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바람 부는 반도체 시장
세계 반도체 시장은 1970년대부터 줄곧 메모리 반도체인 D램이 장악해 왔다. 이는 데이터를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반도체로,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핵심이다. 하지만 세계 반도체 시장이 AI 붐을 맞으며 기존의 D램보다 생성형 AI를 보조하는 HBM1)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세계 3대 컨설팅 업체인 베인앤드컴퍼니에서는 AI 시장 규모가 오는 2027년까지 약 7,800억 달러로 지금보다 다섯 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할 정도다.
이에 반해 국내 반도체 선두기업인 삼성전자(이하 삼성)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과거 삼성은 D램 시장에서 22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40% 수준까지 성장하며 전 세계 점유율 1위를 유지해 메모리 시장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HBM으로 전 세계의 수요가 몰린 지금, 삼성은 전 세계 AI 반도체의 98%를 점유하는 엔비디아의 품질 검증을 1년 넘게 받고 있다. 이와 같은 품질 검증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삼성 HBM의 납품이 불투명해진다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뿐더러 엔비디아의 공급망에서 배제돼 결과적으로 AI 반도체 시장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점유율 잃고 뒤처진 삼성
이 외에도 현재 삼성은 전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분야에서 11%의 점유율을 보이며 62.3%를 차지하는 대만의 TSMC에 현저히 밀리고 있다. 우선 파운드리는 타사가 설계한 반도체를 생산, 납품하는 것으로 불량품이 적은 수율 좋은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현재 삼성의 초미세 공정의 수율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아 납품에 차질을 빚고 있다. 지난해 파운드리 분야에만 전체 투자액의 91%인 약 53조 억 원을 투자했음에도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삼성의 위기는 지난달 31일에 이뤄진 3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삼성은 기대 영업 이익인 13조 원에 한참 못 미치는 9조 1,000억 원의 영업 이익을 냈다고 발표하며 그야말로 처참한 수준의 성적표를 보였다. 이에 주가는 지난 8일 기준 3개월 사이 8만 원 선에서 6만 원 아래로 3만 원 가까이 곤두박질쳤고, 시가 총액은 같은 기간 약 486조 5,000억 원에서 24%가량인 120조 원이 감소했다. 이는 삼성그룹의 매출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20%를 차지하는 만큼 단순 한 기업만의 위기가 아니다.
원가절감 경영 이제는 내려둬야 할 때
한편 기술이 격변하는 지금, 세계 반도체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이에 각 기업 결정권자의 결단력이 기업의 명줄을 쥐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엔비디아 △TSMC △애플 등 첨단기술 기업의 결정권자가 엔지니어 출신인 것에 비해 현재 삼성의 결정권은 재무 전문가에게 맡겨져 있다. 이에 재무 전문가적 시각에 따라 미래 지향적인 기술에 대한 투자보다는 당장의 이윤과 원가절감에 중점을 둔 경영이 부진의 원인으로 꼽힌다. 삼성은 실제 VE(설계 경제성 검토)라는 원가 절감 담당 부서를 운영한 바 있으며 중국 업체에 위탁생산을 맡겨 택갈이 논란이 일었다. 또한 발열 문제 해결에 실패해 의도적으로 스마트폰의 성능을 60% 정도로 제한한 일명 ‘GOS 사태’로 지나친 원가절감이 문제가 됐다. 이에 삼성SDI 전영현 부회장은 3분기 성적 발표 이후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을 복원하겠다”며 이례적인 사과 메시지를 전했다. 이에 최근 삼성은 미국 대표 반도체 기업인 인텔과 ‘파운드리 동맹’을 논의 중이다. 이가 성사된다면 △공정 기술 △생산 설비 △연구개발(R&D)에서 폭넓은 협업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명실상부 국내 재계 서열 1위 기업으로 국내 경제 발전의 주축이 된다. 이에 삼성의 위기는 기업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삼성의 기술 혁신을 통한 경쟁력 회복으로 국내 경제가 성장 동력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오수빈 수습기자 Ι soobin2946@kyonggi.ac.kr
1) HBM(High Bandwidth Memory)은 고대역폭 초고속 메모리로, AI가 요구하는 수준 높은 메모리 성능과 용량을 만족시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