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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얀 설원의 개싸움
  • 박선우 기자
  • 등록 2022-03-02 16: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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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헤이트풀8’은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미국의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의 8번째 작품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영화 10편만을 만들고 감독을 은퇴하겠다고 밝혀왔는데, 이 영화는 그런 그의 필모그래피 막바지에 이른 영화다. 또 싸구려 B급 영화들을 인용하지만 높은 완성도를 선보이는 타란티노의 독창적인 스타일의 집합체다. △챕터로 이뤄진 소설가의 구성 방식 △감독 본인의 나레이션 개입 △저속하지만 쏙쏙 박히는 대사들 △사람의 머리가 아무렇지 않게 터져나가는 장면 △극도로 정교하게 짜인 이야기 △감독의 입맛대로 변형된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 등 그의 모든 게 이 설원에 모여있다. 


 눈보라가 뒤를 쫓는 설원 속, 현상금 사냥꾼 ‘존 루스’가 죄수를 산채로 레드락 타운으로 호송 중이다. 그러던 중 그들은 우연히 또 다른 현상금 사냥꾼 ‘워렌 소령’과 레드락의 보안관을 만나 합류하게 된다. 눈보라를 피해 산속 잡화점으로 들어선 그들 4명은 먼저 와 있던 또 다른 4명, △레드락의 교수형 집행인 △카우보이 △남부연합군 장교 △이방인을 마주한다. 그러던 중 누군가 갑작스럽게 독살을 당하게 되고 영화는 8인이 가진 비밀을 서서히 드러낸다. 


 이런 장르 영화는 그 장르가 수행해야만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슈퍼히어로 영화라면 히어로가 멋져야 하며, 코미디 영화라면 웃겨야 한다. 관객들은 스파게티 서부극이라는 장르에 대해서는 어떤 기대를 품고 극장에 갈까? △뜨거운 태양 △모래바람에 먼지가 일어나는 넓은 대지 △희극적 잔인함 △칙칙한 농담 △화끈한 총싸움 △추격전 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배경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원, 고립된 산장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게다가 다른 이들을 경계한 존 루스가 모두의 총을 뺏어 화끈한 총싸움도 기대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영화 스스로 장르적 쾌감을 죽인 것이다. 그렇다면 ‘헤이트풀8’은 3시간 가까이 되는 긴 러닝타임 동안 무엇을 보여줄까? 놀랍게도 인물들은 대부분을 입을 터는 액션으로 그 속을 채운다.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장르는 미국의 남북전쟁 전후의 상황을 이용하기 위해서, 또는 인물들을 설정하고 구축하기 위해서일 뿐인 표면적인 장르에 불과하다. 박평식 평론가는 이 영화를 “애거사 크리스티를 만난 눈벌판의 개들”이라고 평했는데, 기자 역시 이에 공감가는 바가 컸다. 영화는 세계 최고의 추리 소설이라고 평가받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타란티노라는 장르로 재구성한 느낌에 가깝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헤이트풀8’은 수다를 떠는 것만으로도 긴 러닝타임을 질리지 않게 하는 재미, 그걸 가능하게 하는 치밀하고 정교한 플롯. 중요할 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유혈낭자한 임팩트를 터뜨리지만, 자극의 연속이 주는 재미를 추구하지 않는 감독의 미학을 가졌다. 소설과 영화, 그 경계에서 스크린 속을 자유자재로 드나드는 타란티노의 작품을 즐겼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보는 것을 추천한다. 


박선우 기자 Ι 202110242psw@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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