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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슈] 갈피 잃은 근로시간 개편 제도, 과연 2030 세대 지지받을 수 있을까
  • 정서희 기자
  • 등록 2023-03-30 14: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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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감하게 선보였지만, 보완 단계로 일축된 정부의 ‘주 69시간’ 근로 개편
정부는 획일적·경직적인 주 단위 상한 규제 방식을 개선하기 위해 유연화된 근로시간 개편안을 내세웠다. 하지만 정부의 제도 도입 취지와 달리, 오히려 1주 최대 노동시간이 가중된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정부는 해당 문제점을 인지하고 9일 만에 정책 보완을 선언했다. 본지는 정부가 내세운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알아보고, 해당 정책이 환영받지 못한 채 재검토에 들어간 원인에 대해 파헤쳐봤다.


정부의 노동 개혁 시작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는 지난 6일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주 52시간 근로시간 제도가 불합리하다고 판단해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확정하고, 다음 달 17일(월)까지 입법 절차를 밟겠다며 본격적인 노동개혁을 시작했다. 해당 개편안은 △선택권 △건강권 △휴식권의 보편적 보장을 지향점으로, 새로운 근로시간 패러다임 구축을 목표로 한다. 고용부에 따르면 근로시간 제도는 ‘주 52시간제’(기본 40시간+최대 연장 12시간)의 틀을 유지하되 ‘주’ 단위의 연장근로 단위를 노사 합의를 거쳐 △월 △분기 △반기 △연으로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다.


 추가로 휴가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을 예고했는데, 이는 연장근로를 휴가로 적립한 뒤 기존 연차휴가에 더해 장기휴가를 쓸 수 있는 제도다. 더불어 정부는 ‘휴게시간 선택권 강화’를 통해 1일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30분 휴게 면제를 신청해 퇴근할 수 있는 절차를 신설했다. 또한 ‘유연한 근무방식 확산 방안’을 내놓으며 현재 1개월 단위로 사용 가능한 선택근로제를 3개월 단위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번 개편은 근로기준법 개정 사안으로, 정부는 오는 7월까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을 예고했지만 야당의 반발을 뚫고 국회를 넘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 노동시간 국가라는 오명을 겨우 벗어나고 있는데 정부는 장시간 노동으로 회귀를 선언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제12회 국무회의에서 ‘근로시간 개편안’을 언급하는 윤 대통령


근로시간 개편방안, 연장근로시간 관리 단위 확대


 현행근로시간 제도는 ‘주 52시간제’로 법정근로시간 40시간과 최대 연장근로 1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명시돼 있다. 하지만 해당 제도는 업무량이 많은 날에 연장근로가 필요해도 기업이 법 위반을 숨기기 위해 근로자가 연장근로에 대한 합법적인 대가를 요구할 수 없도록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근로자에게 ‘공짜 야근’을 요구하는 해당 제도에 대해 고용부는 현장 상황에 맞으면서도 실효적으로 건강권을 보호할 수 있는 선택지를 추가하기 위해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고 언급했다.


 해당 개편안은 기본 법정근로시간 40시간과 최대 연장근로 12시간인 주 52시간 틀을 지속하되, 노사 합의를 통해 ‘주’ 단위가 아닌 △월 △분기 △반기 △연 단위로 연장근로를 운영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선택지를 부여한다. 이렇게 근로시간을 관리하게 될 경우엔 일이 몰리는 주에는 근로시간이 늘고, 일이 적은 주에는 근로시간이 감소하는 식으로 매주 근로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다만, 근로시간이 주 64시간을 넘기지 않을 경우를 제외하고는 퇴근과 다음 출근 사이에 최소 11시간 연속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 덧붙여 정부는 연장근로 활용 유연화를 통해 “일할 때 몰아서 일하고 장기 휴가를 독려하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혼란스러운 임금 제도, 공짜 야근 막아야만


