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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된 사형제 논란 다시 수면 위로
  • 박현일
  • 등록 2018-10-08 09:2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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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인권위원회는 폐지 권고, 시민 여론은 반대

 

 

 대한민국은 지난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중단해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된다. 집행 중단 이후 사형제 존폐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정부에 사형제 완전 폐지를 권고했지만, 최근 흉악범 관련 논란으로 인해 존치 및 집행을 요구하는 여론이 커진 상황이다. 이에 본지는 사형제 찬반 대립과 현 상황에 대해 알아봤다.

 

 ‘사형제 존폐’, 1997년 이후 계속돼온 질문


 사형은 대한민국의 법정 최고형으로, 미국과 일본 등 총 23개국에서 집행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이 23개국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형제도 자체가 폐지된 건 아니지만 지난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총 60여 명의 사형수가 복역 중이지만, 이들 중 실제 집행된 경우는 한 건도 없다.

 

 법정에서는 사형 판결이 나지만 그 판결이 시행되지는 않는 상황 때문에 집행 중단 이후 사형제 존폐에 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종교계와 인권시민단체 등 생명권을 중시하는 단체들이 꾸준히 완전폐지를 주장해왔지만, 연쇄살인과 같은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존치와 집행 재개 여론이 증가했다. 이 두 주장은 지난 2009년 연쇄살인범 강호순에 대한 사형집행 의견이 많아지자 △기독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등 4개 종단의 대표가 사형집행 반대 성명서를 내며 직접 부딪히기도 했다.

 

 올해 다시 이뤄진 찬반 충돌


 이러한 상황에서 올해 사형제 완전폐지를 주장하는 진영과 존치 및 집행을 이야기하는 쪽이 다시 대립하고 있다. 지난달 10일 인권위는 정부에 ‘자유권 규약 제2선택의정서(이하 의정서)’에 가입할 것을 권고했다. 85개국이 가입한 해당 의정서에는 사형 집행금지 의무와 사형폐지 를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포함돼 있다. 따라서 정부가 인권위의 권고를 수용해 의정서에 가입할 시 현재 비공식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사형집행정지 상태가 공식화되므로 완전폐지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또한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사형제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왔지만 폐지 찬성 입장으로 선회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사형제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 8월 21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9%는 사형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폐지 의견을 택한 22%의 응답자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큰 차이로 유지 의견이 우세한 이유는 흉악범죄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강간 △살인 △사체유기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흉악범죄자가 언론에 알려지며 압도적인 조사결과의 원인이 된 것이다. 흉악범죄가 사형제 유지 여론을 증가시키는 현상은 과거 사례에서도 찾을 수 있다. 지난 2012년 9월 같은 주제의 조사에서 사형제 유지에 찬성하는 응답자는 무려 79%였는데, 그해 수원 토막살인 사건 등 흉악범죄가 연이어 발생했다.

 

 국제적으로는 폐지가 다수


 그렇다면 세계가 사형을 보는 시선은 어떨까. 사형 집행이 이뤄지는 나라는 지난 1998년 37개국이었지만, 지난해 23개국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사형제 폐지를 법제화한 국가는 70개국에서 106개국으로 늘었다. 20년간 사형제를 존치 및 집행하는 국가가 줄어온 것이다. 사형제가 세계적으로 감소하는 이유로 사형제의 범죄예방 효과 미비를 들 수 있다. 사형을 존치 및 집행하는 국가로는 △일본 △중국 △미국 △ 인도 등이 있다. 이 중 일본과 중국의 인구 10만 명 당 살인범죄율(지난 2014년 기준)은 각각 0.3%, 0.8%로 사형제도를 완전히 폐지한 영국, 독일의 0.9%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똑같이 사형을 집행하는 미국과 인도는 모두 이보다 높은 3%대를 기록했다. 사회 통념과는 달리 ‘사형집행 시 범죄예방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근거가 없는 것이다. 더불어 인권 문제 또한 사형제 폐지국가를 늘리는 데 영향을 줬다. 일례로 유럽연합의 가입 조건 중 하나는 사형제 폐지인데, 그 근거는 생명권 보장이다. 사형수뿐 아니라 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의 인권도 사형제의 입지가 줄어드는 이유다. 실제 지난 8월 사형 집행 국가인 일본의 언론 지지통신은 ‘사형집행 업무를 수행하는 교도관들이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다.

 

 대한민국에서 사형제 폐지 여론이 가장 높을 때는 2003년이었는데, 당시 조사에서 폐지에 찬성한 응답자와 유지를 주장한 응답자는 각각 40%와 52%였다. 폐지의견이 유지의견을 넘어선 적은 단 한 번도 없던 것이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사형제는 꾸준히 줄어왔고 대한민국 또한 21년간 집행이 없어 ‘사실상의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국민의 입장과 국제적 추세가 반대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의정서 가입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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