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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가 보여주는 세계사
  • 편집국
  • 등록 2024-09-23 10:22:43
  • 수정 2025-09-29 10: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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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철(사학과) 교수



 역사학(歷史學)은 과거의 사람들이 문자로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의 전개 과정을 파악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해석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과거의 사실은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역사가의 ‘주관적인’ 해석을 통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그것이 오랫동안 널리 인정을 받으면서 역사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역사학에서는 역사 연구를 위해 필요한 과거의 기록을 사료(史料)라고 부르는데, 사료에는 문자로 된 기록이 아닌 것도 있다.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출토된 각종 유물들도 넓은 범위에서는 사료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사료가 바로 지도이다. 옛날 사람들이 그린 지도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과 지리적 인식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물론, 현재 우리가 보는 세계지도처럼 고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정확한 측량을 통해 제작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정확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그러한 특성 자체가 지도가 제작된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도가 세계사를 보여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각 시대에 제작된 세계지도를 보면, 그 시대의 세계에 대한 인식과 관념을 확인할 수 있는데 지금처럼 다른 세계에 대한 정보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대에는 ‘상상’에 근거하여 세계지도를 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도는 ‘실제’와 ‘상상’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자료인 것이다. 그러다가 시대가 지날수록 기술이 발전하여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타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의 양이 많아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세계지도에서도 상상을 통해서만 그렸던 부분에 객관적인 정보가 개입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세계지도의 발전 과정은 1년, 10년 만에 급속하게 일어났던 것이 아니라 수백 년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세계의 수많은 지도들 중에는 조선에서 제작된 세계지도가 있다. 바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壹疆理歷代國都之圖)이다. ‘세계 지역에 존재했던 역대 국가의 수도를 표시한 지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조선 초기인 1402년에 제작된 지도로, 당시 조선 지식인들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가늠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이다. 바로 이 지도가 이른바 세계사를 보여주는 지도임을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세계사란, 현재 우리가 보는 세계사 교과서 내용처럼 세계 전 지역의 역사를 뜻하기보다는 당시 알려진 세계 전체에 대해 비교적 정확한 인식이 생기고 이를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는 차원에서 사용한 것이다. 먼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전체의 모습을 살펴보자.





 이 지도를 보면, 한반도와 중국이 굉장히 크게 그려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15세기 초에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수립된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 대한 해석이 여기에서 그치면 안 된다. 중요한 부분은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 대륙, 유럽이 표시된 곳이다. 이 지도는 아직 포르투갈에서 아프리카의 최남단인 희망봉을 ‘발견’하기 이전에 그려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최남단이 존재하는 아프리카 대륙의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나 있다. 1402년 당시 조선에서는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 유럽 도시들의 이름과 같은 정보를 어떻게 알고 지도에 수록할 수 있었던 것일까?


 세계사에서 13~14세기는 몽골제국이 유라시아 세계를 지배했던 시대로 잘 알려져 있다. 몽골제국의 패권 아래에서 유라시아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광범한 교류가 안전하고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었고, 서아시아에서 발달했던 지리학, 지도 제작 기술도 동아시아까지 전달되었다. 이러한 세계화 추세 속에서 서아시아의 지리 지식과 동아시아의 지리 지식이 결합된 새로운 세계지도가 탄생했고, 최신 정보는 한반도에도 전해졌다. 아라비아 반도, 아프리카 등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고, 심지어 다양한 정보를 듣지도 못했던 조선의 지식인이 15세기 초의 최첨단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제작할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몽골제국 시대에 이루어진 교류의 확대였다. 지도 1장이 13~14세기 세계사의 흐름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사료로 ‘읽는’ 한 가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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