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마음을 부정하고 외면한 적이 있는가. 밀쳐내고 모질게 굴면서도 마음 한구석 깊은 곳에 자리 잡아 신경 쓰이는 모순된 감정 말이다. 지난 6월 출판된 김서해 작가의 <여름은 고작 계절>은 바로 그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의 결을 섬세하게 포착한 두 소녀 간의 우정 소설이다. 소설 <라비우와 링과>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가장 정확한 언어로 진단하는 작가’라는 평을 받은 김서해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두 이민자 소녀가 겪는 우정과 질투, 동경과 연민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여름은 고작 계절>의 주인공 ‘제니’는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오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제니는 영어를 못하는 자신을 조롱하는 친구들과 부모님의 잦은 다툼 속에서 정신적으로 고립된다. 이에 제니는 자기혐오에 빠지게 됐고, 자기 자신을 뜯어 고쳐가면서까 지 적응하려 애쓴다. 그러던 어느 날 과거의 제니를 떠올리게 하는 한국인 전학생 ‘한나’가 등장한다. 한나는 영어를 거의 못했고 툭하면 울어서 순식간에 백인 아이들의 괴롭힘 대상이 됐지만, 제니를 동경하며 의지한다. 제니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나를 도와주면서도 다른 친구들의 시선을 의식해 밀쳐내고 모질게 군다. 그러던 중학교 마지막 여름방학, 제니와 한나는 백인 여자아이들이 초대한 호숫가 모임에 참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생한 사건을 계기로, 가까워지고 멀어지기를 반복했던 두 소녀는 관계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제니는 결국 한나에 대한 마음을 부정하고 외면한 것이 자신을 더 외롭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한나를 버리고 새라와 노라의 팀으로 향한다고 믿었지만,
내 유니폼 색은 변하지 않았다”
『여름은 고작 계절』 中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소중한 것을 외면하거나 자신을 속이곤 한다. <여름은 고작 계절>은 이처럼 가난과 소외가 일상인 제니가 주류에 속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사실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한나를 밀쳐내는 아이러니를 담았다. 또한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며 성장하는 제니의 모습을 담아내기도 했다. 독자들은 이 이야기를 통해 제니와 한나의 관계에 몰입하며,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
아무리 모른 척해도 사라지지 않는 마음이 있다. 그런 마음은 부정하고 외면할수록 더 쓰라려질 뿐이다. 기자는 제니와 한나의 이야기를 읽으며 비슷했던 학창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친해지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일부러 거리를 둔 순간들, 그때 느낀 죄책감과 공허함이 제니의 서툰 선택과 겹쳐 보였다. 시간이 흐른 지금, 기자는 어른이 된 제니처럼 그때의 상처를 영원히 기억하며 다시는 마음을 속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처럼 마음을 마주하기 두려울 때 서투른 용기를 내보는 것은 어떨까. 서투른 진심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결국 우리는 더 성장한 자신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유정 기자 Ι 202510140@kyongg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