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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이] 의사한테 진단받고 왔는데 보험금은 못 준다고요?
  • 정예은 기자
  • 등록 2024-10-08 1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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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험사의 입맛대로 악용되는 의료자문 제도
A씨는 안과에서 백내장 진단을 받은 후 인공수정체삽입술을 시행해 실손보험에 치료비를 청구했다. 하지만 보험사는 주치의가 아닌 외부 의료기관의 의료자문을 통해 진단 결과와 다르다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본지는 정인식 손해사정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의료자문 제도가 지닌 문제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


의료자문에 동의하시겠습니까?


 의료자문은 보험회사와 고객이 보험금 심사에서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 경우, 제3자의 의견을 청취해 그 결과를 심사 의견에 반영하는 제도다. 이는 가입자가 질병 또는 사고 시 진단서를 첨부해 보험사에 청구한 후 보험금 지급 사유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 보험사에서 자체 비용으로 위촉한 전문의사에게 의료자문을 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같은 의료자문 제도는 보험사들이 보험사기 등에 대처하고 보험사와 가입자 양측 모두에게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험금 지급을 위해 지난 2021년 7월부터 도입됐다. 또한 의료자문을 통해 보험회사는 보험금 청구가 보험약관상 보정하는 담보에 해당하는지, 청구 패턴이나 청구 금액에 문제가 없는지를 식별해 지불오류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게 됐다.

   

의료자문은 핑계고, 보험금은 못 줘


 하지만 의료자문 제도를 통해 의료자문 결과를 객관적인 반증자료 없이 보험사 자문의 소견만으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 및 삭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의료자문 요청을 가입자가 거절할 경우 보험금 지급을 보류하는 등 악용사례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본지는 의료자문의 문제점에 대해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고자 정인식 손해사정사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보험회사가 의료자문을 진행하는 의료기관이 특정 의료기관들로 제한돼 있으며 보험사의 의뢰로 진행되기에 자문 결과가 가입자의 진단과 동일하지 않아 부지급의 사유가 된다”는 점을 의료자문의 가장 큰 폐해로 지목했다. 그 외에도 환자를 직접 진찰하지도 않은 채 치료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문제로 작용한다. 또한 최근 발달지연 아동들이 크게 늘면서 치료를 받기 위한 어린이보험 가입자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보험사는 장애코드를 받은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하는 면책조항을 두고 있어 보험금 지급 시 의료자문 동의를 받은 후 장애 진단 결과를 알리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장애는 치료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 치료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는 의견이다. 이러한 이유로 부지급된 보험금이 작년 7월부터 최근까지 약 1,700만원으로 피해가 만연한 상황이다.

   

관련 법안은 있지만 법적 처벌은 어려워…


 보험사의 무분별한 의료자문 진행을 통제하고자 지난 2021년 금융감독원과 보험협회는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 심사 업무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처리하도록 ‘의료자문 표준내부통제기준안’을 마련했다. 해당 기준안에는 보험사가 의료자문 결과만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지연해선 안 되며, 보험계약자가 제출한 의료기록 등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보험금 지급 심사를 수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기준안이 마련됐음에도 이는 정작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에 정인식 손해배정사는 “법적으로 처벌할 방법은 없으나 최근 보험업법에 보험회사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에 따른 제재 요청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있다”고 전했다.

또한 지난 4월 금융감독원은 의료자문의 피해를 막고자 보험사 금융소비자 39개 보험사 임원들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장기도수치료나 입원치료 건을 대상으로 의료자문 없이 주치의소견만으로 보험금 지급이 가능하게 절차를 개선한 ‘주치의소견 책임심사제’를 모범사례로 공유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보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별다른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가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의료자문 제도지만 현재 보험사의 제도 악용으로 인해 받아야 할 보험금마저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관련 제도까지 마련돼 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는 현실에 정부와 금융감독원은 중립적으로 의료자문을 해줄 수 있는 기관을 설립하는 등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정예은 기자 Ι 202412382@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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