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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月間偉人(월간위인)] 비극의 4·3사건과 의인 문형순 서장
  • 김수빈
  • 등록 2021-04-12 11: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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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당하므로 불이행’ 목숨 걸어 지킨 주민들
지난 3일은 제주 4·3 사건 희생자 추념일이다. 본지에서는 ‘폭도’라는 거짓된 이유로 희생당한 제주 4·3 사건과 그 속에서도 주민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문형순 서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한 주민들


 제주 4·3 사건은 1947년 발생한 ‘3·1절 발포 사건'을 발단으로 시작됐다. 1947년 제주에서는 3·1절을 기념하는 가두시위가 벌어졌다. 이때 한 아이가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채여 다쳤고, 군중들은 다친 아이를 두고 그냥 가던 기마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며 비난했다. 이에 무장경찰은 군중을 향해 총을 발포했고, 이로 인해 주민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후 제주도민들은 3·1 사건에 항의하고자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는 민·관 합동 총파업을 진행하며 △사과 △책임자 처벌 △유가족 지원 등을 요구했다.


 위 사건으로 긴장감이 맴돌던 1948년 4월 3일, 남로당을 주축으로 한 무장대가 반란을 일으켜 △경찰 △우익 인사 △우익 청년 단체 단원 등을 공격했다. 이후 국방경비대 제9연대장 김익렬과 미군정의 맨스필드 중령이 72시간 내에 전투를 중단하기로 협상했지만 정체불명의 무장 세력이 제주읍 오라리의 마을에 방화를 저질러 결렬됐다. 이후 무장대는 5·10 총선거를 방해하고자 주민들을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고, 제주도 2개 선거구만이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 처리됐다. 미군정은 이를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저해하는 불순세력의 음모로 판단했다. 대한민국이 수립된 후 정부는 제주도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경비사령부를 설치했고 19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1949년 3월, ‘산에서 내려와 귀순하면 살려주겠다’는 선무공작이 전개돼 1만 명의 사람들이 하산했다. 하지만 군경토벌대는 이를 지키지 않고 닥치는 대로 주민들을 사살했다. 또한 △무장대로 변장해 자신을 도와주면 사살하는 ‘함정토벌’ △자수를 종용하다 자수하면 처형하는 ‘자수 사건’ △처형 대상이 없을 때 가족을 대신 죽이는 ‘대살’ △마을 주민을 모아놓고 학살하는 ‘관광총살’ △주민을 대상으로 사살연습 등의 잔혹한 행위를 일삼았다. 이러한 학살은 7년 7개월간 이어졌고, 약 1 만 4,532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하모리마을을 지킨 문형순 서장


 문형순은 1897년 평안남도 안주군에서 태어나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이후 문형순은 만주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하고, 1945년 8월까지 화북지역에서 한국광복군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광복 이후 문형순은 한국으로 귀국해 경찰이 돼 1948년 모슬포 지서장으로 부임했고, 1949년에는 성산포 경찰서장으로 승진했다.


 제주 4·3 사건에서 문 서장은 대정읍 하모리에서 좌익명단에 올려진 100여 명의 주민들을 살려냈다. 당시 서청의 단원들은 자수서를 조작해 무고한 주민을 죽게 만들곤 했는데 문 서장은 재치를 발휘해 자수서를 아무런 탈이 없게 쓰도록 지시했다. 결국 계엄사령부는 자수서를 보고 ‘시시하다. 아무런 내용이 없다’며 돌려보냈고, 주민들은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이후 한국전쟁이 터지자 군은 ‘적에게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자’를 검거하기 위해 예비검속을 전국적으로 진행했다. 이때 검속자들은 △D △C △B △A 등급으로 분류됐는데, 이 중 C, D등급의 대부분은 총살당했다. 이 때에도 문 서장은 예비검속자들을 집단 총살하라는 해병대 정보참모의 독촉 명령서에 ‘부당하므로 불이행’이라며 거부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총 80명의 C, D 등급 수감자 중 8명만이 희생됐다. 이 덕분에 당시 수천 명이 죽어가던 예비검속에서 성산포 경찰서 관내 주민들은 대부분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학살을 명령하는 상관과 집행하는 사람들 틈에서 자신의 목숨을 걸어가며 관할구역의 주민들을 살린 문 서장은 그 공을 인정받았다. 제주 4·3 평화 기념관에 그는 ‘의인’으로 들어가 있으며,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는 그의 공을 기리는 공덕비가 세워져있다. 또한 독립운동가로서의 공도 인정받아, 독립운동 참여자 명단에 자랑스럽게 이름을 올리고 있다.


김수빈 기자│stook3@k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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