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을 상실한 지가 너무 오래됐다’ 유치원 교사인 영아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매사에 긍정적으로 살라는 어머니의 유언대로 아무렇게나 던져도 같은 면밖에 나오지 않는 동전 같은 삶을 살아왔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고 남에게만 잘 맞추면 되는, 그런 삶.
그런 그녀의 주변엔 두 명의 인물이 존재했다. 본인의 생각은 모두 ‘선’하고 옳은 것이라는 은주. 매사 본인을 챙기는 5년 된 남자친구 수원. 영아는 이들을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은주의 앞에선 그녀의 말에 십분 동의하는 척하고, 자신을 너무 위하는 남자친구 앞에선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척한다. 결국 영아는 이러한 일상에 지쳐 우울과 무기력에 시달리게 되며 웃는 법과 살아 있다는 감각마저 잃게 된다. 그때 마치 마법처럼 서향의학연구센터가 그녀의 앞에 나타난다. 센터에서 뇌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는 스칼렛은 영아에게 간단한 시술을 통해 웃음을 되찾아 주겠다는 다소 미심쩍은 제안을 한다. 끝까지 의심을 거두지 않았으나 한계에 내몰렸던 영아는 마지못해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배덕과 도덕의 중앙에서 줄타기하는 인간은 흔치 않은데, 스스로를 통제하고 동시에 해방을 누린다는 이율배반적인 상태를 완성했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자유의 왕국이었다”
『오렌지와 빵칼』 中
이후 영아는 시술의 효과가 지속되는 4주간 달라진 자신을 발견한다. 평소에 절대 보지 않던 끔찍한 고어 영상을 보고 폭소하며 바닥을 굴렀고,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거친 말들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평소 타인은 눈곱만큼도 존중하지 않는 ‘은주’와의 관계도 단칼에 끊어내고야 만다. 자신이 사이코패스가 됐다고 생각한 영아는 다시 센터로 향한다. 혼란스러운 영아에게 스칼렛은 단지 시술을 통해 그녀를 옭아매던 통제를 없앴다며 현재의 모습이 영아가 갈망하던 자유의 상태라고 전한다. 이후 억눌렸던 자신의 감정을 깨달은 그녀는 비로소 본 모습을 받아들이고, 자유로워진다.
책 <오렌지와 빵칼>은 중반부까지 현대 사회를 똑 닮은 영아의 일상을 조명한다. △기아 아동 △정치인의 스캔들 △캣맘과의 갈등 등 끊이지 않는 대립 속 주인공 영아는 매 순간 △잘 웃고 △잘 배려했고 △잘 참았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다소 소심해 보이기도 하고 줏대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사건들이 터져나오는 요즘, 용기를 낸 한마디보다 타인의 의견에 동조하는 한마디가 더욱 무난한 것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결국 영아와 같이 자신을 숨기는 것이 최선이 돼 버리고 만다.
당신은 어떠한가. 항상 완벽해야 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고, 항상 착해야만 했던 순간이 존재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절제하느라 무표정해진 당신에게 달콤하게 속삭일 것이다. 항상 착한 당신에게 자유로운 삶을 선사하겠노라고.
박상준 기자 Ι qkrwnsdisjdj@kyongg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