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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이란 무엇인가] 책의 얼굴을 그리는 사람, 북디자이너
  • 김희연
  • 등록 2019-04-15 10: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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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경기대신문 특집 기획으로 “출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연재하고자 한다. 출판은 크게 △작가 △기획편집 △디자인 △마케팅 △홍보 △서점으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총 6가지 분야에서 종사하는 각각의 전문가에게 이야기를 들을 예정이다. 이번에는 책의 표지를 정성스레 만드는 <디자인>에 대해 알아보자.


김경년 (9년차 프리랜서 북디자이너)

 

 책을 고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나에게 필요한 키워드로 제목을 검색해보거나, 특정 장르 혹은 좋아하는 작가가 쓴 책을 골라서 읽기도 한다. 책을 많이 읽는 지인의 평가나 인터넷에 올라 온 서평을 찾아보는 사람도 있다. 이것저것 다 골치 아프면 무작정 서점에 있는 베스트셀러 진열대로 달려가는 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누구라도 책을 고를 때 반드시 거쳐야 할 첫 번째 관문이 있다. 바로 책의 ‘표지’를 살피는 것이다. 우연히 서점에 갔다가 멋진 표지에 매료돼 책을 구매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제목이 그럴싸해도 디자인이 너무 형편없어서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경험도 있을 것이다. 책의 내용이 아무리 훌륭하다한들 독자가 첫 장을 펼쳐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출판사가 많은 비용을 들여서라도 표지를 정성스럽게 디자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북디자이너는 한 권의 책에 담긴 모든 시각적 요소를 컨트롤하는 직업이다. 앞서 말한 표지디자인은 물론이고, 수백 쪽이 넘는 본문을 한 장 한 장 디자인하는 것도 북디자이너의 몫이다. 북디자이너가 한 권의 책을 디자인하면서 신경써야할 사항은 수도 없이 많다. 북디자이너는 제목과 부제, 그리고 책에 관한 카피문구가 잘 보이도록 섬세하게 표지를 디자인해야 한다. 독자가 표지만 보고도 한 눈에 책을 알아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한 △텍스트의 사이즈 △ 자간과 행간 △여백의 비율 등을 신경 써서 본문을 조판해야 한다. 독자가 활자를 읽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북디자이너는 책이 무겁지 않으면서 알맞은 크기를 갖도록 책의 종이와 판형을 신경 써야 한다. 독자가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기에 부담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북디자이너는 전체적으로 책이 아름답도록 디자인해야 한다. 독자가 책을 서재에 꽂아두고, 그 아름다움에 또 다시 책이 읽고 싶도록 하기 위해서다. 북디자이너는 독자가 독서라는 행위에 흠뻑 빠질 수 있도록 무대 뒤에 숨어 일하는 스태프와 비슷하다. 재미있는 연극을 볼 때 관객 스스로 극장에 있다는 현실을 잊는 것처럼, 독자가 독서를 하고 있다는 현실을 잊 고 온전히 책에 몰두하도록 북디자이너는 책 속의 모든 요소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디자인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직업이 다 그렇듯이 이상과 현실에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다. 가끔은 내 생각과 다른 클라이언트의 제멋대로인 요구에 형편없는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좋은 시안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클라이언트를 설득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할 때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못하거나 혐오하는 내용의 책을 마지못해 디자인할 때면…… 그때 느끼는 자괴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겨우 이따위 쓰레기 같은 내용을 책으로 만들어야 하다니, 나무에게 너무 미안해서 식목일에 반드시 나무를 심어야 겠다 생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회의감에 젖어봐야 해결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내가 계속 불만족스러운 작업을 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어쩌면 업계에서의 내 위치가 딱 그 정도이기 때문은 아닐까? 내가 좀 더 실력 좋은 북디자이너가 된다면, 그래서 좀 더 멋진 작업물과 만날 기회가 늘어난다면 내가 가진 이러한 회의감도 조금은 줄어들 것 이다. 그렇게 꾸준히 나의 길을 걸어온 지 벌써 9년째. 나는 이제 속해있던 회사에서 나와 내가 원하는 내용의 책을 골라서 작업할 수 있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자리 잡게 됐다. 결국 눈앞에 있는 작업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보다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북디자이너는 무엇보다 디자인 프로그램에 익숙해져야 한다. 가장 기본인 프로그램은 ADOBE사의 ‘인디자인(Indesign)’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책의 표지와 본문을 모두 컴퓨터 화면을 통해 편리하게 디자인할 수 있다. 요즘은 책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인쇄물을 PDF 파일로 만들어 인쇄소에 넘기는데, 이 PDF 파일을 만드는 핵심적인 프로그램이 바로 인디자인이다. 회계사에게 ‘엑셀’이 있고, 소설가에게 ‘워드프로세서’가 있듯이, 북디자이너에겐 ‘인디자인’이 있다.

