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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의 행복
  • 편집국
  • 등록 2021-09-14 09: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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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보 걷기가 유행인 적이 있었다. 건강해지려면 만보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7500보에서 걷기 효과가 정점에 이르고 그 이상의 걸음은 건강에 유의미한 영향은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만보 걷기는 일본 만보기 업체의 상술이었다고 하는 보도가 뒤따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핸드폰에 걷기 어플을 다운 받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걷기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몸의 건강에만 집착한다면 걷기의 효과를 충분하게 누리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인류의 지적 유산은 걷기에 의해 탄생되었다.

  우울이나 불안과 같은 정신적인 질병의 상당 부분은 몸을 움직이지 않아서 발생한 질병이라는 분석이 있다.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動物)이다. 움직여야 인간으로서 생명을 갖는 것이고 움직이지 않으면 살아있어도 생명이 없는 것과 같다. 인간은 본성상 움직이는 동물이다. 하지만 운송수단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은 움직이는 횟수가 줄었다. 몸은 굳어가고 있고 몸과 하나인 마음은 경직되고 있다. 결국 마음의 병은 몸의 병에서 오는 것이다. 많이 움직여야 마음도 건강해진다. 믿을만한 자료를 근거로 계산한 결과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인 윌리엄 워즈워스가 평생 걸었던 거리가 무려 28km였다고 한다. 그의 시적 창조에너지는 그의 다리에서 나왔다는 말이 된다. 걷기는 육체적인 건강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창조 에너지를 제공한다.

  칸트는 규칙적인 생활도 유명한데 오후 3시만 되면 항상 산책을 나갔다고 한다. 주민들이 그의 산책 시간을 보고 시계를 맞췄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산책 일과가 중단된 때가 두 번 있었는데 그것은 루소의 에밀을 읽었을 때와 프랑스 혁명 발발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고 한다. 그는 꾸준한 산책을 통해 불리한 신체와 약한 체질에도 불구하고 80세까지 장수하면서 불멸의 명저인 <</span>순수이성비판>(1781), <</span>실천이성비판>(1788), <</span>판단력 비판>(1790)이라는 3대 비판서를 연달아 출판하였다. 규칙적인 생활과 꾸준한 산책이 명저를 낳게 한 기초가 된 것이다.

  “신은 죽었다라고 설파한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는 <</span>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를 끝없는 걷기에서 집필했다고 한다. 그는 극심한 편두통과 병마와 싸우면서도 스위스 실스마리아 근처 호수와 숲을 걸으면서 이 책의 핵심내용인 영겁회귀초인사상을 생각해냈다. 걷기를 통해 근육이 가장 민첩하게 움직였을 때 창조력 또한 가장 풍부해진다고 하면서, 지치지 않고 일곱 여덟 시간을 산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땅을 걸으면서 동시에 영혼을 걷는 사람이라는 니체에 대한 평가는 그의 창조력이 결국 걷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반증한다. 니체를 읽는다는 것은 몸을 통한 경험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평론가들의 말도 그의 이러한 걷기의 힘에서 나온 것이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 유배 18년 동안 심신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학문적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꾸준한 걷기 덕분이었다. 강진에 유배된 초기 5년 정도는 패배의식과 실의 때문에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을 했었다고 한다. 강진의 갯벌, 백련사 길이 그의 마음을 위로하고 유배지에서도 삶의 희망을 발견하게 했던 것이다.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과 만덕산 백련사 동백숲길 그리고 강진 갯벌은 그의 걷기의 흔적과 삶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처럼 걷기는 철학과 예술을 창조하는 힘이 되기도 하고 아픈 몸을 치료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역할을 한다. 더구나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사회가 일반화되고 재택수업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걷기는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자연 치료제 역할을 한다. 이제 걷기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칸트는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일과 사랑 그리고 희망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걷기는 뉴노멀 시대의 행복 전도사 역할을 할 것이다.

  어디에서 걸어야 할까? 흔히 걷기 하면 산티아고나 시코쿠 순례길을 떠오른다. 북한산, 지리산, 한라산 등의 둘레길을 추천하기도 한다. 종교적 성스러움을 느껴보는 것도 좋고 백두대간에서 심호흡을 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접근하기 좋고 칸트의 산책로처럼 규칙적으로 걷을 수 있는 곳이 좋은 곳이 될 것이다. 집에서 가까운 곳을 정하여 매일 1시간 이상 걸어보자. 몸은 생기를 얻고 마음은 고요해지며, 영혼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번득일 것이다.

                                     


                                                                                     조극훈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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