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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보조] 너도, 나도 등산은 처음이라
  • 이수민 기자
  • 등록 2023-05-17 02: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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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군가 험한 산을 묻거든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앞선 지면에서 등산에 대한 기초 지식을 소개했다면 지금부터 본지는 진달래 활짝 핀 관악산에서 산과 삶의 이치를 깨달은 진귀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야호 산악회, 관악을 정복하다


 지난 3월 25일, 기자는 11명의 2·30대 청년들과 함께 관악산으로 향했다. 4호선 사당역에 모인 청년들의 눈 앞에 펼쳐진 건 화려한 장비와 패션을 선보이는 프로 등산러들의 모임뿐이었다. 이에 반해 우리 ‘야호 산악회’는 △운동과 담쌓은 지 족히 10년은 지난 사람 △쉴 새 없는 야근 탓에 지친 몸을 이끌고 나온 사람 △고된 산행을 끝내고 마쳐야 할 학교 과제가 5개나 남아있어 울상인 사람까지. 최약체에 오합지졸,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얼렁뚱땅 초보 등산러 12명은 왜 관악산으로 향했나? 그들은 한 데 입을 모아 ‘사람답게 소통’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오늘의 동료가 내일의 적으로 변모하는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등산은 ‘유대감’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비탈길에서 서로에게 손을 내밀며 배려의 미학을, 뒤처지는 사람을 바라보며 기다림의 미학을 배울 수 있다. 이렇게 으쌰으쌰 정상에 올라 외치는 우렁찬 ‘야호’ 소리는 천지뿐만 아니라 기자의 마음 깊은 곳까지 울림을 줬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지


  야호 산악회의 목표는 관악산 정상인 ‘연주대’에 올라 맛있는 점심을 먹는 것. 호기롭게 산행길에 오른 야호 산악회는 열정과 반비례하는 체력 덕에 20분도 채 걷지 못하고 산 중턱에서 쉬게 됐다. 내가 흘리고 있는 게 땀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고된 등산을 하던 도중 첫 번째 관문이 펼쳐졌다. 밧줄을 잡고 암벽 등반을 하는 고난도 코스 앞에 기자는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발을 헛디디면 바로 응급실 행일 게 뻔했다. 거의 밧줄의 끝에 다다랐을 때, 기자는 잠시 방심하고 말았다. 밧줄을 잡은 한쪽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그러나 동료가 날 살렸다. 걱정하지 말고 올라가라며 날 도와줬던 동료 덕에 기자는 무사히 암벽을 오를 수 있었다. 


 몰려오는 두려움도 잠시, 산속에 오랜 시간 머물다 보니 비로소 진정으로 산행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후발대로 등산로에 섰던 기자가 어느새 최전방에서 산악회의 사기를 증진하는 분위기메이커가 돼 있었다. 이처럼 산은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운을 가지고 있다. 연주대 등반을 코 앞에 두고 진지하게 하산을 고민하던 우리는 금세 마음을 고쳐먹었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스함에 완등할 용기를 얻 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뵙는 등산객들조차도 △‘거의 다 왔다’ △‘정상 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며 지친 우리에게 응원을 건넸다. 한 대학 동창회 모임은 관악산에서 제사를 지낸 뒤 남은 음 식을 나눠주기도 했다. 주인과 함께 등산하는 강아지도 두 마리나 봤는데 하나는 ‘메리’ 다른 하나는 ‘빠다’라는 이름이었다. 이렇게 작은 몸집의 강아지도 열심히 산을 오르는데 중도 포기를 외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기자는 다시 한번 등산화를 고쳐 신을 수 있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 법


 등산하다 보면 가수 윤종신의 노래 ‘오르막길’ 가사가 저절로 떠오른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아이러니 하게도 굴곡이 심하고 돌이 많은 가파른 산길일수록 공기가 청명하고 나무가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정상에 올랐을 때 더욱더 보물 같은 경치가 펼쳐진다고 한다. 어쩌면 독자의 오늘 하루가 남들보다 특별히 더 고되고 힘들었다면 그건 독자가 특별히 더 빛나는 보물 같은 사람이기 때문은 아닐까?


 여기서 기자가 한 가지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여러 차례의 좌절과 등 반을 반복해 어렵사리 얻어낸 관악산의 경치는 정말이지 매우 값졌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등산은 우리의 삶과 매우 비슷하다. 우리 역시 무언가를 단번에 성취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반면, 실패의 고배를 마시며는 일은 참 비일비재한 것 같다.



 그러니 우리 좌절하지 말고 정진하자. 기자 역시 글로서 독자들의 비빌 언덕이자 작은 숨통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비록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가 나누는 유일한 대화일지라도 서로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다면 지금 본인이 오르고 있는 산이, 겪고 있는 삶의 어려움이 히말라야산맥만 하더라도 충분히 정상을 정복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글·사진 이수민 기자 Ι  leesoomin22@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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