 

 또한 여행 가이드북이나 화보집처럼 이미지가 많은 책을 작업 하기 위해선 ‘포토샵(Photoshop)’이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이미지의 화질을 체크하고, 색상을 보정해 인쇄에 적합하게 만들기 위해선 ‘포토샵’의 다양한 기능을 반드시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책에 들어가는 간단한 아이콘이나 인포그래픽 (Infographic)같이 벡터(vector)기반의 이미지를 사용하려면 ‘일러스트레이터(illustrator)’라는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일러스트레이터는 텍스트를 3D 입체로 만드는 등 다양한 효과를 사용할 수 있으니 멋진 표지를 디자인하기 위해선 반드시 배워둘 필요가 있다. 요즘은 이런 디자인 프로그램에 관한 책이 잘 나와 있어서 독학으로도 충분히 기본 수준 이상으로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나 역시 책으로 이러한 디자인 프로그램들의 기본을 배웠다. 마음속에 열정이 가득하다면 충분히 도전해볼만한 일이다.

 

 북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출판 편집자와 발맞춰 일하는 소통 능력이다. 북디자인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출판사 편집자와의 협업을 통해 이뤄진다. 북디자이너는 책에 관한 내용을 잘 숙지해서 편집자에게 적절한 디자인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때로는 반대로 편집자가 먼저 책에 어울릴만한 디자인 요구사항을 정리해 북디자이너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그렇게 의견을 주고받다보면 편집자와 북디자이너가 서로 생각이 달라 갈등이 빚어질 때도 있다. 북디자이너는 자신의 디자인을 이해 못해주는 편집자가 실망스럽고, 편집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콘텐츠의 방향에 공감하지 못하는 디자이너가 서운하다. 이때 의견 조율을 매끄럽게 풀어나가지 못한다면 자칫 서로 감정이 상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그 작업 자체가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두고두고 나를 괴롭히기도 한다. 내가 아는 북디자이너 중에 실력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늘 편집자와 불화가 심해 직장을 옮겨다니는 사람이 있다. 만약 그가 편집자와 소통하는 능력이 좋았더라면 분명 승승 장구하는 북디자이너가 됐을 것이다.

 

 이처럼 책에 대한 열정, 기본적인 디자인 능력,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을 갖췄다면 북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취업의 문을 두드리기 바란다. 다른 회사들처럼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서 검색할 수도 있고, 북에디터(http://www.bookeditor.org)같은 출판인들 이 자주 드나드는 사이트를 통해서 알아볼 수도 있다. 출판사가 요구하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그리고 지금껏 작업한 결과물들을 정리한 포트폴리오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북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아직 까지 디자인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디자인 실력은 어느 정도 갖췄지만 자신에게 맞는 출판사를 찾기 위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서울출판예비학교에 도전할 것을 추천한다. 서울출판예비학교는 서울북인스티튜트(http://www.sbin.or.kr/)라는 교육기관에서 진행하는 신규 출판인력 양성 프로그램이다. 이곳에 들어가면 6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출판 업무에 관한 교육을 받게되며, 이후에 신규 채용을 원하는 출판사와 연결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 게다가 국비로 운영되기 때문에 교육비가 무료이며, 큰 돈은 아니지만 약간의 생활비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지원자뿐만 아니라 출판사 입장에서도 출판예비학교 출신들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신입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을 출판예비학교에서 미리 배워오기 때문에 일반 지원자보다 출판예비학교 출신들에게 훨씬 높은 점수를 주는 편이다.

 

 나도 2010년도에 서울출판예비학교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북디자인을 시작했고, 교육 이수와 동시에 출판사에 디자이너로 취업을 할 수 있었다. 벌써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그때 함께 공부를 했던 디자이너 동기들과 지금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편집자, 마케터 과정을 공부했던 사람들과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서울출판예비학교는 편집자, 마케터, 디자이너 3 가지 양성과정을 모집하며, 6개월 동안 같은 건물 안에서 왔다갔다 하며 함께 공부한다). 신입 때부터 출판계에 연락하고 지낼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은 어디에도 없는 서울출판예비학교만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올해 2019년 기준 북디자인 과정 16명을 선발한 다고 한다. 원하는 사람들 모두가 서울출판예비학교에 들어갈 수는 없기에 좀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갈 각오를 해야 하지만, 합격만 된다면 분명 후회 없는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높은 확률로 취업을 보장받게 될 것이다. 만약 서울출판예비학교가 부담스러운 사람은 한겨레신문에서 운영하는 ‘한겨레출판학교’라는 곳도 있으니 함께 알아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서울출판예비학교만큼 높은 취업률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북디자이너로 취업하는 데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한다고 한다.

 

 어느 원로 북디자이너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직업을 가졌다고 말했다. 책을 디자인하는 것이 자신의 취미이자 곧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디자이너의 일은 분명 고되지만, 진정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고됨도 하나의 과정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디자인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사람들이 업계로 들어와 함께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내가 맡은 눈앞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후배들을 기다리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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