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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피우지 않는 고독은 없다
  • 편집국
  • 등록 2022-03-28 09:16:42
  • 수정 2022-05-30 08:3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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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성훈 (문학평론가, 경기대 교수)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 김소월 「산유화」 중에서

 

 꽃이 피지 않는 계절은 없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세계는 꽃밭이다. 이 꽃은 발견하는 사람의 몫이며 다가서는 사람의 것이다. 꽃 중에는 꽃이 먼저 피는 꽃이 있고, 잎이 지고 나면 꽃이 피는 꽃이 있고. 동시에 잎과 꽃이 나오는 꽃이 있다. 요컨대 3월에 피는 진달래는 잎보다 꽃이 먼저 나오고 4월에 피는 철죽은 꽃보다 잎이 먼저 나온다. 사람도 결실을 먼저 이루는 사람이 있다면 나중에 결실을 보는 사람이 있듯이. 분명한 것은 비바람을 견디면서 꽃을 피우려고 하는 열정과 노력이 결실을 좌우한다. 


 한 알의 꽃씨에는 모든 생노병사가 들어 있듯이 인간 역시 그 자체가 완전한 생명체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존재에 대한 이해는 무의식을 의식하지 않으면 무의식은 자신을 지배한다. 무의식은 세상의 흐름을 지각하지 않고 의식 없이 그대로 자신을 놓아버리는 것, 거기에 고유한 자신의 정체성은 없는 것이며 열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사물을 통해 존재의 이치와 세상의 원리를 발견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세상에 길들어지지 않는 하나의 방법이다. 


 꽃을 보는 방법으로 실재하는 꽃을 보며 회화와 같은 이미지로 꽃을 보며 문학과 같은 상징으로 꽃을 본다. 여기서 문학은 그림과 같이 꽃을 재현한 모방으로 통한다. 그렇지만 꽃에 관한 문학적 모방은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며 다양한 상징적 해석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시인에게 꽃은 창작자의 영감을 자극하는 것으로 수많은 소재가 되어 왔다. 이른바 시는 보이지 않는 꽃향기를 지각하게 하고, 실재하는 꽃의 색채와 형태를 전혀 다른 감각적 미학을 보여준다. 거기에 계절마다 피어난 꽃을 중심으로 파생된 다양한 주변부를 소재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른바 ‘꽃시’에는 햇빛과 비바람, 그리고 벌과 나비 등의 주변적 요소들과 함께 수많은 시인의 언어적 사유가 펼쳐진다.


 그것은 시인의 지닌 경험과 상상력의 개입으로서 같은 꽃을 바라보지만 다른 해석으로 기록된다. 이는 문학의 상징성이 부과된 것으로서 거기에 원천적으로 자극된 상상력의 기능 때문이다. 시인의 상상력은 어떠한 과정을 거치는 과정 속에서 발현되며 언어로 현현된다. 상상력은 시인의 추상이며 언어는 상상력의 구상이다. 이로써 시인의 상상력은 꽃을 통해 상징성을 생산하고, 생산된 상징은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마다 또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이처럼 문학적 상징은 개인적 차원에 유입되지 않고 유사하거나 비교되는 차별적 상징들과 관계 맺으면서 복잡한 구조를 형성한다. 이것을 말하면서 저것을 보게 하고 저것을 보게 하면서 이것을 말하는 것이 상징이다. 


 꽃을 노래하는 시편들은 그 자체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것에서부터 미적인 것을 노래하기도 하고, 꽃을 의인화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서사를 구성하면서 우리의 삶은 물론 근원적인 차원에 도달하게 만든다. 현대시에서 “나 보기가 역겨워/가실 때에는/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진달래 꽃」)라고, 노래한 꽃의 시인 김소월이 있다. 김소월(1902~1934)의 시편들은 고유한 민족 정서를 바탕으로 일제강점기 좌절과 처절한 슬픔이 교차하는 데서 향토적 소재와 민요적 기법으로 정서를 파고들고 있다. 


 김소월의「시혼」에서 “우리는 적막한 가운데서 더욱 사무쳐오는 환희를 경험하는 것이며, 고독의 안에서 더욱 보드라운 동정을 알 수 있는 것이며, 다시 한 번 슬픔 가운데서야 보다 더 거룩한 선행을 느낄 수 있는 것이며, 어두움의 거울에 비추어 와서야 비로소 우리에게 보이며, 삶을 좀 더 멀리한 주검에 가까운 산마루에 섰어야 비로소 삶의 아름다운 빨래한 옷이 생명의 봄 두던(언덕)에 나부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고독과 슬픔 한가운데서 삶의 거룩한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며 삶의 반대쪽에 있는 죽음을 통과하면서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고독할 때다. 고독이야말로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는 것이며 꽃을 피울 수 있는 상징적 에너지가 된다. 충분히 고독해라. 고독의 잎새가 떨어진 자리에 진정한 봄이 찾아오리니. 그때 꽃은 시인이 언어로 꽃을 피우듯이 사색으로 피운 꽃이 무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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