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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시대와 인문학의 미래
  • 편집국
  • 등록 2022-05-02 15:04:33
  • 수정 2022-05-30 08: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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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수 (국어국문학과)

   

 인문학은 미래가 있는가?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의 능력이 의심받고, 급기야 인간 존재에 대한 회의론까지 이어지는 마당에, 인문학은 어떤 효용을 주장할 수 있을까? 기술이 없으니 취업이 안 되는 배고픈 학문, 백면서생들의 한량한 취미생활이나 백화점 문화센터의 교양지식 같은 인문학에 대한 이런저런 편견들이 진실처럼 받아들여지는 시기이니 말이다. 게다가 실용적인 효용보다는 늘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는 학문이라는 인문학자들의 자기 위안이 스스로에게 족쇄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 인문학은 원래 쓸모를 찾지 않아, 그러니 배가 고픈 걸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렴! 한때는 영광스러운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뒷방구석의 삐딱한 늙은 학자 같은 이미지로 인문학자를 바라보는 건 그런 이유에서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런 모든 편견에 대해 반대하면서, 나는 바로 지금이 인문학의 시대라고 자신 있게 말해보려 한다. 새로운 세계를 향한 대전환의 문턱에서,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연구하는 일이 얼마나 쓸모 있는 일인지 이야기해보려는 것이다. 

   

1. 풍부한 어휘력과 예민한 모국어 감각

   

 누구나 말을 하고 글을 쓰지만, 그들의 말이 똑같지는 않다. 언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이해하고, 그것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능력은 고도의 사유능력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인문학자들이 단어의 뜻, 토시 하나에도 신경을 쓰면서, 맥락에 맞는 표현을 찾기 위해 집요하게 고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어를 통해 생각을 만들고 전달하는 인문학도들에게 언어는 가장 중요한 사유의 기술이자 도구인 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섬세하고 예민한 언어 감각을 통해, 동일한 사건도 얼마든지 다르게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언어의 결이 섬세하고 다채로울수록, 그가 바라보는 세계는 더욱 풍요로운 의미로 가득 차게 된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를 결정한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언어, 특히 모국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언어를 갈고 닦는 인문학자의 일이, 복잡하게 변화하는 세계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2. 텍스트의 이해, 리터러시 능력

   

 낫 놓고 기역자를 못 읽는 사람은 없는 시대지만, 문장 안에 숨겨진 행간의 의미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무수한 정보가 초단위로 쏟아지는 정보사회에서는 텍스트를 제대로 이해하는 리터러시의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SNS에 떠도는 가짜뉴스의 홍수가 보여주는 것처럼,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조합되어 저마다 다른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를 가려내는 것, 실은 그것이 정말로 중요한 문제가 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문학의 기술 그 자체가 리터러시의 기술이기도 하다는 점은 흥미롭다. 반어와 아이러니, 상징과 비유로 가득한 문학 텍스트는 매력적인 언어유희로 가득 한, 훌륭한 리터러시 교재라고 할 수 있다. 위대한 사상가의 미로 같은 글 속에서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는 일은 또 얼마나 즐거운 텍스트 읽기 연습인가! 더구나 텍스트란 글자로 된 것이나 활자로 인쇄된 것으로만 제한되지도 않는다. 그림, 사진, 영상, 춤, 음악처럼 인간이 만든 수많은 종류의 텍스트들이 존재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의 얼굴은 또 얼마나 재미있는 텍스트인지 모른다. 수심에 가득 찬 어두운 얼굴, 미묘한 찡그림, 혹은 활짝 치켜 올라간 입꼬리, 사실 이런 것들은 내 친구의 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들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런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공감과 소통, 교감의 바탕이 된다는 사실이다. 


 어떤 친구가 인기가 많은지 주위를 잘 둘러보자. 대부분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해주는 친구다. 그의 기분을 잘 알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 때로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좋아한다. ‘너’라고 하는 미지의 텍스트를 제대로 읽을 준비가 된 사람이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다. 진정한 공감과 소통이 고픈 시대, 이것만큼 중요한 능력이 또 있을까!

   

3. 스토리텔링, 자기를 만들어가는 능력

   

 오늘날 스토리텔링은 의미를 창출하는 가장 매혹적인 방식으로 간주된다. 똑같은 영화를 보고도 서로 다른 줄거리를 말하거나, 혹은 같은 내용도 유독 누군가의 입만 거치면 재미있게 변한다면, 실은 그것은 스토리텔링의 역량 차이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스토리텔링이란 다양한 자료와 정보들을 수집해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로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회사 생활에도 아주 중요한 능력이다. 똑같은 자료를 가지고 얼마나 가치 있는 의미를 구성하고 창의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가를 결정 짓는 게 바로 스토리텔링의 힘이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런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종종 나 자신의 삶에 의미가 더해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현대 사회는 나의 내면과 차분하게 대면하기 어려운 시대다. 화려한 욕망과 자본의 유혹,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쉽게 자신의 진짜 모습과 멀어지곤 한다. 현대인들이 겪는 불안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나를 잃어버린 데서 오는 혼란스러움에 기인한다. 그러나 정말로 나는 누구인가?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보자면, 나의 삶과 나의 정체성이란 나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비로소 설명될 수 있다. 나라는 존재란, 내가 만나고 경험한 수많은 사람과 사건들이 결합한 총체이며, 갈등과 시련을 극복하며 지나온, 바로 나만의 이야기로 가장 잘 설명된다. 


 물론 내 안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그래서 발견되고 해석되어 개발되기를 원하는 수많은 빈틈도 있다. 복잡하고 이상하기 그지없어서, 나를 불안하고 외롭게 만드는 균열이 내면의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다. 그렇지만 늘 그렇듯, 그런 갈등의 요소들이 정말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고로 중요한 것은, (1) 그런 갈등을 반전의 플롯 포인트로 만드는 용감한 상상력만 있으면 된다는 것. (2) 그리고 물론, 그런 상상력의 가장 강력한 연료가 바로 인문학이라는 사실! 인문학은 그래서 인류의 가장 중요한 보고(寶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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