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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자는] 뜨거운 추억에 몸을 담그는 곳
  • 박선우 기자
  • 등록 2023-11-08 12: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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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휴식과 놀이, 행복과 쾌락 사이의 여백
길을 걷다보면 이따금 가지런히 쌓인 나무토막 탑 옆에서 열을 품은 연기가 풀풀 피어오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꼭 약방에서 지은 듯 건강한 닭죽의 냄새가 나곤 하죠. 그곳은 다름 아닌 불한증막 건물입니다. 본지에서는 박선우(문예창작·3) 기자의 해묵은 즐거움인 사우나의 매력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요즘 기자는


 경기대신문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신문편집국에서 사회팀 기자로 활동 중인 문예창작학과 21학번 박선우입니다. 기자에게 ‘휴식’은 놀이와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요. 잠을 자거나, 말뜻에 충실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쉬는 것이야말로 휴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휴식은 자신이 가장 편하게 느끼는 개인적인 공간 즉, 집에서 하는 게 일반적이죠.


 다만 기자에게는 추억이 녹아들고 습관이 들러붙어 집만큼이나 편해진 곳이 있습니다. 잠도 잘 수 있고 유유자적하며 가만히 시간을 보내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곳인데요. 바로 사우나입니다.



사우나를 찾는 이유, 기억이 쌓아올린 애정


 기자는 사우나에서는 보통 하룻밤을 보내는 경우가 많고, 기본적으로 주에 한 번 내지 많게는 세 번까지 방문하곤 합니다. 상당히 자주 가는 편이죠? 아이들은 으레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이 강하기 마련인데요. 어린 시절부터 사우나를 즐겼던 기자의 버킷리스트 맨 첫 줄에는 언제나 ‘찜질방에서 하룻밤 보내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어둠 뒤로 아저씨들의 기침과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외에는 정적으로 가득한 한밤중의 찜질방은 떠나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기자의 어린 욕망을 부추겼습니다. 어른이 된 먼 훗날의 언젠가 사우나를 방문한다면 기필코 하루를 넘기리라 생각했죠. 다만 아직까지 사우나를 계속해서 찾는 이유는 기자가 기본적으로 목욕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탕이든 찜질방이든 전체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를 풍기는 것도 사우나의 중요한 매력 포인트입니다. 목욕이나 찜질을 즐김과 동시에 정적을 한 움큼 씹으며 가만히 앉아 휴식하기에 최적의 공간이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근사한 점은 사우나가 기자에게 무척 익숙한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큰 사우나를 두고 있던 옛 집은 사우나를 어렸던 기자의 쉼터로 만들기에 제격이었습니다. △친구들과 50도 가까이 되는 열탕에 들어앉아 서로 우쭐댔던 기억 △바나나맛 우유를 한 손에 든 채 아버지와 겨울바람 맞으며 건물을 나오던 기억 △식혜 한 통을 무기로 겁도 없이 불한증막에 들어가 생전 처음 보는 할머니들과 수다를 떨었던 기억 등 수많은 추억들이 쌓여 지금은 사우나가 기자에게 마음의 고향이 된 셈이죠.


일상이었던 맛이 추억이 되고


 목욕도, 찜질방도 좋아한다면 이제는 동네 사우나보다 더 좋은 곳이 많지 않겠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목욕광인 기자는 유명한 사우나나 온천도 숱하게 경험해봤죠. 특히 유황 냄새가 피부 전체를 덮는 듯 했던 훗카이도 노천 온천의 겨울은 기자의 목욕 인생 가장 짜릿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에게 휴식의 행복을 안겨주는 곳은 그저 아파트 주변 상가에 위치한 흔한 사우나뿐입니다.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는 말이 있듯 사우나는 기자의 추억이 가득 담긴 접시나 마찬가집니다. 더불어 기자는 단지 이를 과거로써 회상해야 하는 상태가 아니고, 가고 싶을 때면 언제든 방문해 추억을 반찬 삼아 먹을 수 있는, 마치 제2의 집 같은 곳입니다. 반대로 앞서 말한 훗카이도 온천과 같은 곳은 여행, 즉 놀이죠. 여행지에서의 이색 식사가 때때로 기자에게 더할 나위 없는 쾌락을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이는 집밥을 먹는 행복과는 다른 것입니다. 한때 기자에게 일상이었던 것은 지금 추억이 됐고 이 추억을 맛보는 것은 기자에게 여전히 일상입니다.


 목욕에서도 휴식과 놀이, 행복과 쾌락은 분리됩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 휴식처에서 행복을 얻고, 어떤 놀이터에서 쾌락을 얻어왔나요. 고민해보세요. 분명 여러분이 가만히 누워 추억에 몸을 지지던 공간은 반드시 있을 겁니다.


글·사진  박선우 기자 Ι 202110242psw@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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