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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상과 비정상, 그 사이의 경계에서
  • 박상준 기자
  • 등록 2024-09-24 12: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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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의 아내 영혜는 겉보기에도 무난한 사람이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개성 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말도 거의 하지 않는 편이었고, 감정 표현을 강하게 하지도 않았다. 오직 무난. 특별한 매력이 없는 대신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다. 이것이 그가 그녀와의 결혼을 결정한 이유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평범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던 부부의 관계는 한 날을 기점으로 송두리째 뒤바뀌기 시작한다.


 어느 날, 아내는 지난밤에 꾼 꿈으로 인해 육식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냉장고에 있던 고기는 물론이고 계란, 우유까지 모조리 버리기에 이른다. 시뻘건 피가 뚝뚝 흐르는 수백 개의 고깃덩어리, 그리고 잇몸과 입천장에서 느껴지는 물컹한 날고기의 감촉. 그녀는 매일 밤 이런 섬뜩한 꿈을 꾼다며 채식을 이어간다. 결국 보다 못한 가족들이 억지로 고기를 먹이지만, 영혜는 그들의 강압적인 태도에 위협을 느끼게 되고 과도로 손목을 긋는다.


 이후 사람들은 영혜가 미쳤다고 생각하며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폐쇄병동에 갇힌 영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자신이 식물이라고 믿는다. 이에 고기를 거부하는 건 물론이고 채식마저 거부하며 ‘나무’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하루 종일 물구나무를 서는 지경에 이른다.



“나 이제 동물이 아니야. 언니”

『채식주의자』 中



 채식주의자는 총 3부로 구성된 연작소설로,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순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각각 △남편 △형부 △언니의 시점에서 극단적인 채식주의에 빠진 영혜의 변화를 지켜본다.


 작중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영혜의 변화는 주변 인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남편과 가족들은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회의 규범에서 벗어난 그녀를 비정상이라고 치부한다. 영혜의 남편은 채식에 대해 불만과 혐오감을 느끼며 그녀를 단순히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존재로 여긴다. 반면, 영혜의 언니는 영혜의 변화를 통해 자신이 사회가 규정한 틀 안에서 얼마나 억압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결국 사회가 규정하는 평범함이란 것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나타낸다. 영혜는 채식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지만, 그녀의 시도는 ‘평범함’이란 이름 앞에서 주변 사람들에 의해 좌절된다. 더불어 이런 과정 속 개인이 정상이란 틀을 벗어날 때 폭력과 억압이 얼마나 쉽게 자행될 수 있는지를 작가 특유의 서정적이면서도 강렬한 문체로 그려낸다. 이처럼 다소 난해한 내용으로 가득 찬 이 소설은 계속해서 읽는 이들로 하여금 한 가지 물음을 떠올리게 하며 마침표를 찍는다. 우리는 사회가 규정한 ‘정상’이라는 범주 안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박상준 기자 Ι qkrwnsdisjdj@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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