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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보고서] 먹고 걷고 사랑하라, 제주에서
  • 이수민 기자
  • 등록 2024-09-24 12: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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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나요 혼자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선생님 꽁무니만 따라다녔던 제주도 수학여행을 뒤로하고 어느새 훌쩍 자란 기자는 5년 만에 이곳을 다시 찾아 하나부터 열까지 손수 계획한 뚜벅이 자유여행을 즐겨 봤다.

기자의 여행 포인트 1 : 협재 해수욕장  


                 

 기자는 여행 내내 제주 남단 서귀포에 위치한 숙소에 머물렀다. 여행을 다닐 때면 매번 챙겨먹는 조찬도 마다하고 새벽 첫 차에 올라 장장 3시간을 달려 온 아침의 협재는 고요했다. 하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던 하늘은 금세 사납게 변해 폭우를 쏟아냈다. 믿었던 일기예보의 농락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기자는 한기가 도는 몸을 이끌고 고기국수 집으로 향했다. △뜨겁고 매콤한 국물 △실한 고기△쫄깃한 면의 삼합은 거센 풍파를 뚫고 걸어온 기자의 몸과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그릇이 바닥을 드러낼 때쯤 창밖은 언제 비가 내렸냐는 듯 화창해진 뒤였다. 식당을 나서니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기자는 그만 지친 것도 잊어버리고 다음 일정을 고대하며 걸음을 내디뎠다.

                   

기자의 여행 포인트 2 : 카페 평균이하

   

                

 협재에서 북쪽으로 1시간가량 이동하면 애월 카페 거리가 여행객들을 반긴다. 다정한 손길로 가꿔 진나무들과 옹기종기 머리를 맞댄 돌담을 지나면 고즈넉한 마을 한 구석에서 고소한 커피 냄새가 피어오른다. 기자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다름아닌 이 카페의 실세, 고양이였다. 몇 번 쓰다듬어주니 험상궂은 표정의 고양이는 이내 고분고분하게 자리를 내준다. 그렇게 겨우 들어가 본 카페 내부는 대도시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복층 구조를 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내린 필터 커피 한 잔을 들고 1층이 내려다보이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커피콩 볶는 냄새와 고양이의 느긋한 움직임이 명징 해졌다. 기자는 찰나를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바쁘다는 이유로 손 놓았던 대바늘을 다시 잡았다. 치열한 삶에서 벗어났다는 묘한 해방감과 여행에 스며든 자그마한 여유를 즐기며 말이다.

                   

기자의 여행 포인트 3 : 금오름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서는 ‘오름’을 방문하는 것이 필수 코스인 듯하다. 그러나 뚜벅이 여행객들에게는 이마저도 사치다. 고속도로 한 편에 난 길을 따라가야만 볼 수 있는 오름은 주요 관광지에 비해 교통 접근성이 낮기 때문이다. 제주시는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콜버스’ 서비스를 도입했다. 금오름 역시 차 없이 방문하기에는 까다로웠지만 콜버스를 이용하니 단돈 1,100원에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다.

                                                                                                    

 양쪽으로 솟은 봉우리와 원형 분화구가 특징인 금오름은 우기나 습한 날이면 물이 고이는데 이것이 금오름의 백미다. 약 20분의 고행길을 지나면 시원한 바람과 자연의 장엄함이 펼쳐진다. 금오름의 푸르름에 파묻히니 고된 산행은 물론이고 매 순간 애쓰며 살아온 기자의 지난 시간이 전부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오름에서 하산하는 길은 유난히 발걸음이 가벼웠다. 마치 도시에서 가져온 몸과 마음의 무거운 짐을 모두 제주 오름에 두고 온 것처럼 말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지인들은 차 없이 제주를 돌아보긴 힘들 거라 엄포를 놓았으나 이는 기우였다. 제주는 최선을 다해 걷고 모험하는 여행자에게 한없이 관대한 곳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뚜벅이라고 겁내지 말자, 당신의 두 발은 이미 세계를 누비기에 충분하다.

                                                                           

글·사진 이수민 기자 Ι leesoomin22@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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