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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과 계몽 편집국 2025-03-17 11:51:11

이언담(아담아카데미) 원장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12월 3일 심야시간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불과 몇 달 전 국회 몇몇 의원들에 의해 계엄령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들은 국방부 관계자들을 불러 취조하듯 대놓고 이에 대한 질의를 퍼부었고, 국회에 불려온 당사자들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극력 부인하였다.

   

 내심 대통령과 여당의 솔직하지 못한 국정운영에 아쉬움이 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과도한 주장으로 국민을 불안에 떨게하는 정치인의 행태도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런데 비상계엄은 선포되었다.

   

 1980년 봄은 유신독재체제가 무너지고 자유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학생들의 시위행렬이 들불처럼 번져갔다. 그러던 중 어느 때 부턴가 ‘전두환은 물러가라’의 구호가 추가되었다. 


 분명 그는 자신의 임무를 마치는대로 군 본연의 업무에 복귀할 것이라고 선언했는데, 그런 그를 믿지 못하고 왜 물러가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해 5월 광주 금남로는 그를 우두머리로 한 신군부의 권력 찬탈을 위한 피의 제단이 되었다. 그의 군홧발에 의해 광주시민의 인권은 철저히 유린되었고, 그가 저지른 만행은 자국 군대에 의해 자행된 국가 폭력의 대표적 사례가 되었다. 

   

 나는 기억한다. 1972년 유신 독재 헌법에 나도 모르게 부역했던 자신을! 국민(초등)학교 3학년, 선생님은 귀가 닳도록 반복된 교육을 시켜댔다. “한국인은 말이 많다. 서로 분쟁하고 싸우기를 좋아한다. 조선시대에도 당파싸움하다가 나라가 망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좋긴 하지만, 우리같은 민족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다. 우리 민족성에 맞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그것이 한국적 민주주의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그것은 식민사관이었다. 조선은 일본의 지배를 받아 마땅한 민족이라는..., 선생님은 투표용지와 똑같은 모형의 용지를 나눠주며 집에 돌아가 부모님께 찬성 도장을 찍을 것을 가르치도록(?) 강요했다. 그렇게 유신헌법은 9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한국적 민주주의가 탄생했다.

   

 2024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령의 헌법적 권한을 내세워 소위 종북 불순세력 제거에 나섰다. 그것이 실패하자 그 추종자들은 갑자기 계엄을 계몽령으로 읽기 시작했다.

   

 계엄을 잊고 산지, 아니 억지로라도 잊고 싶었던 세월 40년, 느닷없는 계엄은 나도 모르게 자리잡은 국가권력의 속임수와 기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 아니 함께 죽지 못한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가는 깊은 상채기에 뿌려진 소금이 되었다. 생각보다 그 아픔은 진하고 갈수록 더해가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세계 민주주의의 성공 모델로 평가받아온 대한민국에서 다시 울려퍼진 군홧발소리와 국회상공을 휘감는 군 헬리콥터의 폭음소리는 어떻게든 잊고 살았던 광주를 그대로 재현시켜주었다.

   

 그들에게는 한밤 중의 해프닝이었을지 모르지만, 애먼 국민들은 국민적 자부심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허탈감인데, 한 마디 사과도 없이 그들은 순식간에 계엄을 계몽령으로 포장해 버렸다. 졸지에 우리 국민은 또 다시 70년대 우매한 국민이 되어 한국적 민주주의를 배워야 하는 계몽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계몽의 역사적 사조는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지적, 문화적 운동인 계몽주의(Enlightenment)에서 찾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계몽주의에 의해 정립된 민주주의 정체가 3권분립이다.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이성을 믿었지만, 그 이면에 적절한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인간은 끝없이 권력을 추구하는 욕망 덩어리 존재라는 사실도 놓치지 않았다. 그렇기에 권력은 쪼개져야 하고, 그것은 통제받아야 하며, 할 수만 있다면 권력간에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균형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제도로 선거제도를 정착시켜 왔다. 취약함으로 말하자면 이루 말할 수 없지만, 그나마 우리가 선택할 수 있었던 최선의 방법이기에 집단이성에 기댄 다수결의 원칙을 따라 그 결과에 승복하는 전통을 세워온 것이다.

   

 그런데 이 가장 기초적인 헌법질서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세력이 세상을 흔들고 있다. 오히려 자신들의 주장을 무조건 따르라며 계몽을 강요하고 있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을 따르지 않기로 했다. 아니 믿지 않기로 했다. 비록 뒤늦기는 했지만 도대체 권력은 믿어줄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역설적이게도 교훈없는 역사적 사건은 없다. 이제 계몽의 대상을 국민이 아닌 권력자로 되돌려 보면, 계몽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진다. 어느 나라에서 권력을 틀어쥔 대통령이 내란의 우두머리가 되어 감옥에 갇힐 수 있겠는가, 권력자의 명령에 따를 수 밖에 없는 군대와 경찰이 이를 주저하고, 무조건 명령을 따르기보다 먼저 위헌·위법성을 따져 보는 성숙함, 군대의 진입을 온몸으로 막아선 시민들.., 이 모든 것이 계몽령이 던져준 교훈 아니겠는가.

   

 미래 무도한 권력자들은 보았을 것이다. 도무지 대화와 타협이라고는 모르는 힘만 쓸 줄 아는 비민주적 괴물들에게 분명한 계몽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다시 꿈꾼다. 


 나의 후손들이 평화롭고 자유로운, 그리고 정의로운 나라에서 살아가는 세상을!!


 사람은 믿되, 인간의 욕망 덩어리 권력은 믿지말라는 말로 지혜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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