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담(아담아카데미) 원장
광교산 자락의 나무들이 계절의 옷을 갈아입는 동안, 여러분의 얼굴에도 각기 다른 계절이 스쳐갑니다. 봄처럼 설레는 웃음, 여름 땡볕처럼 치열한 고민, 그리고 가을의 문턱에서 결실을 생각하는 깊은 눈빛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제 눈에 자주 들어오는 것은 안개 낀 어두운 표정들입니다. 불안의 그림자에 드리워진 얼굴을 마주할 때면, 먼저 살아온 선배로서 마음 한편이 함께 무거워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연결된 세상에 살지만, 역설적으로 휠씬 더 고립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손안의 화면은 타인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을 쉴 새 없이 전시합니다. 동료들의 화려한 활동과 선배들의 합격 소식은 때로 파도처럼 밀려와 ‘나’라는 작은 배를 더욱 애처롭게 합니다. 모두가 행복한데, 나는 외롭고 초라한 종이배일 뿐입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잘 편집된 영화의 한 장면일 뿐, 누구에게나 카메라 꺼진 뒤의 적막감과 수많은 NG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타인의 하이라이트와 나의 B컷을 비교하는 것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게임입니다. 그 비교의 감옥에서 과감히 벗어나는 것이 나를 지키는 첫걸음입니다. 여러분의 항해는 고유하며, 다른 배의 속도를 좇을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 배의 방향키를 내가 직접 쥐고 있는지 확인하고 점검하는 것입니다.
대학 시절은 정답을 찾는 여정이지만, 인생은 정답 없는 문제들로 가득합니다. 기대에 못 미친 학점, 공모전에서의 고배, 관계의 어려움.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실패’라는 두 글자로 쉽게 규정하고 자책하며 주저앉곤 합니다. 하지만 실패는 내 존재의 평가가 아니라,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게 하는 ‘데이터’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수천 번의 실험을 ‘작동하지 않는 방법을 발견한 과정’이라 불렀듯, 여러분의 넘어짐 또한 ‘더 단단해지기 위해 필요한 경험’으로 재정의할 수 있습니다.
대학 시절은 정해진 고속도로가 아닌, 자신만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비포장도로에 가깝습니다. 길을 헤맨 시간, 웅덩이에 주저앉았던 시간 모두가 나만의 지도를 채우는 귀한 경험입니다. ‘실패’가 아닌 ‘과정’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용기만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충분히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무엇이 되어야 한다(What to be)’는 압박감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How to live)’라는 본질을 잊곤합니다. 스펙은 나를 설명하는 하나의 지표일 뿐, 존재의 전부는 아닙니다. 때로는 속도를 늦추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 10분이라도 온전한 마음으로, 마음이 이끌리는 책을 읽거나, 캠퍼스를 걸으며 광교산자락의 바람에 맨볼을 내 맡기는 느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어떤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사소한 질문들은 세상의 소음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하는 내면의 나침반이 됩니다.
더불어 나의 약점과 고민을 터놓을 수 있는 한 명의 친구, 선배와의 진솔한 연결 그리고 선생님께 귀 기울이는 마음은 서로의 존재를 응원하는 건강한 면역체계입니다.
그 관계는 거친 파도를 함께 헤쳐나갈 가장 든든한 돛이 됩니다.
사랑하는 경기인 여러분,
태풍의 눈이 가장 고요하듯,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에 깊은 성찰이 일어납니다. 불안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동력 삼아 ‘나’라는 단단한 등대를 밝히는 지혜로운 항해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새 학기에도 여러분의 거침없는 항해를 가슴 깊이 응원합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