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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이] 한국의 아우슈비츠,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억울함 해결될까?
  • 김수빈
  • 등록 2021-03-29 09: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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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상상고 기각과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출범
약 30여 년 전, 86서울 아시안게임과 88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전두환 정권의 ‘거리 정화 프로그램’이 시행됐다.
본지에서는 이를 악용해 수많은 피해자를 낳은 ‘형제복지원’사건과 판결 결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박 원장 같은 사람 덕분에 거리에 거지도 없고 좋지 않소”


위 말은 형제복지원 사건이 일어난 후 부산시장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사죄하자, 전두환 대통령이 대답한 말이다. 이처럼 당시 정권의 지지를 받았던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시에서 운영된 부랑아 수용시설이다. 당시 정부는 부랑인을 ‘시민들에게 위해와 혐오감을 주고, 신체적·정신적 결함이 있는 존재’로 규정해 △신고 △단속 △수용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훈령을 마련했다. 이후 1986년 아시 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개최가 결정되자, ‘거리 정화 프로그램’을 실시해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길거리의 부랑자들을 단속하고 강제로 구금시켰다. 그런데 형제복지원은 이러한 시대 상황을 악용해 부랑자뿐만 아니라 길거리를 다니던 일반인과 아이들을 강제로 납치해 수용소에 감금하고 강제 노역을 시켰다. 형제복지원에서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납치한 이유는 사람 수대로 국고보조금이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형제복지원은 운영자금 목적으로 1985년에는 18억 원을, 1986년에는 20억 원 남짓을 지원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형제복지원은 이처럼 막무가내로 잡아온 사람들을 학대하고 강간했을 뿐만 아니라, 사망한 시신을 암매장하고 일부 사체를 의과대학에 해부학 실습용으로 판매하는 등의 악랄한 행위를 저질렀다. 실제로 진상조사 결과 형제복지원이 운영되던 12년간 살해 또는 고문으로 사망한 원생 수는 약 550명이다. 그러나 암매장이나 시신 판매 등으로 인해 알려지지 않은 사망자 수는 헤아릴 수 없다. 이와 같은 잔인한 행태에 국민들은 분노했다. 하지만 형제복지원의 박인근(이하 박 원장)원장은 총 2년 6개월의 징역만 선고받았다. 심지어 △폭행 △살인 △시신 유기 △시신 암거래 △특수 감금 등의 죄목은 인정되지도 않았다. 또한 박 원장과 그의 가족들은 자신의 범죄사실을 인정하거나 피해자들에게 사과하지도 않았다.


형제복지원 사건 수사 및 재판 과정



비상상고 기각, 사건 전체 대한 무죄 판단은 아니다


지난 11일,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비상상고가 기각되자 피해자들은 눈물을 흘렸다. 대법원은 해당 재판이 비상상고의 요건인 ‘심판이 법령에 위반한 때’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비상상고를 하기 위해서는 '법령 위반'이라는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그러나 검찰이 비상상고의 이유로 제시한 ‘훈령의 무효’에서 ‘훈령’은 ‘법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상급심의 파기판결로 효력을 상실한 재판은 비상상고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재판부는 “형제복지원의 보호라는 이름 아래 폭력이 동반된 감금과 노동력 착취를 국가가 묵인하고 비호했다”라고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인정했다. 또한 작년 12월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이하 위원회)에 형제복지원 사건이 1호로 접수됐다. 이에 부산시는 지난 19일 박 원장의 아들이 운영하던 ‘실로암의 집’에 보관돼 있던 기록물들을 이관했다. 이 자료들은 위원회에 전달돼 진상 규명의 증거 자료 로 쓰인 후 역사적 기록물로 보존할 계획이다.


김수빈 기자│stook3@kgu.ac.k


덧붙이는 글

무고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음에도 국가를 등에 업고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던 형제복지원 사건, 과연 이번에는 올바른 진상 규명을 통해 그들의 억울함을 밝혀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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