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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삭막한 인간관계, 포기하지 않기
  • 박현일
  • 등록 2018-06-04 15:51:32
  • 수정 2018-06-04 15: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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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애란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더없이 삭막하다. 이런 흐름 탓에 우리는 너무 많은 것들을 포기한 채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생존을 위한 삶에 지친 현대인은 진정성 있는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까지 포기하고 있다. 이에 많은 이들은 주위 사람들을 형식적인 관계로 바라보거나 이용할 대상으로만 인식한다.

 

  김애란 작가의 단편집 ‘비행운’은 그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 책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너의 여름은 어떠니’와 ‘서른’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것만이 남은 메마른 인간관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너의 여름은 어떠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몸무게가 늘어난 미영이 대학 선배를 다시 만나는 하루를 그렸다. 옛 친구의 장례식이 있던 날이지만, 미영은 선배의 연락을 받고 반가워한 나머지 친구의 장례식을 가지 않는다. 자신을 자주 격려해줬던 예전의 모습을 기대하고 선배를 찾아간 미영은 기대와는 전혀 다른 현실을 보게 된다. 방송국에서 PD로 일하는 선배는 뚱뚱한 몸을 가진 기존 출연자가 출연하지 못하게 된 바람에 그 역할을 대신해줄 사람을 섭외해야 했는데, 그게 미영이었던 것이다. 결국 미영은 원치 않는 방송 촬영을 하며 핫도그를 입에 우겨넣어야 했고, 이는 정신적으로 매우 괴로운 일이었다. 촬영 이후 무력함 속에 빠져있던 미영은 가지 못한 장례식의 친구가 예전에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해줬던 기억을 떠올린다. 정작 자신을 진심으로 생각해줬던 사람은 선배가 아니라 죽은 친구였다는 미 영의 자각과 함께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다음으로 ‘서른’은 그보다도 극단적인 상황을 보여준다. 작품의 주인공 수인은 예전의 남자친구에게 속아 다단계 회사에 강제적으로 구속되고 만다. 그리고 그 일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학원 강사 시절 가르쳤던 제자 혜미를 자신 대신 집어넣는다. 결국 혜미는 다단계 일을 견디다 못해 자살하고 만다. 수인은 아는 언니에게 직접 쓴 편지 속에서 그 상황이 끔찍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듯 덤덤한 투로 회상한다. 워낙 힘겨운 생존에 쓸리다 못해, 타인을 이용한 것뿐 아니라 죽이기까지 한 일을 평범한 일상과 별다를 게 없는 것으로 인식한 것이다.

 

 위 소설처럼 실제로도 서로를 믿고 위하는 인간관계를 찾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실이 아닌 소설에서조차 사람들은 서로를 형식적으로 이용하기에 바쁘다. 그렇다보니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한 목적으로 타인을 만나고, 정상적인 관계를 포기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또 다른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현실은 진정성 있는 인간관계를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타인들의 냉랭함에 인간관계를 포기하지 않고 차갑지 않은 관계를 찾아 헤맬 때, 우리는 선배와 수인처럼 혼자의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이 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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