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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 꽁꽁 얼어붙은 우리 마음 위로 고양이가 걸어다닙니다
  • 임현욱 기자
  • 등록 2024-05-20 17:3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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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직 고양이의, 고양이에 의한, 고양이를 위한 특별기획전
평균 체중 3.6KG, 사람 아기와 비슷한 외형과 체구로 사랑받는 고양이. 관람객뿐만 아니라 전시기획자까지 모두가 고양이에게 진심인 이곳, 본지는 지난 3일부터 오는 8월 18일(일)까지 열리는 국립민속박물관 화제의 기획전 ‘요물, 우리를 홀린 고양이’를 이주홍 학예연구사의 설명과 더불어 직접 방문해 현장을 담아봤다.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개


 본 전시의 1부 ‘귀엽고 요망한 고양이’는 옛 조상의 시선으로 고양이를 재해석하고 또 유쾌하게 풀어내는 것에 초점을 둔다. 전시 공간으로 들어선 기자를 가장 먼저 맞이한 건 ‘매력적인 고양이’ 섹션의 코너 중 하나인 ‘고양이를 소개합니다’로 고양이란 명칭의 어원과 생태적 특성 등 기본 상식부터 지역별, 무늬별 명칭에 이르는 상세한 정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전시 설명에 따르면 ‘고양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고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103년경 고려 사람들은 이들을 ‘귀니’ 또는 ‘고이’ 등으로 불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를 ‘괴’로 줄여 부르고 접미사 ‘-앙이’를 붙여 ‘괴앙이’, ‘괴양이’ 등으로 부르곤 했다. 이 밖에도 △쥐를 잡는 귀한 존재라는 뜻의 ‘몽귀’ △뛰어노는 모습이 마치 원숭이(납) 같다고 해 ‘나비’ △ 집에서 길들인 삵을 의미하는 ‘살찐이’ 등 이들을 일컫는 수많은 별명에 그 신비로움은 배가 됐다.

 

 발걸음을 조금만 옮기니 다양한 종류의 고양이 모형 앞에 관람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코너는 고양이의 털 색과 무늬에 따른 한국 고양이들의 명칭을 알아보는 곳으로 줄무늬를 가진 태비 고양이, 세 가지 색이 섞인 칼리코 고양이 같은 전문 용어를 △고등어 △치즈 △삼색이 등의 별칭으로 바꿔 소개해 소소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고양이도 우리 민족이었어

 

 이어지는 두 번째 섹션은 ‘우리 곁의 고양이’다. 새로운 섹션에 발을 들이자마자 가득 채운 사료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해당 섹션은 ‘쥐를 잡는 동물에서 마음을 나누는 친구까지’란 부제에 걸맞게 역사 문건 속 고양이의 모습을 통해 선조들의 인식을 차례로 보여준다.

 

 농경 사회였던 고려 중기, 농작물을 훔쳐먹는 쥐는 당대 최대의 골칫거리였다. 이에 사람들은 쥐를 잡기 위해 고양이를 길렀고 맡은 책무를 다하지 않는 사람을 ‘쥐를 보고도 쫓지 않는 고양이’에 빗대어 풍자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이런 인식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특히, 조선 후기에는 길고양이들을 먹이고 입히는 ‘묘마마’가 있었는데 이는 오늘날의 ‘캣맘’과 유사한 개념으로 한민족이 얼마나 뼛속까지 애묘가인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조상들의 고양이 사랑은 그림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고양이를 뜻하는 한자 ‘묘(猫)’와 노인을 뜻하는 한자 ‘모(耄)’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장수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또한, 그림 속 고양이는 항상 △벼슬과 기쁨을 의미하는 참새와 까치 △장수를 의미하는 국화와 나비 △재물과 복을 의미하는 벌과 함께 그려지며 아름다움을 더했고 더 나아가 받는 사람의 행복을 기원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그림들을 지나고 나니 12개에 달하는 고양이가 들어간 속담과 관용구들이 기자를 반겼다. 개중 △고양이 세수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등 흔한 일상 용어도 보였다. 새삼 고양이가 우리 역사와 말버릇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무서웠다가 든든했다가, 너 참 묘(妙)하다

 

 전시 1부는 세 번째 섹션 ‘고양이의 이면’으로 마무리된다. 앞서 고양이의 귀여운 면모에 주목했다면 이제는 고양이와 미신을 알아볼 시간이다. 이곳에서는 △고양이와 장례 △영물 고양이 △복수하는 고양이 총 세 가지 키워드로 스산한 저주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예로부터 고양이에게 영적인 힘이 있다고 굳게 믿었고 특히 장례를 치르는 데만큼은 고양이의 출입을 엄격히 금했다. 고양이가 시신과 닿으면 그 혼이 죽은 사람에게 들어가 귀신이 된다는 인식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고양이를 영험하고 신비스러운 영물로 보기도 했다. 일례로 고양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보는 제주의 애월읍 신엄리에서는 돌로 만든 고양이상 ‘돌코냉이’를 마을 입구에 세워 풍수지리적으로 마을의 허한 곳을 보완하고 재앙을 막고자 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고양이에게 해를 가하면 저주와 복수를 면하지 못할 것이고, 반대로 돕고 잘 돌봐주면 대길을 성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신념은 근현대에 이르러 △가면극 △영화 △달력 등 다양한 문화까지 영향을 미쳤다.

