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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설탕이 약으로 약이 설탕으로, 잠재의식이 만드는 변화
  • 한진희 수습기자
  • 등록 2021-10-20 09:3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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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말을 바꾸는 내면의 힘
누구나 더러운 해골물을 깨끗한 물이라 착각하고 마신 원효대사 해골물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다. 원효대사가 썩은 해골물에서 달달함을 느끼고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본지는 더러운 해골물을 달게 만들어준 그 현상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원효대사가 더러운 물을 마시고도 달콤하다고 느낀 것처럼, 아무 효능이 없는 약을 먹고도 병세가 호전되는 사람들이 있다. 1950년, 프랑스 약사 에밀 쿠에는 처방전 없이 찾아온 환자에게 약효가 전혀 없는 포도당류 알약을 처방했다. 며칠 뒤 환자는 그 약을 먹고 말끔히 나았다며 쿠에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모르핀을 대신해 식염수를 투여받은 병사들이 통증 완화를 느꼈고, 1955년 레너드 콥의 연구에서는 피부만 절개했을 뿐인 협심증 환자들이 수술 뒤에 통증 완화를 느끼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을 ‘플라시보 효과’라고 부르는데, 이는 심리적 요인에 의해 병세가 호전되는 현상, 즉 가짜 약 효과를 뜻한다.


 반면 적절한 약을 처방받아도 부정적인 심리에 의해 약효가 나타나지 않는 현상도 있다. 이를 ‘노시보 현상’이라 부르는데, 작동되지 않던 냉동창고에 갇혀 추위에 떨며 죽어간 한 선원과 손목에 상처만 냈을 뿐인데 정맥이 끊긴 줄 알고 사망한 사형수의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충분히 생존할 수 있었던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두 효과가 처음 제기됐을 때, 사람들은 이를 미신 취급했다. 그러나 이 현상을 증명할 과학적인 근거가 존재한다. 연구자들은 플라시보 효과에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중에서도 뇌과학 관련 연구가 중점적으로 이뤄졌다. 그 결과, 플라시보 효과가 발생할 때 환자들에게 눈 윗부분인 이마엽의 중전두회가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중전두회는 뇌에서 감정과 결정이 이뤄지는 부위로, 인간의 심리와 관련이 있다. 중전두회에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곧 플라시보 효과가 뇌와 관계가 있음을 증명한 것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를 통해서도 △도파민 △세로토닌 △엔도카나 비노이드 등의 호르몬이 플라시보 효과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 이 밝혀지기도 했다.


 노시보 효과도 마찬가지로 임상실험을 통해 확인된 과학적인 근거가 존재한다. 영국의 심리학자 어빙 커시는 학생들에게 공기 속에 메스꺼움이나 두통을 일으키는 성분이 들어갔다고 거짓말을 한 뒤, 실내의 공기를 마시며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영상을 보여줬다. 이에 곧 학생들 대부분이 영상 속의 사람처럼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다른 임상실험에서는 가짜 약을 항우울제라 생각하고 처방받은 남자가 가짜 약이라는 것을 깨닫 기전까지 건강이 위독해지는 등의 결과가 나온 적도 있다.


 플라시보 효과와 노시보 효과가 꼭 특수한 상황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약 대신 비타민을 주는 경우가 많다. 비타민은 약효가 없음에도 어린아이들의 가벼운 통증을 심리적으로 안정시켜줬다. 반대로 약효가 같아도 싼 약을 먹으면 통증이 잘 낫지 않는 것처럼, 싼 물건을 사면 품질이 괜찮아도 잘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도 하다. 이는 우리의 일상에서도 플라시보 효과와 노시보 효과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플라시보 효과를 얻고 노시보 효과를 피하기 위해 어떤 점이 필요할까. 무엇보다도 심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시험을 보기 직전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없던 자신감이 생기고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지는 것처럼,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따라 결말이 달라진다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는 본인의 의지에 달려있다. 어젯밤 마신 물이 해골물이라는 것을 깨달은 원효대사는 “진리는 결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말을 남겼다. 긍정적인 심리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고 부정적인 심리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이제 선택권은 당신의 의지에 있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한진희 수습기자Ιjinhee1267@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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