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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이란 무엇인가] 디지털 시대에 출판편집자는 어떤 일을 하는가?
  • 김희연
  • 등록 2019-04-02 09:5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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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경기신문 특집 기획으로 “출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연재하고자 한다. 출판은 크게 △작가 △기획편집 △디자인 △마케팅 △홍보 △서점으로 나눌 수 있다. 따라서 총 6가지 분야에서 종사하는 각각의 전문가에게 이야기를 들을 예정이다. 그렇다면 지난 호에 이어 이번에는 <기획편집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 사람마다 기준은 다양하다. 보통 좋은 일자리란 급여가 높고, 깨끗하고 안전하며 편한 근로 환경, 신분 보장이 잘 되고, 사회적 영향력이 크고 성취도가 높은 직업 이다.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전문직 등이 대체로 사람들이 선호하는 좋은 일자리에 속한다면, 출판 편집자는 어느 위치에 있을까?

 

 2~30년 전, TV 드라마에 등장하는 출판인 혹은 편집자는 가난하고 쩨쩨함의 전형으로 그려지곤 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지 트렌드를 쫓는 문화산업의 메신저로, 더 나아가 자유분방하고 세련되고 똑똑하고 예리하며, 일확천금도 벌 수 있는 미다스로 그려지기도 한다.

 

 편집자의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20년 넘게 출판 편집자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고마운 일이다. 다만 미디어에 비친 피상에서 청년들이 막연하게 편집자를 꿈꾸는 것은 만류하고 싶기에 한발 더 들어가 실제로 편집자는 어떤 일을 하며 출판 사는 현재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은 디지털 기반의 콘텐츠 빅뱅 시대이다. 영상을 기반으로 한 개인 미디어의 확산과 SNS는 미디어와 콘텐츠 소비 환경을 급격하게 바꿔 놓았다. 책의 경쟁자가 넘쳐난다. 3~40년 전에 책은 △영화관 △TV △라디오 정도와 경쟁했을 뿐이다. 수십 년간 시시각각 등장하는 뉴미디어와의 경쟁에 놓이면서 출판계는 책의 위기라며 엄살을 떨어왔지만 지난 수년 내 양상을 보면 엄살로만 웃어넘길 수 없는 상황이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고, 출판사 역시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다. 출판사가 돈을 벌려면 책을 많이 팔아야 한다. 어느 기업이든지 핵심 역량이 탄탄해야 돈을 잘 번다. 출판사의 핵심역량은 편집이다. 핵심역량이 부족하면 영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책에는 그 출판사가 추구하는 바가 반영되고. 그걸 반영하는 일 은 편집의 영역이다.

 

 출판사에는 이런 직능들이 있다. 편집자는 머리에 해당한다. 그리고 디자이너는 손이며, 영업은 발에 해당한다. 이 모든 것이 잘 맞아야 출판사가 잘 유지되겠지만 역시 핵심은 편집이다. 그렇다고 해서 손과 발의 역량을 낮게 보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멋진 콘텐츠(기획, 편집)도 비주얼(디자인)이 별로면 독자의 손에 잘 들리지 않고, 콘텐츠와 비주얼이 좋아도 잘 알려지지 않고 구매자(독자)들이 손 쉽게 구할 수 있는 위치에 현물이 없으면 책은 잘 발견되지 않아 팔리지 않는다.

 

 필자가 출판계에 첫발을 들여놓았던 20년 전만해도 편집은 교정과 교열을 보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컸다. 지금도 여전히 편집자 하면 단순히 글을 만지는 직업 이렇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 다. 교정은 맞춤법을 적용하고 비문을 수정하고 띄어쓰기를 바로잡는 기능적인 일이다. 교열은 저자의 의도가 독자에게 잘 전달되고 잘 읽히도록 보완하고 다듬는 일이라 어느 정도는 재능 과 경험의 영역일 수 있다. 여하튼 교정과 교열은 편집의 역할 중 기본적인 직능에 불과하다.

 

 편집의 핵심은 기획과 텍스트 선별 능력에 있다. 출판에는 △ 소설 △에세이 △경제 △동화 △예술 △과학 △자기계발 △학습 등 매우 다양한 분야가 있지만 대별하자면, 다양한 사회적 필요를 담아내는 실용 분야와 순수 창작에 기반한 문학 분야로 작품 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의 편집자에게는 기획이, 후자의 편집자에게는 작품 선별의 감식안이 필수 능력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편집자에게는 이 두 능력은 모두 요구된다.

 

 편집자는 독자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직 업이다. 이것이 기획과 작품 선별의 시작점이자 핵심이다. “즐거움을 줄 것인가, 지식 전달을 줄 것인가, 교훈을 줄 것인가, 계몽을 할 것인가, 실용적 가치를 줄 것인가.” 이런 것들이 기획의 출 발이다. 그런데 기획이든 작품의 선택이든 자기 주관적인 시야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객관성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얼마의 독자들에게 이 기획을, 이 텍스트를 도달시키고 손에 책이 들리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즉 얼마만큼 팔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 목표이다. 물론 모든 출판 분야가 동일한 독자 규모를 갖는 것은 아니며, 상업성만을 전제로 출판이 되는 것도 아니다. 출판의 양상은 다양하지만 상업출판을 논하는 입장에서 판매를 거론하지 않고 편집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하다고 본다.

