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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수레바퀴가 정하는 우리의 선악
  • 이정빈 기자
  • 등록 2023-11-08 12: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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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소설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는 어느 날 갑자기 머리 위에 나타난 수레바퀴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소설 속 사람들은 과학으로는 검증할 수도, 없앨 수도 없는 이 원판과 공존해야만 한다. 수레바퀴는 선과 악이 청색과 적색으로 구분돼 있다. 수레바퀴만이 아는 기준과 이에 대한 삶의 행적에 따라 실시간으로 비율이 변하는데, △정신질환의 종류 △지위 △성격 등에 따라 비율의 변동률과 반영률은 상이하다. 선악의 비율은 확률이다. 죽을 때 단 한 번 수레바퀴를 돌려 나온 결과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갈리게 된다. 때문에 사람들은 청색의 비율을 높여 천국에 갈 확률을 높이기 위해 애쓰지만, 청색이 늘어나는 기준은 수레바퀴만이 알기에 결과를 알 수 없는 행동일 뿐이다.


 이 책은 수레바퀴라는 설정 안에서 △변호사 △아이돌 △자선단체 등 다양한 직업군의 변화를 담았다. 예컨대 작중 한 아이돌은 수레바퀴의 비율 때문에 도덕성과 아이돌의 자격을 의심받는다. 소설 속 청색의 비율은 평균적으로 60%를 웃도는데, 그의 수레바퀴에 나타난 청색 비율은 40% 전후를 기록한 것이다.


 저자인 단요는 작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신인 작가다. 작가의 또다른 작품인 <개의 설계사>로 2023 문윤성 SF문학상 장편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곧이어 해당 책으로 박지리문학상을 수상했다. 단요작가는 사계절 출판사 인터뷰를 통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인 ‘안심할 수 없음’이야말로 이 소설을 성립시키는 요소다”라고 전했다.


“어떤 사람들은 원판 자체가 악하다고 말하기도 하죠. 

이토록 빈틈과 변수가 많은 세상에서 

선악을 정량적인 숫자로 계산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요.”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中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나는 청색 영역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까?'라는 질문을 떠올려봤다. 기자는 적어도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최선을 다할 것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청색 영역이 높더라도 악함을 찾아낸다. 선한 행동을 하더라도 적색 영역이 존재하기에 스스로 타인의 악함을 증명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이는 수치화된 비율이 그러한 일방적인 판단을 심화시킨다. 현실 속의 우리는 타인에 향한 도덕성의 평가를 표면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평가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레바퀴라는 매개체를 통해 사람들이 감추고자 하는 현실의 민낯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 소설 속의 세계는 수레바퀴의 등장으로 판단이 더욱 의존적이고 쉬워졌을 뿐, 우리가 평소 남을 함부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정빈 기자 Ι 202310796@kyongg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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