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사진後] 묵묵히 지켜온 계절들 김채영 수습기자 2025-09-29 17:02:49


 기자의 아파트 입구에는 빛바랜 벤치 하나가 있다. 세월이 스며들어 페인트가 벗겨지고 금이 간 부분도 있지만, 벤치는 항상 묵묵히 자리를 지켜왔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같은 동네에 살아 온 기자에게 사진 속 벤치는 그저 아파트의 작은 일부가 아닌 기자의 수많은 시간과 인연을 켜켜이 담은 특별하고도 소중한 자리다. 기자는 벤치에 앉아 친구와 간식을 나눠 먹기도 했고 앞으로도 함께 할 친구의 먼 미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벤치 위에서 친구와의 전화 한 통에 깔깔 웃었던 순간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러나 이런 벤치에도 마냥 웃음만 있었던 건 아니다. 친구에게 답이 나지 않던 고민을 털어놓으며 한숨을 쉬던 날도 있었고 온 마음을 다했던 친구와의 큰 다툼 후에 벤치에 앉아 정말 슬프게 울었던 적도 있었다. 항상 기자가 인연의 무게를 가장 크게 실감했던 순간들은 항상 이 벤치 위에서였다.


 시간이 흘러 그때의 친구 중 많은 이들은 기자의 곁을 떠났다. 자연스레 멀어진 얼굴들도, 다시는 연락을 못 할 사이가 된 이름들도 있다. 돌이켜 보면 인연이란 항상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었다. 어떤 인연은 스치듯 짧게 머물다 사라지고, 어떤 인연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기자는 그것이 바로 ‘시절인연’이라 생각한다. 모든 인연에는 저마다의 때가 있고, 지금은 볼 수 없더라도 그 시절 나의 웃음과 눈물 속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기자는 매일 이 벤치를 지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낡아가는 벤치를 바라볼 때면, 기자의 마음속에서도 함께 낡아가는 시절인연 이 떠오른다. 그 위에서 울고 웃던 어린 날의 인연과 기자를 지켜주던 수많은 얼굴이 말이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해도, 이들은 이미 사진 속 벤치처럼 단단히 자리한 채로, 조용히 기자 삶의 일부로 남아있다.


 이 기사를 읽는 당신에게도 그런 벤치가 있지 않은지 묻고 싶다. 때가 있던, 지나간 모든 인연이 모여 지금의 당신을 만들어준 특별한 장소 말이다. 기자는 매일 이 벤치를 보며 시절인연의 의미를 다시 되새긴다. 그때 그 순간들이 모여 오늘의 기자를 만들었음을, 이 낡은 벤치가 묵묵히 증명해 주고 있다.


글·사진 김채영 수습기자 Ι dachae0@kyonggi.ac.kr 

TAG

주소를 선택 후 복사하여 사용하세요.

뒤로가기 새로고침 홈으로가기 링크복사 앞으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