 

지구 정복? 가소롭군, 내 꿈은 우주 정복이다냥

 

 전시 2부 ‘안방을 차지한 고양이’의 막이 오르고 사람들은 마치 한 편의 영화 같은 고양이의 지구 정복기를 관람하게 된다. 고양이는 기원전 7500년, 키프로스 섬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나일강을 따라 이집트와 지중해를 누비곤 실크로드를 통해 본격적으로 동아시아를 쟁취하기에 이른다. 일본에서는 행운의 상징 ‘마네키네코’로 대표되지만 동시에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영국에서는 흑사병의 원인으로 지목돼 대거 화형된 기록도 있다. 고양이를 동서양이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건 1900년대 근대 문화 개화기부터다. 고양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예술가들의 대표 뮤즈로 급부상했고 이에 △소설 <검은 고양이> △애니메이션 <톰과 제리> △가요 <검은 고양이 네로> 등 이들을 테마로 한 예술 작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가 하면 현대인에게 고양이란 평생을 함께하는 반려동물로서 의미가 크다.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반려묘 수는 약 250만 마리에 달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반려묘 시장도 확대됐다. 국내 대표 고양이 박람회 ‘궁디팡팡 캣페스타’ 참관객 수는 6년 새 5배가 증가하며 이들의 인기는 고공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다.



‘주인님’ 고양이와 보내는 집사의 하루

 

 이처럼 반려묘를 기르는 사람들은 흔히 ‘집사’로 통한다. 최근에는 반려묘는 없지만 인터넷상에서 반려동물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랜선집사’도 생겨나는 추세다. 2부 한편에 마련된 ‘집사와 고양이’ 코너에서는 집사의 일과를 소개하고 있다. 집사의 하루는 ‘주인님’ 고양이의 필요에 맞춰 돌아간다. 밥을 챙기고 매일 물그릇을 갈아주는 것은 기본이며 ‘감자와 맛동산’이라는 속칭의 모래 묻은 대소변도 치워줘야 한다. 강아지에게 산책이 있다면 고양이에게는 사냥놀이가 있다. 하루 최소 30분 이상은 사냥놀이를 하며 고양이와 깊이 교감하는 것도 집사의 덕목 중 하나다. 추가로 △빗질 △양치질 △발톱 깎기를 마치고 나면 어느새 집사도 잠들 시간이 다가온다.

 

 힘든 하루로 잔뜩 내려간 입꼬리는 ‘우리 고양이 자랑대회’를 감상하며 다시금 귀에 걸리게 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지난 3월 21일부터 열흘간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을 통해 집사들에게 사진, 영상을 공모받아 함께 전시했다. 관람객들은 사랑스럽다는 듯이 미소 짓기 바빠 보였고 기자 역시 자연스레 인파에 섞여 사진을 감상했다. 그리고는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도 고양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가늠해 보며 전시장을 빠져나왔다.

 

고양이와 사람,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길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렵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반려묘가 이른바 ‘고양이 별’로 떠날 때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2부 마지막 코너는 반려동물 상실 증후군으로도 불리는 ‘펫로스 증후군’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먼저 떠나보낸 반려동물과의 추억이 깃든 물건이 전시돼 있었다. 이어지는 3부 ‘우리 동네 고양이’는 앞선 반려인의 심리 문제와 맥락을 같이 해 △캣맘 혐오 △고양이 학대 △길고양이 갈등 등 고양이를 둘러싼 사회적 대립과 문제를 가시화한다. 해당 섹션에서는 지난 2022년 3월에 개봉한 정재은 감독의 영화 <고양이의 아파트>가 상영되고 같은 해에 공개된 김하연 사진작가의 광고 <모두 늙어서 죽었으면 좋겠다>가 게시돼 있었다. 각기 다른 매체를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두 프로젝트는 모두 ‘길 위의 고양이’를 주제로 한다. 이 섹션에 멈춰선 관람객들은 길고양이 문제를 폭넓은 틀에서 사유하게 되고 더 나아가 이들이 도시 생태계에서 인간의 동반자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전시회는 우리에게 다양한 이미지로 인식된 고양이와 앞으로 어떻게 함께 살아갈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열렸다. 전시를 다 둘러보고 나면 고양이가 단순히 귀엽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임현욱 기자 Ι 202310978lhw@kyonggi.ac.kr

사진 김세은 수습기자 Ι seeun2281@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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