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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간직한 3년의 기록
  • 편집국
  • 등록 2017-05-10 10:36:46
  • 수정 2017-05-10 13:4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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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MEMBER 0416, 아물지 않는 그 날의 상처
온 국민을 충격과 슬픔에 빠트렸던 세월호 참사가 벌써 3년 전의 일이 됐다.
아직까지도 많은 국민들은 세월호 희생자 추모 행사에 참여하거나 ‘노란리본 뱃지’를 다는 등 사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 세월호 침몰 사실과 관련해 발생한 수많은 논란이 사건을 더 깊은 혼란에 빠트리는 일도 잦았다.
본지에서는 3년 만에 이뤄진 세월호 인양과 참사 3주기를 맞아 관련 내용들을 준비했다.

 

세월호의 침몰, 슬픔에 빠진 국민들

 
 지난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0분경,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던 배 한 척이 바다 한가운데에서 침몰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일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에는 수학여행을 떠나던 단원고등학교 학생 및 교사들을 비롯해 총 476명이 타고 있었다. 사고가 발생하자 언론에서는 해당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이어 탑승자 전원이 구조됐다는 내용이 오보로 밝혀지면서 국민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진소현(관광개발·4)양은 “처음 사고 뉴스를 봤을 때 실제 벌어진 일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놀랐다”며 “이튿날까지는 구조 작업을 통해 생존자들이 구출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사고 후 구조 활동은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부분의 탑승자들이 침몰하는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시신 미수습자 9명을 포함한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생존자들 또한 심각한 정신적·신체적 후유증을 얻게 됐다.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에 대해서는 △선체에 가해진 충격 △급격한 방향변침 △선박 화물칸 불법개조 등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하지만 아직 이 논쟁에 대한 정확한 결과가 제시되지 않은 상황이며, 앞으로 남겨진 조사 과정을 통해 해당 부분에 대한 내용이 보다 명확히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진상규명 노력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의혹


 오랜 시간동안 세월호 침몰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걱정이 이어졌다. 계속해서 사건에 대한 여러 의문점이 생겨났고, 이는 곧 ‘세월호’를 각종 논쟁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먼저 사고 이후 논란이 된 대표적인 사실은 해양경찰청(이하 해경)의 구조 활동이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고 이후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 해경123정은 선내에 진입하지도, 승객 퇴선방송을 하지도 않아 구조활동에 소홀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결국 세월호 참사 발생 다음달인 5월 1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해경 해체를 선언했다. “해경이 구조 과정에서 본연의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해경 해체 선언이 대통령 관련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는 주장이 등장하면서 좋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다. 당시 세월호 침몰 대응 과정에서 대통령의 행적이 7시간 동안 모호했다는 점이 밝혀져 이 또한 화두에 올랐기 때문이다. 관련 내용은 이번 대통령의 탄핵심판에서 탄핵 사유로 제시될 만큼 중요한 이슈였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박 전 대통령의 당시 행적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은 상태다.

 

 이밖에 세월호의 소유사인 청해진해운과 관련된 의혹 또한 여전히 남아있다. 세월호 실소유주인 세모그룹 유병언 전 회장이 사고 3개월 후 사망한 채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 전 회장 일가에게 약 5500억 원에 해당하는 수습 비용은 물론, 사고 전반에 대한 보상 및 책임에 대해 묻지 못하게 됐다. 관련 논란이 계속되자 이를 잠재우고 진실을 밝히고자 여·야당이 합의해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법안 통과에 따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돼 활동했지만 지난해 9월 30일 기간 만료로 해체됐다. 결국 지금까지 사고원인 규명 등 여러 사안에 대한 진상규명이 미완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이와 관련해 안나경(관광개발·4) 양은 “이번에 세월호 인양이 이뤄진만큼 새로운 조사위원회가 제대로 구성돼 활동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많은 이들이 함께한 추모의 물결


 세월호 참사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추모의 물결은 계속되고 있다. 사고 이후 △경기도 안산 △전라남도 진도 팽목항 △서울시 종로구 광화문 등의 지역에 분향소가 마련돼 많은 이들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으며, 대국민 촛불집회에서도 세월호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추모 의식을 함께하고 있다. 더불어 사고의 슬픔을 함께하자는 마음에서 ‘노란리본 캠페인’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노란리본’은 전쟁에 참전한 군인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뜻으로 시작된 상징이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탑승자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희망하는 마음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본 캠페인에 동참한 많은 사람들은 SNS 계정의 프로필 사진에 각종 노란리본 사진을 게시하
거나 각종 액세서리로 노란리본 모형을 활용하며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동시에 일부는 직접 추모 물품을 제작해 공동구매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많은 기업들 또한 관련 상품을 제작해 판매하며 수익의 일정 부분을 세월호 관련 비용으로 기부하는 방식으로 추모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사적 이익 추구를 위해 악용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세월호 유족들과 봉사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뱃지 △팔찌 △가방걸이 등의 물품이 온라인마켓에서 단가에 비해 10배 이상 높은 가격으로 판매돼 문제가 됐다. 진 양은 “물론 세월호를 장사 수단으로 이용하는 일부기업은 물론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이다”며 “그런 의도로 판매되는 물품을 소비자가 자체적으로 구매하지 않도록 하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1073일 만에 수면 위로 올라온 세월호

 

 세월호 1주기인 2015년 4월 16일, 박 전 대통령은 진도 팽목항을 찾아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세월호 인양을 공언했다. 이후 정부는 중국 최대 인양업체인 상하이샐비지와 계약을 체결하고 2016년 7월까지 인양을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약속했던 인양작업은 기상여건 등을 이유로 수차례 지연됐고, 유가족들과 미수습자 가족들의 기약 없는 기다림은 계속됐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지난 23일이 돼서야 세월호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마침내 지난달 31일, 세월호는 침몰 1080일 만에 반잠수식 선박 화이트마린호에 실린 채 목포신항에 도착하면서 ‘마지막 항해’를 끝내게 됐다. 배혜령(전자공학·2) 양은 “지금이라도 세월호 인양이 이뤄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인양을 통해 미수습자들의 시신이 가족들 품으로 하루빨리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한다”는 마음을 전했다.


 세월호가 육상에 완전히 거치된 후로 본격적인 선체조사 또한 이뤄질 예정이다. 하지만 인양 과정이 선박 및 드론의 접근이나 유가족의 참여를 금지시키는 등 상당 부분 비공개로 진행돼 갖은 의혹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이 “인양 방식 및 과정이 세월호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의 사전 협의 없이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어 우려스럽다”고 밝힌 만큼 진상규명 과정에서 또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지적이 필요한 상황이다.

덧붙이는 글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침몰 당시 승무원들은 선내 안내방송을 통해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다. 이후 세월호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다수의 선원들이 승객을 버려둔 채 가장 먼저 탈출해 구조됐고, 배 안으로 물이 차오르는 상황에서도 안내방송을 믿고 따른 대다수의 탑승객들은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안전 책임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세월호 사건,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의 슬픔은 누가 달래줄 수 있을까. 이예림 기자│yerim97@k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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