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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공포인가 편집국 2025-05-07 15:34:11

공성윤 시사저널 기자


 최근 세간이 소위 ‘7세 고시’로 떠들썩하다. 신호탄은 지난 2월 방영된 KBS ‘추적 60분’의 “7세 고시, 누구를 위한 시험인가” 편이 쏘아 올렸다. 해당 프로그램의 취지는 유명 학원들이 아동의 수준을 한참 웃도는 어려운 시험을 강요하며 반교육적 행태를 저지른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일은 아니다. 7세 고시는 이미 수년 전부터 대치동 일대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돼 온 시험이었다. 그 원인과 문제점도 분석이 끝난 상태다. 골자는 대략 이렇다. “학령 인구가 줄어들고 사교육 업계가 과열 경쟁에 돌입하면서 일부 대형 학원들이 아이의 학업 성취도와 무관한 공포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십분 공감한다. 공포 마케팅은 경영학에서 오래 전부터 연구돼 온 전통의 마케팅론이다. 공포 소구(Fear Appeal)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유독 사교육 업계가 이를 즐겨 쓴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공포를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업계가 또 있다. 언론이다. 

   

 추적 60분이 방영된 이후 한 달 동안 네이버에서 ‘7세 고시’로 검색되는 기사 건수를 찾아봤다. 총 635건. 하루 평균 20건이 넘는 기사의 홍수가 쏟아졌다. 그 사이에 대치동 라이프를 다룬 드라마가 개봉한 탓도 있겠지만, 7세 고시가 언론 지면을 장악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사들의 주제는 대동소이하다. 7세 고시로 대표되는 사교육 과열이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것. 그 중엔 ‘아동 학대’라는 표현도 자주 등장했다. 그저 아이가 공부를 잘 했으면 하는 마음에 학원에 보냈는데 그게 학대였다니. 공포다.

   

 학원가는 예전부터 공포 마케팅으로 상당한 이득을 봤다. 작년 총 사교육비가 29조2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갈아 치웠다는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언론은 어떨까. 금전적 이득을 당장 환산하긴 어렵다. 대신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사교육 과열을 잠재우는 데 일조했다면, 사회적 이득을 얻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언론은 공포 마케팅으로 이득을 봤나.

   

 추적 60분이 방영된 이후 사교육 업계에 있는 한 선배를 개인적인 일로 만났다. 놀랍게도 선배는 해당 방송에 나온 한 학원의 대주주였다. 더 놀라운 것은, 그 선배가 방송이 어떻게 나갈지 알고도 자청해서 인터뷰에 응했다는 사실이다. 이유를 물어봤다. “홍보가 되거든. 그 방송 이후로 학원에 문의하는 사람이 더 늘었어.”

   

 이쯤 되니 언론이 학원가의 공포 마케팅에 오히려 기름을 부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의심을 증폭시키는 전력도 있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때 인수위원장이 영어 교육을 강조하면서 “미국 가서 ‘오렌지’라고 하면 못 알아듣고 ‘어륀지’라고 해야 알아듣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유명한 ‘어륀지 파동’이다. 당시 대다수 언론이 비판을 쏟아냈다. 이러한 가운데 일부 주류 언론은 교육 자회사를 통해 파닉스 교재와 유학 프로그램 등을 광고하며 톡톡히 재미를 봤다.

   

 물론 공영방송 KBS가 다른 의도로 사교육 업계를 질타한 건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의도와 무관하게 언론은 보도의 후과(後果)를 신경 써야 한다. 특히 요즘에는 언론의 법적 책임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방송의 여파를 고려해 좀 더 세심하게 내용을 구성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차라리 실태를 재조명할 게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데 힘을 쏟았으면 어땠을까. 공포 마케팅을 막을 수 없다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대중의 합리적인 소비다. 7세 고시에 맞서는 합리적 소비를 설명해보자면, 사교육비를 많이 쓰지 않고도 아이의 학습력을 높여주는 교육일 것이다. 학자들은 그 구체적인 해법을 이미 내놓았다. 대표적인 사람이 언어학자인 스티븐 크라센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교수다.

   

 크라센 교수는 ‘i+1’ 이론을 통해 영어 습득의 지름길을 제시한다. 학습자의 현재 수준이 i라면, 이보다 1만큼 살짝 어려운 영어를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계단을 밟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는 동기 부여가 영어 습득의 선결 과제라고 강조한다. 동기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자존감이 떨어지고 불안감이 높아져 영어 습득을 막는 정서적 필터(Affective Filter)가 두꺼워진다는 주장이다. 

   

 스스로도 써놓고 보니 드는 생각은, 너무 뻔한 주장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학자들은 때로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주장의 실증적 근거를 풍부하게 제시함으로써 명성을 얻는다. 지금도 이론의 여지는 있지만, 크라센 교수는 오랜 실험과 비교 사례를 통해 본인의 주장을 입증해 왔다. 

   

 그런데 학부모와 교사, 심지어 아이들도 공감할 만한 이 뻔한 내용을 학원만 모른 체하고 있다. 7세 고시 문제를 보면 i+1은커녕 i+10이나 100정도는 되어 보인다. 서울대생도 해당 문제를 보고 절절 맸다고 한다. 동기 여부는 말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공포 마케팅이란 그런 것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보다 못하는 것을 찾아내 융단폭격해야 한다. 

   

 크라센 교수의 주장은 그 대척점에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먼저 찾고 그에 맞춰 단계적 학습을 유도해야 한다. 예를 들면, 아이가 푹 빠져 있는 축구와 관련된 영어책을 같이 읽고 영어로 의견을 나누는 방법 등이다. 이를 위해 7세 고시를 준비하는 수준으로 돈을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합리적 소비란 그런 게 아닐까. 

   

 언론은 이 지점을 공략해야 한다. 공포를 조장할 게 아니라 합리적 소비가 무엇인지 적극 알려야 한다. 특히 실증적이고 현실적인 사례를 직접 발굴하는 능력은 언론이 학계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능력을 십분 발휘해 합리적 소비의 효과를 뒷받침해야 한다. 이는 곧 언론의 궁극적 지향점으로 꼽히는 솔루션 저널리즘(Solution Journalism)과도 맞닿아 있다. KBS는 7세 고시가 누구를 위한 시험인지 물음을 던졌다. 반대로 묻고 싶다. 이로 인한 공포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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