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작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2022 국민문화예술활동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관람한 문화예술행사 중 영화의 관람률은 절반이 넘는 52.2%란 수치를 차지했다. 이처럼 영화는 한국인이 가장 많이 즐기는 문화생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해당 결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에서 벗어나 일상을 되찾은 요즘, 대부분의 업계와 달리 영화계는 여전히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침체 중이다. 펜데믹 동안 영화관을 향한 발걸음이 줄어들며 떠오르기 시작한 OTT 시장이 현재까지도 꾸준한 관심을 받는 탓이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작년 영화관의 매출액은 5,900억 원으로 코로나19 직전인 지난 2019년 9,700억 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반면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2022년 방송시장경쟁상황평가’에 따르면 OTT 이용률은 지난 2022년 기준 72%로 2019년 52%에 비해 지속적인 증가 추세를 나타내며 영화관과는 대조적인 현황을 보인다. 이처럼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투자배급사들은 미미한 수익으로 인해 극장 영화에 투자하지 않기 시작했다. 실제 CJ ENM이 신규 투자를 결정한 작품은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 한 편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가 줄자 자연스레 개봉하는 영화의 수도 감소했고 이로 인한 영화계의 침체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무한한 재개봉 저 너머
영화계는 빨간불이 켜진 현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재개봉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했다. OTT는 단독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하며 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넷플릭스는 지난 2015년에서 2021년까지 한국 시장에 7,700억 원을 투자하며 적극적인 투자 공세를 펼쳤다. OTT에서 투자를 받아 제작하는 것이 훨씬 득이 됨을 느낀 영화제작사들은 영화관을 떠났고, 남아도는 스크린을 독립영화로 채우기에는 수익성을 기대하기 힘들었다. 이에 영화관은 과거의 인기 있던 영화를 다시 꺼내 관객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관객들은 다시 보고 싶었던, 또는 당시 보지 못했던 영화를 영화관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 재개봉 영화를 찾았다.
관객 수 1만 명을 넘기기 힘든 독립영화와 상반되게 재개봉작은 10만 명을 넘기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재개봉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신작 영화와 비슷한 수준의 관객 수를 보인다. 일례로 명작이라 평가받는 영화 <타이타닉>은 작년 4K 재개봉 당시 단 2주간 상영했음에도 관객 수 45만 명을 넘겼다. 동시에 좌석점유율 3위, 좌석판매율 1위를 기록하며 신작 영화들을 위협했다. 마블의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와 과거의 영광과 함께 돌아온 <더 퍼스트 슬램덩크>까지, 당시 신작이었던 <바빌론>과 <카운트> 등이 이들에 밀려 <타이타닉>의 재개봉 관객 수 45만 명에도 미치지 못하며 빛을 보지 못했다.
이러한 재개봉작들은 영화계에 수익을 끌어다 주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듯하지만,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한다. 재개봉작이 극장에 등장하는 빈도와 수익성이 높아지면서 새로운 영화들도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나아가 독립영화들의 경우 한정된 상영관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독립영화, 거기 있어줄래요?
독립영화는 기존 상업자본과 배급망에 의존하지 않고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제작된 영화를 뜻한다. 상업자본에 의존할수록 투자자에 의해 영화의 내용이 바뀌며 감독의 의도가 그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다분하다. 그러나 독립영화는 이러한 상황을 차단해 감독의 의도를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
또한 제작비 회수 및 이윤 창출을 위해 대중성을 고려해야 하는 상업영화와 달리 감독의 독창적인 사고가 영화에 그대로 반영된 독립영화는 영화를 발전시킨다. 독립영화는 사회 문제, 개인의 경험 등 다양한 주제를 자유롭게 표현하며 영화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대중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내 예술로서의 영화 발전과 다양성을 도모하는 등 영화의 여러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다. 일례로 독립영화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홍콩영화계는 액션 영화를 중심으로 영화 산업이 발전했다. 결국 계속되는 아류작과 다양한 소재의 부족으로 자국민으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다. 늘 똑같은 내용에 영화가 아닌 새롭고 풍부한 영화를 위해 독립영화는 현 영화계에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다만 대중적이지 않은 실험적인 내용과 빈약한 자본 투자로 화려한 △화면 △감독 △배우를 모집할 수 없어 사람들의 흥미를 얻기 어렵다.
