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성을 공유하고 기념하다
올해로 17번째 맞이하는 세계 한인의 날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지난 6월 5일 재외동포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재외동포청’이 출범한 이후 맞이한 첫 번째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재외동포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외국에 장기체류하거나 외국의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 또는 ‘출생에 의해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했던 사람(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에 국외로 이주한 사람을 포함한다) 혹은 그 직계비속’을 의미한다. 정부는 2007년부터 국민들이 동포 사회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재외동포들도 같은 한인으로서 자긍심과 긍지를 갖도록 세계 한인의 날을 제정했다. 세계 한인의 날이 제정된 이후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한인 사회에서도 자체적인 행사를 진행하며 이 날을 기념하고 있다.
다사다난한 재외동포의 역사
최초의 이민은 구한말인 1860년부터 1910년 사회 혼란을 피해 △중국 △일본 △북미 △중남미 등지로 떠난 한국인들로 확인된다. 이후 일제강점기 탄압을 피해 해외 각지로 떠나거나 일본에 의해 강제 이주된 한국인들이 타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정착한 후 타국에서 사탕수수 재배를 하거나 척박한 땅에 농사를 시작해 생계를 유지했다. 이 시기의 한인들은 타국에서 많은 인종 차별에 시달렸으며 이는 생존에 위협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당시 이민 1세대들은 독립운동을 위한 사회적 기반 마련과 생존을 위한 공동체 형성 등 한인 사회의 기틀을 잡아나갔다.
해방 이후에도 재외동포의 현실은 암울했다. 6.25 전쟁을 거치면서 양 진영의 많은 포로가 해외 등지로 강제 이주됐으며 전쟁 이후 경제성장을 위해 외화를 벌러 많은 청년들이 해외로 나갔다. 이들은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파견되고 베트남에 군인으로 참전해 경제성장의 발판이 됐다. 대부분은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일부는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남아 또 다른 한인 사회를 구축했다. 또한 민주화 이전 정치적 압박을 피해 타국으로 망명한 경우도 있었다.
어두운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 일부는 역사에 업적을 남겼다. 독립운동가 안창호의 자녀로 미국에 남아있던 안수산은 미국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 해군 장교가 됐다. 이후 해군을 떠나 국무부 등 다양한 부서에서 활약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군사정권의 정치적 위협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김성용은 성장해 국무부에 입직했다. 이후 성 김이란 이름으로 2011년 주한미국대사로 한국에 부임했으며 현재도 미국의 고위관리로서 활약하고 있다.
현대에도 다양한 이유로 이민이 지속되고 있다. △학업 △취업 △창업 등 본인의 능력을 조금 더 올리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이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져 현대의 이민은 과거와 다른 새로운 유형의 이민세대로 발전 중이다.
△출처 : 주미 한국 대사관
세계로 퍼져나간 750만 해외동포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이 점차 커져가는 시대에 한인 사회는 해외에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중심지로 발전하며 한국이 문화 강국으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문화를 타국에서 직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장소가 바로 한인 사회이며 이는 한국의 긍정적인 이미지 형성에 많은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등 재난 상황에서도 한인 사회는 지역과 연계해 주민들을 위한 봉사와 물품 제공 등으로 한국의 대외적 이미지를 높이는데 큰 공을 세우고 있다.
국난부터 경제성장까지 굴곡 많던 대한민국의 역사와 함께한 재외동포의 역사는 가치가 높다. 또한 민족성과 역사를 공유하는 재외동포들은 앞으로도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해줄 것이다. 지금도 타국에서 한인으로서 많은 활약을 하고 있는 재외동포를 생각해보는 기회를 세계 한인의 날을 통해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임현욱 수습기자 Ι 202310978lhw@kyongg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