 ‘공짜 야근’ 문제는 현행근로시간 제도에만 해당하는 사항이 아니다. 초과근무 수당을 정확하게 집계하기 어려운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포괄임금제’는 △연장 △야간 △휴일 노동을 비롯한 초과근무 수당을 임금에 미리 포함해 일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전엔 초과근로 시간을 집계하기 어려운 직종에서만 사용됐으나, 최근 △사무직 △서비스업 △IT 업계까지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해당 제도가 논란이 된 이유는 기업이나 사용자가 위법과 적법의 경계선 위에서 임금 약정 방식을 오남용해 장시간 근로와 공짜 야근을 야기하고, 실근로시간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행을 막기 위해 제도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우려가 계속되자, 고용부 장관은 지난달 13일 “올해를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의 원년으로 삼고 전례 없는 강력한 조치를 통해 불법·부당한 행위를 뿌리 뽑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현실성 부족한 개편안, 부정적인 반응 이어져


 일부는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으로 탄력적인 업무 집중과 충분한 휴식권 보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일부 직장인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1)에 따르면, 주 69시간제 개편안에 대해 ‘근로 시간과 휴무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어 찬성한다’는 40%, ‘노동자가 과도한 연장근로를 강요받을 수 있어 반대한다’는 54%가 응답했다. 실제 수도권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장인 A씨는 “이미 끝이 없는 업무에 모두 지쳐있는 상태이지만, 업무 마감을 해야 한다는 부담과 주변의 눈치에 유급휴가 사용도 망설이고 있다”며 “과연 해당 개편안이 시행되더라도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또한 고용부가 발표한 ‘2021년 일가족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이 연차를 사용하지 못한 이유는 △업무량 과다 또는 대체인력 부족 39.9% △미활용 연차휴가에 대한 금전적 보상 23.2% △연차 부여 일수가 많아서(근로자가 쓰지 않아서) 20.5% △상급자 및 동료의 눈치 15.2% 순으로 나타나 업무량 과다와 대체인력 부족의 영향이 연차 사용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으로 나타났다.


 지난 9일, 8개 사업장 노조가 모인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는 정부의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현 제도의 기반도 부실한 상황이기에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 전망도 장담할 수 없다”고 반대 의사를 표했다. 또한 당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장시간 노동과 과로사를 조장하는 주 69시간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 폐기를 촉구하는 시위를 펼치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재정비에 들어간 주 69시간 개편안


 정부는 노동계 개선을 위해 근로시간 개편안을 내놓았지만, 수많은 반대 여론이 들끓어 주춤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지난 14일, 정부는 근로시간 개편안 보완 단계에 들어섰다. 정부는 “주 52시간제의 경직성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고 인식돼 근로시간 개편을 진행했다”며 법안 추진 배경을 설명했지만, “연장근무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인식이 있고 장시간 근무 조장에 대한 우려를 고려해 보완을 지시했다”며 해당 입법안 재검토를 선언했다.


 이처럼 국민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한발 물러선 근로시간 개편안은 정책 혼선만 더욱 가중하고 있다. 물론 주 52시간의 문제점을 보완하겠다는 취지는 분명 더 나은 노동계를 위한 발걸음이지만, 노사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입법을 진행해 노동계의 불신과 우려는 미처 해결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만약 개편안을 제시하기 전 노조 측과 충분한 소통으로 노동계의 현실을 인지했다면, 모두에게 환영받는 노동시장 개혁의 방향성 확립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지난 16일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 유준환 의장은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향’ 토론회에 참석해 해당 개편안이 주 60시간으로 제한되더라도 노동계의 불합리한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는 근로시간 유연화의 기대보다 과도한 연장근로에 걱정이 앞서고 있기에 정부는 노동자 보호가 우선이다”고 일축했지만, 보완적 자세를 취하는 정부를 지켜보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덧붙여 토론회에 참석한 고용부 권기섭 차관은 “일과 삶의 조화가 우선시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맞물려 불안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언급하며 입법예고 기간 중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실효성 있는 정책 마련 의지를 내비쳤다.


김현비 기자 Ι rlagusql8015@kyonggi.ac.kr

정서희 기자 Ι seohee0960@kyonggi.ac.kr


1) 전국지표조사(NBS, National Barometer Survey)는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공동으로 수행하는 정기 전화 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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