이에 주목받지 못한 독립영화들은 낮은 수익성으로 영화관 스크린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 실제 독립영화 <딸에 대하여>는 지난달 4일 106개의 상영관으로 개봉해 평단에 큰 호평을 받았지만 오히려 개봉 10일 만에 38개로 상영관이 줄어들었다. 반면 제작비 180억 원을 들인 영화 <소년시절의 너>는 지난 8월 재개봉과 동시에 338개의 상영관을 가져가며 <딸에 대하여>와 3배가 넘는 차이를 보였다. 개봉 후 한 달이 흐른 지난 2일 기준 <딸에 대하여>는 오직 독립영화관에서만 만날 수 있게 됐다. 기존 신작과의 경쟁뿐만 아닌 재개봉 영화의 스크린 점유는 독립영화에 또 다른 난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따라 독립영화의 위기 속 이를 극복하기 위한 독립영화관이 존재한다. 이곳에서는 △독립영화 △단편 영화 △고전 영화 등을 전문적으로 상영한다. 1990년대 후반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필름 배급과 영화 상영에 독점이 나타나자 흥행성이 낮은 영화들의 설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독립영화관은 문을 열었다. 독립영화관은 소규모로 운영되기 때문에 수용 가능한 관객이 적으며 영화관 하나에 상영관 또한 하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신 예술적 면모를 지닌 영화들을 관객이 쉽게 향유 할 수 있도록 일반 영화관보다 푯값이 저렴하다는 특징을 가진다.
독립영화관, 제가 한 번 가봤습니다
독립영화관 중에서도 오직 독립영화만을 상영하는 독립영화전용관이 존재한다. 서울에 위치한 ‘인디스페이스’는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영화전용관으로, 2007년 11월 처음 문을 열었다. 재정난으로 인해 여러 번의 이전을 거치기도 했지만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기자는 독립영화관을 아날로그적인 모습으로 상상했다. 하지만 영화를 예매하는 단계에서 단번에 이러한 생각이 깨졌다. 일반적인 상업영화관들처럼 인디스페이스 또한 온라인 사이트에서 예매가 가능했다. 요즘 같은 정보화 시대에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독립영화에 대한 기자의 선입관은 해당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기자가 예매한 영화는 앞서 언급한 <딸에 대하여>로, 지난달 27일 오전 11시 영화였다. 푯값은 성인 기준 1만 원이었는데 대학생 할인이 적용돼 9,000원에 예매 가능했다. 평균 1만 5,000원인 일반 영화관의 푯값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편이었다. 그러나 평일인데다 영화를 보기에 이른 시간임을 감안해도 영화관 내에 사람은 많지 않았다. 영화 상영 10분 전 상영관에 입장한 기자가 마주한 풍경은 붉은 좌석의 향연이었다. 기자가 상영관에 들어가고 얼마 뒤 두 명의 관객이 마저 입장한 것을 끝으로 더 이상의 관객은 찾아볼 수 없이 총 4명만이 자리를 지켰다. 독립영화관은 대부분 광고 없이 정시에 영화를 시작한다. 인디스페이스 역시 상업 광고는 없었으나 영화의 예고편과 독립영화 감독들의 홍보 영상을 내보냈다. <마녀들의 카니발>과 <잠자리 구하기> 등 총 4편의 예고편이 광고로 등장했고 그 후 독립영화를 향한 더 많은 관심을 바란다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이 상영됐다. 짧은 영상이었지만 실제 독립영화 감독들이 출연해 현 독립영화계의 상황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독립영화관은 일반 영화관과 달리 상영 시작 10분 후부터 입장이 금지된다. 또한 음료를 제외한 음식물의 반입 역시 금지된다. 이는 영화를 보는 동안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방해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기 위함이다. 영화가 끝난 후 상업영화에 비해 매우 짧은 엔딩 크레딧을 끝으로 상영관의 불이 켜졌다. 이 역시 영화의 몰입과 여운을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독립영화관만의 작은 배려이자 차별점이다.
독립영화관은 일반 영화관에 비해 상영관 수가 턱없이 모자란 데다 최근 경영난으로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1958년 설립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독립영화관 ‘대한극장’은 빠르게 변화하는 영화계의 흐름에 의해 지속적인 적자를 겪어 지난달 30일 문을 닫았다. 충무로 간판 극장의 66년 역사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독립영화를 무시하는 영화계의 재개봉 사랑은 문화의 축소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영화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재의 수익성만을 신경 쓴 영화관의 재개봉 전략은 결코 현 영화계 침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아니다. 영화계의 발전을 위해 재개봉과 한 발짝 멀어져야 할 때다.
글·사진 이한슬 수습기자 Ι lhs522701@kyongg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