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사회이슈] 복지의 사각지대, 제도의 틈에서 외면당하는 이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과 현실 사이의 간극 임서현 기자 2025-09-15 03:12:18
최근 KBS joy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출연한 20대 남성의 사연이 화제가 됐다. 두 여동생을 보살피고 있다는 그가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분 유지를 위해 일부러 아르바이트를 안 하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에 본지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본교 주은선(사회복지학과)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해 봤다.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는 국가의 안전망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하 기초생활보장법)’은 빈곤층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돕기 위해 여러 종류의 급여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공공부조제도이다. 비용 감면 등의 간접적 혜택을 제공하는 다자녀 가구 지원 또는 차상위제도와는 구별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국민 기초생활보장급여(이하 기초생활급여) 수급자는 267만 3,485명으로, 2030세대 수급자는 전체 수급자에서 약 9%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 2018년 대비 44% 늘어난 수치다. 더불어 지난 2015년 15만 9,155명이었던 2030세대 수급자는 지난해 59% 증가한 25만 3,152명이었다.

 

 

 기초생활급여는 그 종류와 내용이 다양한 만큼 까다롭다. △생계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는 소득인정액이 선정기준 이하일 경우 지급되며, 급여액은 선정기준에서 가구의 소득인정액을 차감한 금액이다. 선정기준은 매년 보건복지부가 중앙생활보장위원회를 통해 의결해 빈곤층의 자격 을 규정하는 수치인 ‘기준 중위소득’의 일정 비율이다. 예컨대 올해 생계급여 선정기준은 기준 중위소득의 32%이므로 1인 가구의 경우 소득인정액 이 76만 5,444원/월 이하일 때 기초생활급여를 수급할 수 있다. 여기에 의료급여는 소득인정액 기준과 더불어 부양의무자 기준을 만족시켜야 한 다. 부양의무자가 없는 경우와 만약 있다면 부양능력이 없거나 미약한 상황에만 의료급여를 제공받을 수 있다.


IMF 사태, 제도의 빈틈을 드러내다


 기초생활보장법의 도입 배경은 1997년 말에 닥쳐온 외환위기(이하 IMF 사태) 때문이다. 당시 김대중 前 대통령 정부는 국가파산 상태에 직면하 자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이에 따라 살인적인 구조조정과 대량 실업이 발생했다. 이후 △이혼 △아동·노인 유기 △노숙 △자 살 등 각종 사회문제가 끊이지 않았고 빈곤 문제는 주요한 쟁점으로 부각됐다. 1990년대 보통 2% 중반대였던 실업률이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 7.0%를 기록했다. 빈곤율 또한 1991년 이후 9%대로 유지되고 있었지만, 1999년에는 13.1%까지 높아졌다.


생활유지 능력이 없거나 어려운 사람들의 생활을 보호하는 법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61년 제정됐던 한국 최초의 공공부조 제도, ‘생활보호 법’은 △노령 △질병 △근로 능력 상실 등으로 생활 유지가 어려운 자에 대한 국가적 보호 방법을 규정한 법률이었다. 하지만 이는 당시 빈곤의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고 여긴 사회적 인식 때문에 잔여적 차원에 머물고 있었다. △대상자 선정의 비합리성 △급여의 불충분성 △운영의 비효율성 등으로 인해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사회 안전망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외환위기 상황에서 모든 국민을 포괄하지 못하는 ‘생활보호법’의 한계에 따라 근로 능력에 관계없이 저소득층의 기초생활을 국가가 보장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이후 1998년 45개 시민단체가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제정 추진 연대회의’를 구성해 법률제정을 청원했고, 국민기초생활보장 추진 준비단이 구성돼 마침내 2000년 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됐다.


그러나 닿지 않는 복지의 손길


 최근 들어 기초생활보장법의 사각지대가 세간에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출연한 20대 남성이 수급자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일하지 않는다고 발언한 것이 커뮤니티를 통해 퍼졌기 때문이다. 이에 진행자와 몇몇 네티즌들은 ‘핑계’라며 ‘지금 열심히 일해 서 돈을 모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수급자들은 ‘일을 하면 할수록 더 가난해지는 구조’에 갇혀있다. 기초생활급여 선정기준 금액 이 지나치게 낮아, 수급자가 그 이상의 소득을 벌면 복지 혜택이 줄어들거나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한 달 소득 기준을 넘지 않는 금액만 벌도록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05년부터 지난 2021년까지 실시한 분 석 결과 11년 이상 장기 수급자 중 34%가 18~34세 청년층이었다. 본교 주은선(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소득이 없어도 재산이 있으면 소득으로 환산 된다”며, “넘어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은 부양의무자 기준”이라고 불합리함을 꼬집었다. 자녀가 부모를 완전히 부양하는 비율이 낮아진 요즘에도, 부양의무자가 있기에 정부 지원에서 배제된 고령 빈곤층이 지난 2021년 기준 약 66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활 돕는 해외, 한국은 어디 있나


