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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보도] “3,000원만 있으면 A⁺” 저작권 둘러싼 딜레마
  • 홍세림 수습기자
  • 등록 2024-06-04 12: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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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습과 악습을 넘나드는 ‘족보’ 경쟁
지난달 18일 TOPCIT 기출 문제집 제작과 관련된 강의 과제를 두고 저작권 문제에 대한 갑론을박이 일었다. 대학가에 널리 퍼진 족보를 두고 의견이 팽팽한 가운데 본지는 대학생들의 기출 모음집인 족보에 대해 자세히 취재해 봤다.


‘기출 문제 제작’ 과제에 논란

 

 지난달 18일 올라온 소프트웨어공학 과목의 한 과제에서 논란이 제기됐다. 해당 과제는 ‘TOPCIT 기출 모음’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왔으며 “시험에 대한 최신 기출 문제에 관해 정보를 수집한다”고 소개했다. 시험을 응시한 학생들에게 문제를 기억나는 대로 적어 제출하도록 해 수집할 것이며 제출한 문제의 개수에 따라 가산점이 부여될 예정이라는 내용을 전달한 것이다. 학생 A씨는 “TOPCIT 족보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취지는 좋다고 생각하지만, 응시한 학생들이 문제 유출 등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이런 과제는 옳지 못한 것 같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TOPCIT은 정보통신기획평가원 주관의 소프트웨어 역량을 검정하는 공인 시험으로 외부로 문제를 공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시중에 기출 문제집이 존재하지 않아 시험 응시자는 TOPCIT 측에서 제공하는 참고서 등으로 시험을 준비해야 한다고 알려져 있다. 소프트웨어공학 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본교 A교수는 “작년에 학생들로부터 얻은 문제를 엮어 제작한 기출 문제집을 학생들에게 나눠 줬다”며 “금전적 이익을 얻기 위해 판매한 적은 없고 학생들에게 풍부한 강의를 제공하고자 내부에서 돌려 볼 수 있는 기출 자료를 만든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TOPCIT 측은 “문제가 공개돼 있지 않은 만큼 기출 문제 제작 등의 사안에는 저작권과 관련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생이라면 모를 수 없는 족보

 

 ‘족보’는 △시험 기출 문제 △수업 내용 △과제 등을 학생이 재편집해 유포 및 판매하는 일종의 족집게 자료집이다. 이는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거나 공부에 활용해 본 적이 있을 만큼 대학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족보는 선후배 사이에서 암암리에 전해지기도 하지만, 인터넷상에서 익명으로 족보를 거래하며 이를 통해 영리적 이득까지 취할 수있다. 교내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뿐 아니라 과제부터 시험 정보까지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전문 사이트 등 족보를 다양한 경로로 아주 쉽게 거래할 수 있다. 에브리타임에서 족보를 판매하는 B씨는 “족보를 제작해 판매하는 것이 불법인 것을 알고 있지만 이미 대학 내에서 당연시되고 있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실제로 B씨가 판매하는 족보는 한 학기 동안 수백 명이 구매할 정도로 수요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족보는 어떤 이유로 대학생의 관습처럼 자리하게 됐을까. 족보는 수강 과목의 족집게 자료집이자 자습서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공부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실제로 족보 판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직접 에브리타임에서 족보를 구매한 C씨와의 인터뷰를 진행해 봤다. C씨는 “한 학기 수업과 관련한 중간·기말고사 시험답안과 과제에 대한 예시 등 3,000원에 모든 정보를 열람할 수 있었다”며 족보가 주는 이점이 있음을 전했다. 특히 족보는 수업의 교수자가 이전 시험과 동일하게 문제를 출제하는 경우에 효력을 가져 수업에 따라 차이가 발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족보를 가진 학생은 시험 범위 내에서 공부하기보다 족보를 외워 보다 훌륭한 성적으로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족보의 어두운 면이 여실히 드러난다. 익명을 요구한 학생 D씨는 “족보가 존재하는 과목의 경우 족보를 활용하면 훨씬 쉽게 공부할 수 있다”며 “일부분 잘못된 것임을 인지하고 있지만 성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족보를 이용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엄연한 불법행위 “가볍게 볼 사안 아냐”

 

 그러나 족보는 엄연히 저작권법을 위배하는 불법행위다. 이미 법조계에서는 대학가에서 유행하는 족보를 두고 불법행위로 판단될 여지가 있고 그 불법성을 가볍게 보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교수자의 시험 문제는 저작권법 제4조에 따라 어문저작물로써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허락 없이 타인의 저작물을 이용하거나 허락의 범위를 넘어서 사용할 경우, 저작권법에서는 이를 저작권 침해 행위로 간주하므로 시험 문제를 유출해 재편집하는 행위부터 족보를 구해 이용하는 행위까지 저작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또한 저작권법 제30조에 따라 공표된 저작물을 개인적으로 이용하거나 가정 및 이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이용하는 경우에만 이용자는 저작물을 복제할 수 있다. 공표되지 않은 시험 문제를 이용하는 것은 유포하지 않는다 해도 저작권법 제30조에 따라 저작권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해 지식재산권 전문 법조인 A씨 역시 “족보를 구매하는 사례에 대해서는 처벌이 소극적인 편이지만 제작해 판매하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처분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큰 편”이라고 전했다.

 

홍세림 수습기자 Ι hsrim1213@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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