또는 시청에서 주도적으로 사업을 시행한다면 이런 일은 없겠지만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주도적으로 하긴 어려운 실정”이라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재개발 사업 관련 제도를 바꿔야 할 필요가 있음을 당부했다. 김 교수는 “지금 시행하고 있는 공공 재개발 또한 막 도입됐다”며 “조합의 운영에 있어 투명성 또는 재건축 사업에 대한 인지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교육을 시행해 딜레이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전했다.


 노후화된 지역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재건축 사업은 택지 부족, 슬럼화 등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지역의 고유한 역사의 상실이라는 크나큰 손실을 끼치고 있다. 이처럼 철거재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지금, 진정한 의미의 도시재생을 이뤄내야 할 때다.


글·사진 박상준 기자 Ι qkrwnsdisjdj@kyonggi.ac.kr 



1) 땅 매입부터 △기획 △설계 △마케팅 △사후관리까지 총괄하는 부동산 개발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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