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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 박상준 기자
  • 등록 2024-11-25 17: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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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려심 넘치는 성격. 누가 봐도 잘생긴 데다, 명문대를 다닐 정도로 머리가 좋은 주드는 항상 그의 절친한 친구들 △제이비 △멜컴 △윌럼 등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다만 이토록 완벽해 보이는 그에게도 크나큰 결점이 있었는데, 바로 타인에게 자신을 완벽히 숨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이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극히 일부였고 그조차도 표면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가령 그가 △한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든지 △찌는 더위에도 긴 소매 옷만 입고 △가끔 극심한 발작을 일으켜 몇 시간이고 고통의 시간을 보내도, 그 이유에 대해 절대로 말하지 않았다. 그저 항상 자신은 괜찮으며 걱정할 필요 없다고만 전할 뿐이었다.


 다만 견딜 수 없는 밤이 될 때면 그는 욕실로 가 세면대에 팔을 올리곤 면도칼로 팔을 연거푸 긋기 시작했다. 극심한 통증을 수반하지만, 견딜만하다. 새로 돋아난 피부 사이를 비집고 빨간 피가 흘러나오자, 그제야 해방감을 느낀다. 그는 이를 자기혐오로 더럽혀진 자신을 정화하는 일종의 행위로써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때면, 하이에나 떼와 같은 과거의 기억들이 그를 맹렬히 노린다. 이러한 일은 단조로운 일상이 자해로 이어지는, 일련의 음산한 패턴으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시간이 흘러 변호사가 된 그는 친구들과 함께 뉴욕에서 살아간다. 동시에 항상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그에게도 기적이 찾아온다. 주드의 대학 시절 교수인 헤럴드가 그를 양자로 받아들인 것이다. 평생,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부모란 존재를 체감한 그는 마침내 평범한 일상을 갈망하게 된다. 중년의 나이로 향해갈 무렵, 그는 유명한 배우가 된, 오랜 친구인 윌럼과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의 인생은 과도기를 지나 이제 ‘행복한 시절’에 머무르는 듯했다. 더할 나위 없이 딱 이대로만이라고 생각했던 순간. 윌럼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아무리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인생이지만, 그래도 그것도 인생이라고 말해주길 원해”

리틀 라이프』 中



 총 2권으로 이뤄진 책 <리틀 라이프>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20대 시절부터 50대까지 빠르게 진행되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극심한 자기혐오 속에 빠져 산 주드의 과거가 점차 드러나게 된다.


 여느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친구들과는 달리 ‘주드’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비참한 삶을 살아간다. 얼굴도 모르는 부모에게 버려져 수도원에서 자란 그는, 하루가 멀다하고 극심한 폭행을 당한다. 기댈 곳이 없던 그는 유일하게 그를 챙겨주는 ‘루크’ 수사를 따라 도망치게 된다. 하지만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어리고 순진했던 주드에게 성 착취를 하기에 이른다. 주드가 괴로워하자 그는 티 나지 않고, 적절하게 괴로움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면도칼을 이용한 자해를 알려준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자기혐오에 빠질 때마다 주드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손목을 긋는다. 마침내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후에는 교통사고로 인해 뛰지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로 전락한다. 이처럼 <리틀 라이프>는 제목 그대로 보잘것없지만, 가치마저 없진 않았던 인생의 말로를 여과 없이 드러내며 마침표를 찍는다.


 읽는 것조차 괴로운 그의 인생을 서술하며 작가는 정제되고 섬세한 감정 표현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주드’를 눈앞에 실재하는 존재로 둔갑시킨다. 그가 마치 실제로 살아가는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동시에 독자는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시점에서 언제라도 쉽게 끊어질 것 같은 주드의 삶을 따라간다. 당신은 때론 그의 △친구 △양부모 △애인이 되며, 심지어는 주드, 그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생 내내 주드를 괴롭혀 온 고통은 역설적으로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될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 낸다.


 다만 일련의 상황에서 남모를 비밀을 감추고 살아가는 이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대개는 건강 문제부터 절대 말 못 할 프라이버시까지, 비밀을 감추는 이들의 행동은 언뜻 보면 겉으로는 태연하고, 결연해 보이기까지 하는 주드와 겹쳐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끝도 없는 낭떠러지에서 나뭇가지를 잡고 필사적으로 버티는 주드의 모습을 보며 그들도 한때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 발버둥 쳤을 것이란 생각이 스쳐 간다. 그리고 곧 그들과의 관계가 그들의 말 못할 비밀, 즉 고통으로 맺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상처와 고통은 서로 간의 관계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일지도 모르겠다. 고통을 공유하려는 노력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비로소 우리가 얼마나 인간적인 존재인지를 깨닫게 될 테니 말이다.


박상준 기자 Ι qkrwnsdisjdj@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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