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양극화된 정치 상황 속 국민들 사이엔 괴상하리만큼 이상한 정치적 악습이 자리 잡았다. 진보주의자에게는 중국과 북한을 신격화하는 ‘빨갱이’라는, 보수주의자에게는 일본과 미국에 충성하는 ‘토착왜구’라는 비난을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는 것이다. 대체 어디서 이런 악습이 퍼졌으며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았을까.
현대 한국 정치는 유례없는 양극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여야 간의 반복된 정쟁은 타 진영을 비하하기 좋은 소재로 극소수의 호전적 국민에게만 제공되고 있을 뿐, 대다수 국민에게 피로를 안겨주고 있다. 중도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 편이 아니라면 모두 적이다’와 같은 상황은 모든 것을 양극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에 다각도에서 바라봐야하는 국제 관계조차 아무런 근거 없이 단순한 정치적 비난 소재로 낭비되고 있다. 특히 국제사회 속 우리 편이 존재한다는 안일하고 편협한 사고관에서 구한말 청을 맹신한 조정, 백성과의 차이점을 찾아낼 수 있는가? 또한 이들의 결과는 어땠는가? 식민통치와 분단 등 80년 넘는 현실이 가져다 준 교훈을 버리고 우리 사회는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미국은 서울을 위해 워싱턴을 포기할 수 있는가’라는 논제는 지난 몇 년간 한국의 △정계 △관계 △학계를 뒤흔들었다. 미국이 과연 국가의 존망을 뒤흔들 상황에서도 우방에 대한 지원을 약속할 수 있냐는 것이다. 최근 연달아 터진 국제사회 속 안보 문제들은 해당 논제를 더욱 혼란에 빠트렸다. 우리의 대표적인 우방이라 인식됐던 미국마저 장담할 수 없는 현재에 △일본 △중국 △북한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결국 불필요한, 어쩌면 오히려 지양해야 할 국제 관계에 대한 인식의 정쟁 소비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 수렁에 빠져 들어가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학자이자 냉전 시기 미국의 안보 정책을 진두지휘한 헨리 키신저는 영국의 헨리 존 템플의 말을 인용해 ‘미국에게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 오직 국익만이 존재할 뿐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국가는 국민의 사고관은 여지없이 그대로 반영하며 국민의 수준을 대변한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 구한말과 다를 바 없는 사고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만 한다. 그래야 양극화된 정치라도 우리 손으로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임현욱 기자 Ι 202310978lhw@kyongg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