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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 적성 그리고 성적이라는 세 마리 토끼
  • 편집국
  • 등록 2018-09-04 10:38:37
  • 수정 2023-12-04 11: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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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유치원 시절부터 줄기차게 들어온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이미 다 커버린 대학교 학부 3학년 재학생 시절에도 명확하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교내 진로상담센터에서 매우 정밀하고 복잡한 적성검사를 받아봤다. 추천 된 직업은 ‘마케팅 디렉터, 카운슬러 그리고 종교지도자’ 셋이었다. 나는 더욱 좌절하고야 만다. 그건 법학과 학부생이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진로와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지금 나는 본교 법학과 조교수로서 ‘법’이라는 영역을 강의와 연구를 통해 알리고 있고, 학생들의 학업 및 진로 관련 상담을 하고 있으며, 인류 역사상 등장한지 200여년 정 도에 불과한 공법(公法) 과목의 전도사로서 세 가지 이상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결과적으로는 그 적성검 사대로 아주 잘 풀린 셈이다.

 

 학생의 학업과 진로관련 상담경험은 나의 대학원 석사 조교시절부터 시작됐다. 법학과 학부생, 일반대 학원 석사·박사 과정생, 법학전문대학원생 등 다양한 처지에 있는 학생들의 고민을 들을 수 있었다. 법학과의 진로가 다소 특정돼 있다 보니, 상담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이 몇 가지가 있다. 우선 학생들이 자신의 꿈이나 희망진로를 솔직하게 말하는 것에 대해 일말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법을 전공해 진출할 수 있는 분야는 다양하지만, 시험이나 학점 등 객관적인 결과물에 따라 선발하거나 채용하는 직군이 많다. 그러다보니 적성보다는 성적에 따라 업무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고 그 자리가 ‘한정된 파이’이기 때문에, 친구들조차도 잠재적인 라이벌이 될 수 있어서 속내를 털어놓기가 어렵게 된다.

 

 한편으로는 부모님 등 주변사람들의 기대와 압박으로 본인이 원치 않는 일인데도 끝끝내 집착을 하거나 그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성인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스스로 독립하고 자기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쌓는 토대가 되는 것이 직업이고, 이것이 1차적인 의미이자 기능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가치나 자신의 인생 자체와 직업을 동일시해 주위 시선이나 분위기 등에 따라 자신이 원하지 않는 진로를 희망하며 힘을 빼는 경우가 꽤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쁜 학업 가운데 제한된 경험이나 간접적인 정보들에 한정돼 희망진로가 ‘막연하게 얻어진 것’ 에 불과한 것을 잘 모른다. 그래서 실제 그 직군에 종사 하게 됐을 때 현실과의 간극이 큰 경우도 적지 않다.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고 탓할 수도 있겠지만, 오랜 노력 끝에 얻은 현재 속에서 평온과 행복을 누릴 수 없어 고민인 사람들도 분명 있는 것이다.

 

  복잡하고 다변화됐지만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룬 사회에서, 학업 및 진로에 관한 상담이 막연하고 추상적 으로 이뤄져서는 실질적인 힘을 주기 어려울 것이다. “어떻게든 하면 된다” 라든가 “그냥저냥 하다 보니 나는 잘 풀렸다”라는 이야기는 극심한 경쟁과 스트레스 속에 살고 있는 오늘날의 학생들에게 위안은커녕 또 다른 의미에서의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흥미)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적성) △타인(사회)이 자신에게 요구하는 일(성적 혹은 기대치). 이 세 가지가 일치한다면 진로에 관한 고민은 없겠지만, 그런 사람이 지구상에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러므로 진로에 관한 고민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것이며, 그렇기에 그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하고 희망해본다. 학생들이 솔직하게 자기 자신의 마음의 방향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이야기를 편안하게 잘 들어주고, 희망진로를 구체적으 로 설정할 수 있도록 다양한 관점과 비전을 제시해주며, 필요한 능력을 더 발전시킬 수 있도록 관심을 가지고 세부적으로 지도하는 일들이 학생들과 함께 ‘세 마리 토끼’를 잘 키워내기 위해 내게 주어진 기쁘고 감사한 몫이다.

 

 

강지은 (법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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