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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가지 키워드, 경기대신문을 말하다
  • 이예림 경기대신문 기자 일동
  • 등록 2017-10-24 09:5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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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구성원들에게 격주로 인사하고 있는 경기대신문. 하지만 정작 신문사의 개인적인 사정은 직접 공유할 일이 자주없다. 그래서 창간기념호를 맞이한 만큼 경기대신문 기자들이 10가지 키워드로 보다 친근한 신문사의 모습을 소개하고자 한다.


 보도전화


 ‘철판을 깔아야 한다’ 처음 취재를 시작하고 들었던 생각이다. 그전에는 성격이 수줍었지만 모르는 사람 붙들고 대화해야 하는 입장이 되니 많이 힘들었다. 친구들한테도 인사를 잘 못하는데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질문하는 게 불편해 염증을 느끼던 차에 선배로부터 업무가 하나 더 떨어졌다. “00대 학생회, 학군단, 체육실로 전화해. 기사거리 없나 확인하면 돼” 막막했지만, 정작 이걸 하고 나서 철판이 깔렸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서 꼭 나를 불편해하진 않는다는 걸 전화로 알게 됐다. 물론 기자일 하느라 만날 시간이 없어서 학과 동기들에게는 지금도 인사가 잘 안 된다. 일하다가 우정을 등진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있다.

 

밤샘

 

 불이 꺼지고 학교가 비로소 잠드는 시간 열 시. 하지만 5층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신문사 기자들이 아직 잠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문사 기자들에겐 가족 같은 얼굴이 몇 있다. 밤을 함께하는 선배와 동기들, 그리고 경비아저씨다. 경비아저씨와 눈인사를 하고 ‘한 사람만 와서 싸인 해달라’는 말을 듣고 나면 내가 밤을 샌다는 것이 비로소 실감이 난다. 1학기엔 마감주면 초췌해지는 선배들을 보며 막연히 피곤하겠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지면을 맡고 난 후 밤을 새다 거울을 봤는데 익숙한 낯빛이 거기 있더라. 초점없는 눈동자와 줄넘기도 할 수 있을 것처럼 길게 내려온 다크써클. 아마 신문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런 얼굴일 것이다.

 

식사요정


 신문사에서 회의가 있거나 마감일이면 기자들이 모여 저녁을 함께 먹는다. 메뉴는 매주 달라지는데 그것을 누가 고르느냐. 바로 식사요정인 내가! 메뉴를 선정하면 선배들과 동기들에게 주문을 받고 음식점에 전화를 한다. 우리는 주로 분식이나 햄버거를 먹는데 하루는 메뉴가 너무나 질린 나머지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그것은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한 번도 시킨 적 없는 음식점에 전화를 걸어 배달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대부분 40분이면 배달이 오는데 1시간이 지나도 음식이 오지 않았다. 신문사 내 사람들은 음식이 아직도 오지 않았다며 울분을 토했고 나 또한 울고 싶었다. 전화를 걸어 봤지만 모든 음식점에서 하는 소리 “벌써 출발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도착해요”를 듣고 끊었다. 30분 후 음식이 왔고 포장지를 뜯자마자 다들 하이에나처럼 몰려들어 배를 채웠지만 음식이 맛이 없었다. 이로서 메뉴 선정 실패이자 식사요정의 날개가 꺾인 날이 됐다. 다음부턴 늘 먹던 걸로 야무지게 먹어야지~

 


 신문사에 들어와 처음 들어본 말이었는데 알고 보니 피드백의 줄임말이었다. 사실 나는 처음 빽을 받을 때만 해도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앞에서 고쳤던 것을 뒤에선 다시 원래대로 하라고 할 때나 내가 꼭 넣고 싶은 문장을 빼라고 할 때, 문장이 어색하다고 하지만 그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았을 때는 짜증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정말 어리석었음을 느낀다. 개인의 편협된 시각만으로는 그 누구도 기사를 완성시킬 수 없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이다. 기사는 단지 자기만족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기사는 타인을 위해 쓰이는 글로써 그 어떤 글보다 객관적인 시각의 피드백을 필요로 했다. 결국 빽이란 선배들이 나를 최대한 존중하며 던지는 가치 있는 한마디였던 것이다.

 

노트북


 신문사 생활을 하면서 노트북은 내 학교 삶에서 가장 많이 활용하는 도구가 됐다. 이전에도 물론 노트북을 이용하긴 했지만, 항상 들고 다니지는 않았다. 그리고 밤새도록, 몇 시간씩 사용한 적도 않았다. 하지만 신문사에 들어오면서 기사를 쓸 일이 생기고, 기사를 쓰기 위해서 자료를 찾기 시작하며 노트북을 들고 다니게 되고, 그렇게 가방은 더 무거워졌다. 만약 노트북 가격이 저렴했다면, 분명히 기사를 쓰다가 몇 번은 던져서 부쉈을 것이다.


