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교육계는 학령인구 감소에 대적해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실제로 지난 2월, 한국교육개발원이 집계한 전국 초·중·고교생 수는 약 513만 명으로 전문가들은 오는 2029년의 학령인구는 더욱 급감할 것이며 종국에는 약 427만 명에 불과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던 대학가의 속설은 현실이 됐고 수도권 대학 역시 학생 소멸로 인한 재정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들은 교문을 닫는 대신 인문계열 통폐합을 선택했다. 취업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전공생들은 하루아침에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이런 인문학 경시 현상은 단순 기조가 아닌 오랜 풍조에 가깝다. 2005년 건국대학교가 독어독문학과와 불어불문학과를 통합한 이후 여러 서울 소재 대학이 뒤를 이어 ‘인문학 척살’에 나섰다. 국가 또한 이에 면책이 있다. 지난 2021년, 과학기술 분야의 R&D 예산이 인문사회 분야에 비해 9배가량 높게 책정됐다는 것이 드러나며 인문학자들은 공분했다.
작금의 시민들은 챗GPT 사용법은 익혔을지언정 예술과 철학의 가치는 잊었고 인터넷 댓글 창에서 주관을 관철하는 데는 능숙할지언정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를 분석하고 예의를 갖춰 담론을 나누는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수준 높은 조예가 ‘허세’로 오역되고 △저속한 언어 표현 △만연한 성 상품화 △외모·자본주의가 유행하는 가운데 인간은 격식과 품위를 상실했다. 앞선 사회 전반의 교양 상실은 인문학 소멸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작년, 국내 고등교육이수자는 이미 인구의 절반 이상을 넘었다. 사회 엘리트층의 비율과 인문학적 기초 소양이 반비례하는 한국 사회는 진정 ‘교양 있는’ 사회인가, ‘교양 있는 척’하는 허울뿐인 사회인가.
고등교육법 제28조는 대학을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대학은 인격을 닦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목적을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이 방점의 끝에는 학문 간 우열을 조성하고 차별로 점철된 학사개편을 수용하는 대학이 교육기관의 기능을 올바르게 수행하고 있는지 의문만 남을 뿐이다. 오늘날 대학 경영진들은 인문학 없이 세운 학교가 인재 대신 악을 배출하는 존재임을 명심해야 한다. 대학은 하루빨리 자본과 명성에 굴복한 기업의 모습 에서 회심해 시류를 바꾸고 기초학문의 반석을 다시 세워 ‘쓸모없는 공부’라는 인문학의 오명을 반드시 벗겨야 할 것이다.
이수민 기자 Ι leesoomin22@kyongg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