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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권과 자기결정권 사이의 낙태죄
  • 조승화
  • 등록 2019-06-12 08:58:28
  • 수정 2019-06-12 08:5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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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와 부모의 행복은 어디에
지난달 1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SNS에 낙태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리며 낙태죄 헌법불합치 소식이 다시금 화두에 올랐다. 이에 본지에서는 낙태죄를 둘러싼 논란을 자세히 취재했다.

   

낙태죄, 태아의 권리를 말하다?

낙태죄는 산모와 의사 등 관련자가 태아를 제거하는 행위를 할 경우, 처벌하는 형법상에서의 범죄행위를 의미한다. 이는 형법 269조와 270조에서 규정하고 있으며, 낙태한 산모를 처벌하는 자기낙태죄와 산모의 동의를 받아 수술한 의료진을 처벌하는 동의낙태죄로 나뉜다.

1953년 규정된 낙태죄는 약 50년간 사문화 상태였다. 그러나 1973,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이 제정돼 강간에 의한 강제 임신’, ‘산모의 건강 우려와 같은 사유 외의 낙태에 대해 적극적인 처벌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411, 헌법재판소에서 해당 형법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내년 1231일까지 낙태죄 규정이 개정되지 않을 경우 전면 폐지될 예정이다.

 

낙태죄, 자기결정권을 간과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후 낙태죄 폐지에 대한 찬반측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낙태죄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생명 경시 풍조 수술의 부작용 태아의 생명권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또한 충분히 양육 가능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낙태하는 경우의 증가와 태아를 하나의 소유물로 바라보는 인식 확산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피임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낙태죄 폐지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경제적인 이유 원치 않은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 등을 언급했다. 정부가 개개인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낙태를 제한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특히 신체구조상 출산 후 양육에 대한 책임이 여성에게 치중되는 문제를 지적했다. 실제로 2017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혼부의 숫자는 8,000여명인데 비해 미혼모는 22,000여명으로 드러났다. 나아가 현행법 상 직접 아이를 유기한 이에 대해서만 처벌이 이뤄지는 가운데, 잠적한 친부에게는 묻지 않아 법적 책임을 혼자 지게 된 미혼모의 사례가 상당수다. 지난해에는 임신 이후 남자친구와 연락이 끊긴 A씨가 자신의 아이를 유기하고 버려진 신생아를 구했다며 거짓신고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낙태죄, 생존권은 나 몰라라?

그렇다면 양육을 포기하는 주된 원인은 무엇일까. 2009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의하면, 1998년 외환 위기 2001년 카드 대란 2008년 금융 위기 등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양육을 포기하고 대체 시설에 맡겨진 아동들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약 195,000억 원이었으며 자녀 한 명당 성인이 되기까지 수억 원 상당의 비용이 요구되고 있었다. 낙태가 법으로 금지된 상황에서 양육을 선택할 시, 상당한 양육비가 부담이고 포기하면 다음과 같은 문제에 부딪혀 이도저도 못하는 것이다.

앞서 거론된 다양한 사유로 양육을 포기한 부모들이 낙태가 금지된 시점에서 선택하는 방안에는 고아원 보육원 베이비박스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설에 맡겨진 아이들 중 일부는 학대 성폭력 폭력에 노출된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또한 만 18세가 되면 자립지원금을 받고 시설에서 퇴소해야 하지만, 정부의 자립 지원은 모두 지자체의 재량에 따르고 있어 앞날을 보장받기 어렵다. 지난 2017, 18세가 돼 보육원을 나온 김모씨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대학에 진학했으나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막막하다고 발언해 그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양육이 어려운 상황에서 태어나 시설에 맡겨졌지만 생명권을 주장하던 태도와 달리, 생존권은 나 몰라라 하는 정부의 미흡한 지원 정책으로 인해 출생 이후 행복한 삶을 장담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조승화 기자 tmdghk0301@kgu.ac,kr

덧붙이는 글

모든 인간은 삶을 살아가면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이를 위해 존재하는 여러 제도들에 벽이 존재해, 양육 여건이 마련되지 못한 환경에 놓인 부모와 아이의 행복을 추구하기란 어렵다. 이에 개인들의 신중한 판단과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미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존재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 중,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지를 올바르게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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