 노트북이 있어서 신문사가 아닌 곳에서도 기사를 쓸 수 있다는 것과 기사를 쓸 때 비교적 시간이 덜 걸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은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것처럼 업무의 연장이 돼서 신문사든 기숙사든 노트북과 기사와 함께 밤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


 ‘관계의 시작은 항상 어렵다’고 기자는 생각해왔다. 누군가와 친해지는 것도, 대화를 시작하는 것도 어려워서 자연스럽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인데, 아니 신문사에서는 단기간에 하나도 아니고 이 두 가지를 모두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사람과 만나는 것을 싫어하는 편은 아니다. 오히려 좋아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여전히 인터뷰 전에는 많이 굳어있다. 그래서 보통 인터뷰를 하면 기자 쪽에서 취재원의 긴장을 풀어주려 노력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정반대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자주 받는다. 하지만 이거 의외로 순기능 아닐까. 원래 자기보다 더 긴장한사람을 보면 긴장이 풀리는 효과가 있다고 하니 말이다. 기자는 긴장을 함으로써 취재원의 긴장을 풀어주고 있었으리라 믿는다.

 

라꾸라꾸


 항상 신문사에서 마감을 할 때면 언제나 우리의 등을 즐겁게 반겨주는 라꾸라꾸, 그것은 신문사를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마력을 지녔다. 라꾸라꾸에 듬성듬성 보이는 정체모를 얼룩들은 마감을 끝낸 후 쓰러져 잠들 때 침을 흘린 자국이며, 간혹 보이는 빨간 점들은 후배의 빽을 보다 지쳐 손에 빨간 펜을 쥔 채 잠든 선배의 볼펜 자국일 것이다. 마감 도중 막차를 놓치거나 힘이 들 때 언제나 편히 기대고 쉴 수 있는 라꾸라꾸가 있어 언제나 나는 마감이 두렵지않다. 또한 라꾸라꾸는 나에게 있어 신문사가 제 2의 집이 돼줄 수 있게 도와준 존재이며, 험난한 마감 속에서 오아시스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비밀의 방

 

 뜨거운 여름, 수원캠퍼스에서 하던 방중교육을 열심히 듣다가 너무 놀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하는 특이점이 왔다. 결국 마지막 날 마지막 수업을 도망쳤다. 도망치는 것도 식후경이라고 뜻을 함께 한 친구들과 감자탕을 먹으러 갔다. 감자탕을 야무지게 먹던 중 조용했던 핸드폰에 예상치 못한 진동이 울렸다. 감자탕 국물의 따스한 온기가 아직 남아있던 숟가락을 내려놓고, 떨리는 목소리로 받은 전화. 몇 분의 통화 후, 비밀의 방으로 가 있으라는 말을 듣고 아직 많이 남아있는 감자탕을 뒤로하며 학교로 헐레벌떡 들어갔다. 들어갈 일 없을 것 같았던 비밀의 방. 거기서 있던 일은 영원히 비밀로. 그리고 그 때의 교훈은 영원히.

 

막차


 신문사 기사 마감일은 화요일, 수요일이지만 기자는 개인 사정으로 인해 화요일에 모든 기사를 마감해야 한다. 기사 마감은 본교 수원캠퍼스에서 하는데 서울 가는 막차는 11시 45분쯤에 있다. 하지만 또, 서울에서 아현역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최소 11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어느 날은 기사 마감이 너무 늦어서 11시 45분 서울행 막차를 탔다. 서울역에 12시 30분에 도착했는데, 아현역까지 가는 막차가 없더라. 그래서 서울역에서 집 가는 버스를 찾기 위해 20분을 거리에서 헤매다가 간신히 아현역까지 가는 서울 시내버스를 탈 수 있었다. 이렇게 신문사는 버스와 종종 시간싸움을 하기도 한다.

 

조판

 

 수원 토박이인 기자가 서울에 가는 이유는 몇 안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연극 관람 △볼거리 구경 △맛집 탐방 그리고 조판…. ‘집순이’에 ‘길치’인 기자에게, 조판이 잡혀있는 날은 다가오지 않았으면 하는 개강 날과도 같다. 처음 조판소에 찾아갈 때는 혹시나 길을 잃을까 30분이나 일찍 출발했지만 입구를 눈앞에 두고도 길을 헤매 겨우 도착했다.

 

 그렇게 찾아간 조판소에 들어서면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기사를 읽기 시작한다. 간혹 눈이 시릴 때도 있지만, 수정을 거듭할수록 ‘좋은 기사’가 실린 ‘좋은 신문’이 완성돼간다는 설렘에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꼬박 7시간 정도가 걸린 조판이 끝나면, 탄력적이던 눈두덩이가 움푹 패여 있다. 이처럼 조판은 기자에게 △길을 보는 눈 △떨리는 눈 △깊이 있는 눈을 선물해주는 뜻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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