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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거장 왕가위의 탄생 신화
  • 이수민 수습기자
  • 등록 2022-05-02 14:3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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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1980~1990년대 홍콩 영화계에 새 지평을 연 한 감독이 있다. △화양연화 △해피투게더△중경삼림 △열혈남아처럼 제목만 들어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작품들이 모두 그의 손끝에서 탄생했고 △임청하 △양조위 △장국영 △장만옥 등 수많은 당대 스타들이 그의 뮤즈를자처했다. 그의 이름은 왕가위이다.


 왕가위를 주제로 한 책은 차고 넘치지만, 이 책은 특별히 인간적인 왕가위의 모습에 초점을 두고 있다. 왕가위의 삶은 마치 그의 영화 같았다. 이를테면 한창 작업실을 이전할 때 옛 작업실의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자 "작업실도 우리가 떠나는 걸 아는 거야. 그래서 기분이 안 좋은 티를 내는 거지"하고 답하거나, 그가 에스터에게 전화번호를 묻자 여섯 자리 중 다섯 자리 숫자만 알려주고 나머지 숫자는 직접 알아서 연락하라는 그녀의 말에 3일이나 걸려 연락하는 그의 행동이나 말이 그렇다.


 이러한 왕가위의 아티스트적 면모는 그의 영화에 여실 없이 드러난다. 그가 사물을 사람인 것처럼 대하는 모습은 중경삼림에서 경찰 663의 역할로, 그와 에스터의 만남은 열혈남아에서 장만옥이 유리잔을 숨기는 행위로 말이다. 그의 영화는 삶의 연장선임과 동시에 전혀 다른 시대성과 장르를 지닌 비틀어진 허구다. 하지만 그런 왕가위의 연출 방식만이 관객들에게 홍콩이라는 새로운 마음의 고향을 선물해줄 수 있는 것이다.


"살아보지 못한 인생을 생각하는 게 훨씬 재밌잖아요.

실컷 상상할 수 있으니까"

존 파워스와 왕가위의 인터뷰 中



 영화를 살아보지 못한 인생의 구현이라고 표현한 왕가위는 지난 32년간 머나먼 타지의 관객들에게까지 홍콩행 티켓을 선물하며 홍콩으로의 초대를 제안해왔다. 기자는 이 책 역시 그가 직접 관객들에게 보내는 '왕가위'행 티켓이라고 생각한다. 왕가위 감독을 사랑했던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추천하지만, 모두가 한 번쯤은 읽어보기를 권한다. 영화계 거장의 거침없고 재치 있는 입담과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수민 수습기자 I leesoomin22@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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