 현재 영국은 18세부터 국민연금 수급 연령(66세)에 한해 거주하고 있는 주택을 제외한 재산 규모가 £16,000(한화 약 3,000만 원) 이하인 경우 통합수당을 지급한다. 이는 매월 받을 수 있는 통합수당의 최대 금액에서 수급자의 근로소득이 £1 증가할 때마다 £0.55의 통합수당 급여가 감소 하는 형식이다. 더불어 근로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기기 전까지는 추가 근로소득 급여가 전액 삭감되지 않으며 계속 받을 수 있다. 일례로 25세 미만 미혼의 표준수당 상한액은 £292.11(한화 약 55만 원)이며 건강상태 등 상황에 따라 추가급여를 받을 수 있다. 이에 평택대학교 손병돈(사회복 지학과) 교수는 논문에서 “한국의 공공부조 급여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라며, “미국과 영국처럼 저임금 근로자들의 근로 동기 강화 를 위해 근로소득 보전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주요국들은 탈빈곤과 복지 급여 시스템의 효율화를 목적으로 공공부조 제도와 근로의 연계성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영국은 16시간 이상의 근로 저소득층에게는 근로 시간에 따라 근로세액공제 급여가 제공하며, 취업을 한 수급자에게는 가처분소득을 높여주는 조 치를 취하고 있다. 이는 각종 소득보장제도를 통합해 수급자로 하여금 취업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을 명확히 각인시키기 위함이다. 또한 스웨덴 같은 경우 공공부조를 받기 위해서는 △공공직업안정소 등록 △적극적인 구직활동 △근로지원 프로그램의 참가가 의무화돼 있다. 수급 희망자는 공공직업안정소에서 구직자 등록과 함께 구직지원계획을 작성해야 공공부조 신청의 절차가 이뤄진다.


정부의 노력과 더불어 풀어야 할 과제들


 한국에선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비극을 맞이한 소식이 들려온다. 지난 5월 전북 익산에서 매달 200만 원이 넘는 병원비를 감당할 방법이 없었던 모녀가 기초생활급여를 받지 못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그들은 매달 120여만 원을 지원받았으나 지난해부터 긴급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주거급여 20여만 원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건이 알려지며 지난 2022년 병마와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 사망 사건’도 떠올랐다. 그들은 생계급여나 의료급여 대상이었으나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했다. 우리나라 복지서비스는 ‘신청주의’ 기반이라 신청하지 않으면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간담회에서 “신청주의는 매우 잔인한 제도”라며 “복지지원금을 ‘자동 지급’하도록 원칙을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하지만 위기가구와 취약계층을 발굴에 더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 고질적인 복지 인력난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현장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이미 업무 과부하를 호소하고 있기에 전문가들은 전담 인력을 늘리고 책임 부담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대통령은 △자동차재산 기준 완화 △노인 근로소득 공제 대상 확대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등 제도개선을 적극 추진해 복지 사각지대 해소의 의지를 밝혔다. 더불어 내년 기준 중위 소득을 역대 최대인 6.51%로 인상하는 만큼 생계급여 수급자는 4만 명 정도 증가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조정해 고시하는 기준 중위 소득은 실제 한국 국민 가구 소득의 중간값과의 격차가 이미 많이 벌어져 있는 상황이다. 주 교수는 기준 중위 소득이 중위 소득과 물가가 올라가는 속도를 못 쫓아가,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는 상황 자체는 그대로”라며 “실제 중위 소득하고 기준 중위 소득의 격차를 줄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빈곤은 누구한테나 어느 시기에든 닥칠 수 있는 문제”라며 ‘최후의 안전망으로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한다’라는 기초생활보장법의 변화를 강조했다.


임서현 기자 Ι imseohyeon1827@kyonggi.ac.kr

TAG

주소를 선택 후 복사하여 사용하세요.

뒤로가기 새로고침 홈으로가기 링크복사 앞으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