 

 세부적으로 기획에는 이런 요소들이 포함된다. △아이템과 주제의 설정 △내용의 구성 △타깃 독자 설정 △페이지의 구성 △ 디자인의 방향 △필자의 섭외 △출간시기 △책의 판형 △종이의 지질 △제본의 방식 △가격 △마케팅 아이디어 등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책이 되는 첫 실마리부터 독자의 손에 들리게 되는 전 과정에 대한 워크플로(Work Flow)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일이다.

 

 이쯤에서 편집자는 역할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찾을 수 있다. 편집자는 책을 만드는 전 과정에 개입하여 그 안에 만나는 사람들 전체를 조율해야 하는 일을 한다. 방송에서 보자면 PD, 오케 스트라에서의 지휘자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근래에 편 집자를 Book Producer라고 부르기도 한다. 편집의 직능에 관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다시 말머리를 앞으로 돌려 지금 이 시대의 콘텐츠 환경에 대해서 살펴보자.

 

 전 세계 어디든 확실히 책은 예전보다 잘 팔리지 않는다. 출판사의 살림살이는 점점 쪼그라든다. 그런데 왜 자꾸 출판을 하겠다는 개인들의 시도는 끊이지 않을까? 왜 출판사는 줄지 않고 오히려 늘고 있으며, 책을 만들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도 계속 생겨 나는 것일까? 유명해지면 왜 꼭 종이책을 내려는 걸까? 디지털의 대규모 공습으로 인하여 책이 사라질 것만 같지만 아직까지 책의 향기는 세상 어디서든 꿋꿋하게 버티고 있다. 디지털 피로도가 심해지면서 향수와 복고의 수요도 꾸준히 발생한다. 이른바 ‘아날로그의 역습’이 그것이다. 책만이 갖는 매력이 더 깊어지는 것이다. 가상의 공간의 인기를 손에 잡히는 현물에서 만족감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출판은 오히려 더 힙(Hip)하고 트렌디하게 더 고급스러움으로 추구되는 경향이 있다.

 

 출판 트렌드의 변화 중 주목해야 할 것이 또 하나 있다. 독립 출판이다. 베스트셀러를 추구하는 기존 대형 출판사의 전통 구조에서는 출간되기 어려운 콘텐츠들이 독립출판이나 독특한 색 깔의 작은 출판사에서 탄생하고 있다. 이는 덕후 문화, B급 문화 등 다양한 문화적 욕구와 수요에 출판계가 시장에 수렴해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적인 글로벌 출판사들이 전 세계 현지에서 소규모 출판사들을 인수하고 수십 수 백개의 브랜드(임프린트)로 확장하는 것도 이런 미세한 시장 요구를 수용하려는 전략에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출판계는 확실히 변혁의 시대에 놓여 있다. 아직 출판에서 종이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높지만 전자책과 오디오 북의 발전상도 중요하다. 출판의 본질은 읽기를 파는 것이다. 읽는 수단은 종이책만이 유일하지 않다. 미래의 편집자는 다양한 콘텐츠 플랫폼의 변화에 감지하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과거 책을 내기 위해서는 출판사를 통하지 않으면 어려웠다. 즉, 편집자는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에 중요한 길목을 지키는 게이트 키퍼였다. 전통적인 출판 비즈니스에 △편집자 △큐레이터 △신문사 출판 담당 기자 △평론가 들이 게이트 키퍼였고 이들은 오랫동안 출판계 내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녔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SNS에 의해 권력의 주체가 바뀌고 유통 방식이 바뀌었다. 콘텐츠의 유형도 다양화됐다. 게이트 키퍼의 의미는 변했다. 길목을 지키고 서서 통제하는 위치가 아니라 콘텐츠의 바다에서 그리고 유행의 길목에서 유용한 것들을 걷어 올리는 선별 자이다.

 

 현재 출판 비즈니스는 고전 중임에 틀림이 없다. 한국 시장은 더욱 그렇다. 시장도 좁고 글로벌 시대에 한국어라는 고립된 언어적 특성도 한몫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콘텐츠의 파편화에 따른 △소규모 출판사의 증가 △ 전자책 출판사의 증가 △다양한 퍼블리싱 비즈니스 모델의 시도 △다양한 콘텐츠 플랫폼의 등장 △아마추어도 출판이 가능한 POD서비스의 확산 △전통 출판과 디지털 퍼블리싱의 협업 △독립출판물의 성행 등은 이미 시작됐다.

 

 한국 출판계에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인재가 필요한 상황이다. SNS에 능하고 영상 콘텐츠의 대한 이해도가 높고, 콘텐츠 플랫폼에 익숙한 포스트-밀레니얼 세대가 출판계에 들어와야 한 다. 책을 좋아하고 출판계에 일하고 싶다면, 모든 콘텐츠 비즈니스의 중심에는 어디든 편집자가 있음을 명심하길 바란다. 편집자는 더 이상 종이책의 텍스트만을 다루를 사람이 아니다. △텍스트 △영상 △오디오 등 모든 콘텐츠에 대한 흐름을 파악해 기획으로 담고 콘텐츠로 만들어 내는 일이 미래의 편집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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